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을 위한 학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8
사샤 소콜로프 지음, 권정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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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판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하는데, 이런 책의 맹점은 불과 닷새 전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어떤 내용이었더라, 한참을 생각해야 겨우 가늠할 수 있다는 거. 맞아, 지적 장애가 있는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해서 그가 바라보는 세상과 생각의 확장 같은 것을 쓴 책이다. 성경에 나오는 바울과 사울을 모티프로 특수학교의 교장, 지리교사, 생물을 가르치는 여교사 등에 관한 지적 장애아의 대뇌 안에서 벌어지는 화학작용을 순행과 역행의 기차노선을 빗댄 시간의 혼돈과 비벼버린 섞어찌개.

 이 책을 읽으면서 은근히 열 받은 건, 작가 사샤 소콜로프가 지적 장애와 정신착란을 헷갈려 하는 상태에서 소설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물론 이 책을 "나의 친구이자 이웃인 지적 장애아 비차 플라스킨에게" 헌정하는 것으로 보아 진짜 지적 장애아와 무수한 대화를 나누어 아이(작가가 지적 장애'아'라고 했으니)의 생각 속에 벌어지는 여러가지 스토리를 채집했을 것이 틀림없지만, 문제의 장면이 나오는 모든 문장이 지적장애아의 머리 속에서 벌어지는 생각이 아니라 그 아이가 진실로 그렇게 믿고 있다고 여길 수밖에 없도록 쓰여 있다는 거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유년기에 작은 소도구(장난감이라 생각하면 더 좋겠다) 하나만 가지고 온갖 스토리가 마치 진짜로 일어나고 있다는 듯이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유년의 아이가 자기가 지금 전개하고 있는 대하 서사시가 정말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스토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상상 속에서 격렬한 전투 중에 큰 부상을 입었으나 그걸 무릅쓰고 홀로 적진을 향해 조자룡의 헌 칼을 휘두르다가도, 개똥아 염병하지 말고 얼른 와서 밥 먹어, 엄마의 성질난 한 마디에 여태까지 잘 가지고 놀던 소도구를 방바닥에 휙 팽개치고 밥 먹으러 달려간다. 정신의 상태를 측정할 때, (성인이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자) 이런 경우 엄마한테 줘박히지 않기 위해 얼른 밥먹을 태세를 갖추는 경우는 정상, 엄마의 열화와 같은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적군의 마지막 한 명 까지 조자룡의 헌 칼로 베어 자신을 정말로 영웅으로 확정한 다음에야 화면이 꺼지는 상태가 정신착란이다. 물론 내 생각. 어디 가셔서 인용하지 마시라. 개망신 당하기 십상이다.

 소콜로프의 <바보들을...>의 주인공(작가가 책을 헌정한 인물과 같은) 비차 콜로스킨은 사람들과 시간의 미궁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리하여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 과거에 이미 발생했던 것인지, 앞으로 생겨날 일인지, 아니면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상영되고 있다고 여기거나 아예 그에 관한 이해를 하지 못한다.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무턱대고 두드려 패기만 하는 교장선생새끼가 교실에 들어 왔서 난리를 치는 것인지, 자애롭고 친절한 지리 선생님이 스팀 파이프 위에 앉아 계신지, 어여쁘기 그지없는 생물 선생님이 앞으로 내가 결혼할 어여쁜 신부인지, 헷갈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는, 인물, 시간, 사건의 사차원 속에서 살고 있다.

 이게 지적 장애야? 정신질환 아냐?

 분명한 것은, 작가 사샤 소콜로프가 단 한 번도 지적 장애인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거. 아무 생각 없이 읽고나서, 야 이거 참 참신한데, 여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시도야, 라고 하면 매끄럽게 끝낼 수 있는 독후감이지만, 난 기어코 시비를 걸고 넘어가야 하는 거다. 조또 모르면서 막 써대지 말라고. 장애는 질병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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