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가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 139
에스키아 음파렐레 지음, 배미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소설책인줄 알고 사서 읽었는데 사람들은 이 책 <2번가에서>를 에세이로 분류한다. 깜짝 놀랐다. 자신의 성장 스토리를 소설의 형식을 빌어 쓴 픽션 아니었어? 이 정도의 책은 장르 분류 없이 그냥 읽어도 재미있다. 난 원래 에세이는 안 읽는 습관이 있지만 지금 읽고 있는 게 에세이인줄 모를 경우엔 그냥 읽는 습관도 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좀 뻔뻔한 느낌도 드네.

 어린 에스키는, 자꾸 에스키, 에스키 하니까 어째 '애새끼' 하는 어감의 혼동을 피할 수 없긴 하다만 하여간 주인공 에스키는 어려서 부모님과 헤어져 시골의 할머니 밑에서 자란다. 왜냐하면, 1920년대 초반엔 도시 프리토리아에 흑인 가족이 살 수 없었으며, 직업이 있는 흑인만 거주할 수 있었는데 직업이 있는 부부 역시 동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 종족들이 서로 살인과 약탈을 서슴지 않았던 아프리카 인들에게, 특히 줄루 족에 의하여 저질러진 학살을 그들과 전쟁을 벌여 잔인하게 진압해 멈추게 한 영국인이 무지하게 고마운 존재였으며, 그 후에도 보어인과의 전쟁에 승리한 영국인들이 자신들을 약탈과 학살에서 해방시켰다고 여겨 일부 흑인 원주민들은 모든 유럽에서 온 백인을 하느님 또는 하느님의 자식이라고 여기기까지 했단다. 사하라 이남의 원시 비슷한 야만의 상태, 조지프 콘라드의 말대로 암흑의 핵심에 거주하던 이들에게 현대문명과 눈부신 피부를 갖고 있던 백인들의 사려깊게 보이는 교묘한 착취는 기꺼이 받아들일 만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도시에 비교하여 더욱 열악할 수밖에 없던 시골에서 에스키의 뛰어난 지능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시험보는 족족 일등. 완고하고 정없고 툭하면 두드려 패는 할머니한테 어느날 엄마가 와서 에스키를 도시 프리토리아의 빈민 외곽지역, 폴란드의 게토보다 훨씬, 훨씬, 훨씬 더 비위생적이고 초라하고 곧 쓰러질 것 같은 동네에 살게 된 에스키. 그리도 그리워하던 부모품으로 돌아가 행복할 거 같았는데 인생이 원래 행복이란 걸 되게 미워하는지라 어린 에스키한테도 괴물을 하나 던져주었다. 바로, 아버지. 아버지로 인하여 집안꼴은 나날이 개판이 되어가고 없는 살림 더욱 비렁뱅이 비슷하게 변해가다가 그것도 모자라 어느날 하루, 감자와 카레가 펄펄 끓고 있는 솥단지를 아버지가 번쩍 들더니 엄마의 풍성한 티셔츠 속에다 쏟아부어버린다.

 그 다음은? 뭐 어떻게 보면 뻔하지. 고생고생 또 고생하면서 끈질기게 공부해 장학금 받아 남아프리카에 있는 흑인 전용 대학을 나오고, 직장을 얻고 또 고생하다가 결혼했는데 해고 당하고, 다시 직장을 얻고 공부를 더 하고 드디어 쨍하고 해가 떴다.

 그런데, 내가 자전적 에세이를 소설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작가가 세상을 보는 눈이 일반적 출세담하고는 거리가 있다는 점. 음파렐레의 글엔 마땅하게 있음직한 미움이나 증오 같은 것이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다. 불평등을 있는 불평등으로 묘사하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는 인종분리정책, 아파르트헤이트가 어떻게 벌어졌고, 당시 아프리카의 상황이 이래서 그런 일이 생겼으며 그에 따른 현상은 어떠했다. 이렇게 차분하게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종분리 자체가 독자로 하여금 열을 받게 하는 장치이기 때문에 책을 읽어나가면서 슬슬 차오르는 분노는 자연스러운 것이리라. 열악하고 악랄하기까지 한 제도임에도 피해를 입어가며 나름대로 서로 어울려 악착같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가히 나쁘지 않다. 제도야 어차피 지배와 피지배, 수탈과 피수탈이 공식임을 알고 있으니까.

 다만 책의 후반부로 가면 완전히 성인이 된 에스키아 음파렐레, 너무 잘난 척을 해서 밥맛이 없어지기도 하는 게 매우 아쉽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잘 난 줄 다 아는데 말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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