빙하와 어둠의 공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4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 지음, 진일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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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당히 기대를 하고 읽은 책. 그렇게 기대를 잔뜩 품고 읽은 책이 거의 언제나 그렇듯 생각보다 별로였다. 물론 전날 밤 쐬주, 맥주 장하게 들이켜 해골이 뱅뱅 도는 와중에 책을 읽는 바람에, 뇌활동이 원활하지 못했다는 것도 즐거운 독서에 언짢은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으리. 암만 핑계를 대도 이 <빙하와 어둠의 공포>가 작년 말에 읽은 <최후의 세계>에 미치지 못하는 건 분명하다. 아, 물론 아마추어 독자인 내 의견이다. <최후의 세계>를 얼마나 재미나게 읽었는지 당시 독후감에 아마 "1년에 한 편 나올 수준"이라고 의견을 달았을 거다. 그 책에선 말년까지 영화를 누린 베르길리우스와 달리 귀양지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친 오비디우스와 그의 걸작인 <변신 이야기>를 절묘하게 각색했었다(고 기억한다).

 <빙하와...>은 두 가지 사실에 근거하여 쓰여졌다.

 첫번째는 1872년 부터 1875년 까지 약 3년간에 걸친 북극해 탐험에 관하여. 탐험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골통 황제 프란츠 요제프를 위해(그러나 황제는 탐험가들의 이름이나 제대로 기억이나 하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미지의 지역인 북극해에 황금을 가득 품은 땅덩어리가 있을 것이란 기대, 그것이 아니더라도 지구가 둥그렇다는 사실이 밝혀져 만일 북극해를 관통할 수 있다면 황금의 땅 인도와 일본, 중국으로 가는 뱃길을 대단히 줄여 경쟁국에 비교우위를 누릴 것이란 환상, 그것도 아니면 적어도 경쟁국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용맹한 모험을 시도해 성공했다고 폼을 잡을 수 있다는 어리석은 망상에 휘둘려 해상 지휘관 바이프레히트, 육상 지휘관 파이어 등 스물 네명이, 다수의 썰매 개, 고양이 몇 마리와 함께 출발한다. 베링해를 향해서. 항로의 경제성도 전혀 없고, 위험하기만 한 아무 쓸모없는 모험. 북극점 위에 선다해도 기껏해야 자기 이름이나 남길 수 있는 댓가로 목숨을 담보하기엔 어리석기 짝이 없는 광적인 모험의 시대.

 또 하나는 100년 전 오스트리아-헝가리 탐험대의 일지 등 자료를 읽고 경탄한 마치니란 이름의 젊은이 이야기. 연상의 여인과 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중에 갑자기 필을 받아 그들과 같은 항로를 한 번 보고싶다는 의지로 짐을 꾸리는데, 간단한 여행에 어울리지 않게 짐이 많아보인다. 하여간 이 청년 노르웨이 북쪽 끝 도시 트롬쇠 항으로 가, 쇄빙선을 타고 북극해를 둘러보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여행 중인 1981년, 썰매와 개들과 함께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이 두 가지가 책을 이끌어가는 가장 큰 줄기. 두번째 이야기를 보면 마치니가 100년 전 탐험을 했던 이들의 행적을 좇는 것으로 나와 있으니 당연히 책의 거의 대부분은 19세기의 북극해 탐험을 위하여 쓰여 있다. 란스마이어, 이 사람은 당초 <최후의 세계>에서 보여주었듯, 이 책에서도 실제 탐험가들이 만든 기록물들과 그걸 읽은 100년 후 마치니의 또다른 기록, 이 사이에 빈 것들을 자기 상상력을 동원하여 채워나가고 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숱하게 나오는 변신(Verklaerung)이 은유하는 바를 자신의 상상력을 총 동원하여 근사한 소설 <최후의 세계>를 쓴 것과 비슷하게.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메타 픽션으로 분류할 수 있으나 꼭 문학작품을 한 테두리 안에 두려고 하는 건 정말 부질없다. 더구나 책에선 탐험 소설에서 흔히 기대하는 극적 반전드라마, 선상반란, 배신과 황금 같은 것도 나오지 않는다. 19세기에 북극해를 항해했으니 고생이야 오죽했겠느냐마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기록과 기록 사이를 이어가는 작가의 상상력, 다분히 건조한 문체로 써내려간 흔적들과 나름대로 정의한 해당 탐험의 의미 뿐이다. 극지 탐험에 관심 있는 분에겐 적극 추천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 독자들께서 굳이 읽겠다면 말리지 않을 정도.

 (게다가 북극곰을 수십마리 잡아먹고 추위를 견뎌낸 이 탐험대의 고생담을 다른 책에서 벌써 읽어 알고 있었던 거디다. 그러니 이 책을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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