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스피에르의 죽음
서준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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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준환의 장편소설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을 읽은 건, 언젠가 좀 오래전에 이 책에 대한 신문서평을 읽고 한 번 읽어봐야겠다 마음 먹고 있었던 것이라서. 나름대로 신선했던 것이 한국인이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치 시절 끝무렵을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서술했다는 점인데, 파리에서 오래 거주한 경험이 없는 한국의 작가가 타국의 일정 장소를 무대로 자연스럽게 글을 쓰기란 사실 좀 무리. 아니라고? 정말일 걸? 책을 읽는 내내 독자를 좀 답답하게 만든 건 다름아닌 '공간적 폐쇄성'. 서준환은 파리의 장소들, 예를 들어 팔레 루아얄, 생제르맹, 샹 드 마르스, 에투알, 뤽상부르, 몽파르나스, 생 루이 섬, 마레, 테른, 오페라, 마들렌, 몽소1 등등을 원고지 또는 PC 화면 위에서 산보한 경험적 익숙함은 없었을 터라서 좀 심하게 과장하자면, 이야기의 공간적 제한은 독자로 하여금 감각의 폐색증을 유발할 지경까지 이른다. 이런 현상은 서준환 스스로도 아마 알아챘듯 싶었는데 왜 내가 이렇게 추리하느냐 하면, 작가는 매우 영리하게도 소설을 다분히 희곡 형식을 차용하여 썼기 때문이다. 작가가 스스로 공포정치 와중의 혼란과 음모와 권력을 뒤집기 위하여 여러 집단들이 파리 각처에서 자신들의 이해에 의해 이합집산하는 광경을, 같은 이방인이라도 시간적 공간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두 도시 이야기>를 쓴 찰스 디킨스 만큼 묘사할 수 없음을 일찌감치 알았기 때문에 마치 희곡을 읽는 듯한 느낌이 나도록 쓰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소설은 거의 다 대화 또는 독백, 방백 등으로 이루어진다. 공포정치가 끝나고 파리지역 보안사령관으로 재직중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시내 한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그의 취미인 인형극 관람을 하는데 인형극이 바로 이 책의 제목처럼 로베스피에르가 죽는 장면을 담고 있는 것. 그러니 희곡 형식이라도 연극이 아닌 인형극이고, 또 정확하게 말하자면 희곡을 읽는다기보다, 인형극을 보는 사람이 극의 모든 장면을 글로 써 놓은 것같은 느낌이다. 연극이나 인형극이나를 막론하고 무대극은 어차피 공간적 제한으로 인해 장면이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리하여 서준환은 로베스피에르가 죽음에 이르는 며칠을 각 장소, 실내나 한 골목 등의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연결로 쓸 수 있었다.

 참 좋은 시도, 그리고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걸로 끝. 서준환 스스로가 게오르크 뷔히너의 희곡 <당통의 죽음>을 읽고 이 책을 썼다고 했다는데, 나도 그걸 먼저 읽어볼 것을 그랬다. 어디가 서준환으로 하여금 그리 매력적으로 받아들이게 했는지 모르겠으나, 로베스피에르를 탄핵한 혁명공회의 결정을 만들어낸 복잡다단한 음모와 사건들을 가볍게 처리한 대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궁금증, 과연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것이 진짜 로베스피에르인가, 로베스피에르는 체포 직전에 권총자살하지 않았는가, 하는 단순한, 그리고 그거나 저거나 사실 별 중요하지도 않은 질문의 해소에 그리 관심을 두었는지 참... 오리무중이다.

 물론 프랑스 혁명을 보는 작가의 시각에 관해서는 동의 비슷하게 하지만, 거기다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그동안의 호기심이 없어 그의 진심이 서준환이 말한 것과 같은지, 비슷한지 잘 알지 못한다. 로베스피에르를 문학적으로 다시 조명한 것은 어떤 면에선 바람직하고 마땅히 그래야 하겠다. 이것에 대하여 지리적이니 문화적이니 하고 까탈을 잡는 건 지금시대에 덜 떨어진 일이다. 그러나 이 책의 작가처럼 무대뽀로 작품의 주인공을 정의파, 진실남, 의리의 사나이, 고뇌하는 혁명가, 야심가가 아닌 인민을 향한 애정남으로 전력을 다해 설득하려고 하는 건 동의하지 않음.

 일독을 하시든 마시든 알아서 하시고, 다만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책을 읽으면서 난데없이 공간적 폐쇄 공포 같은 걸 느낄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하시압.

 

 


1. 파리 시내 각 지명은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 (펭귄 클래식 코리아, 2011) 21 쪽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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