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거짓말
지넷 윈터슨 지음, 김선형 옮김 / 뮤진트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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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와 <프랭키스슈타인>을 재미있게 읽어서 짧은 소설 <무게> 속에서 펼친 묵직한 담론을 잊었다. 윈터슨이 무작정 재미있게 글을 쓰는 작가인 것으로 여겼다가 짱구됐다.


  기원전 3백년, 프톨레마이오스 왕은 알렉산드리아에 거대한 도서관을 짓고 40만 권의 영광스러운 책을 보관했다. 40만 권, 하니까 에게, 우리나라 작은 대학 도서관보다 많지도 않네, 하지 마시라. 40만 권 전부 양피지 필사본이다. 내구성이 짧은 새끼 양의 가죽에 쓴 글이어서 수 백명에 달하는 필경사들이 쉬지 않고 필사를 해야 했으며, 책의 여백엔 역시 수십 수백 명의 화백이 총천연색으로 놀랄만큼 아름다운 삽화를 그려 넣어, 사치의 극에 달한 화려한 책들이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니, 작중 등장인물인 돌 스니어피스는 말한다.

  “어차피 나한테 책은 변기에서 일어나면서 뒤 닦을 때 쓰는 깔끔한 손수건 상자에 불과하니까.”

  돌 스니어피스, 이 이름은 한글로 백 번 쓰는 것 보다 영문으로 써야 좋다. Doll Sneerpiece. ‘돌’은 이름이면서 ‘인형’으로 각주엔 나오지 않았지만 다분히 허리하학적인 용도로 사용하기도 한다. Sneer비웃음, 경멸. piece조각, 비웃음, 경멸을 받을 만큼 작은, 큼큼, 뭔지 아시겠지? 이래서 돌 스니어피스의 직업은 말을 미리 해주지 않아도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된다.

  세계 역사상 거의 최초로 등장하는 인간 여성이 기원전 6백년 경의 시인 사포다. 당대에 상당한 인정을 받았다고 하지만 지넷 윈터슨의 주장에 의하면 르네상스 시기에 한 심통맞은 부르주아가 여자가 무슨 시를 쓰냐 하면서 그때까지 남아 있던 사포의 저작을 싸그리 없애 버렸다고 한다. 이제 사포는 사피스트saphist, 레즈비언lesbian 등 이름과 지명에서 여성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단어로만 남았다. 자신의 시 모두가 무참하게 학살당한 시인. 사포는 지혜의 뮤즈인 소피아와 동성애에 빠졌다고 하는데, 사실 사포가 정말로 동성애자인지 아닌지 누구 확실한 증거나 기록을 아시는 분 있으면 손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람. 아마 없을 걸? 확실한 것은 기원전 6백년경에 사포라는 여성 시인이 있었으나, 한 편의 시도 남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현재의 사포는 섹슈얼리스트로만 남았다. 빼도박도 못할 죄인 비슷한 처지의. 우울한 사포가 지금까지 살아 있어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남아있는 자신의 원고를 앞에 놓았다고 치자. 이제 몸이 거의 투명한 지경에 이른 사포가 조금도 표정이 바뀌지 않고, 자세를 흐트러뜨리지도 않고 자필 원고의 양피지를 넘기는 순간, 막 닿은 손가락에 그만 양피지는 바스슥 날아가버릴 것이다. <라셀라스>를 쓴 그 새뮤얼 존슨인지 모르겠으나, 하여간 새뮤얼 존슨 박사가 단언했다시피 “여자는 시인이 될 수 없다”니까 이제 인류에게 존재하는 사포는 기만자, 여자들을 유혹하는 악명 높은 유혹자, 독toxin, 열 번째 뮤즈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독자가 감안해야 할 것은, 저자인 지넷 윈터슨이 <오렌지만이 과일은 아니다>에서 밝혔듯이 동성애자라는 것. <예술과 거짓말> 그리고 <프랭키스슈타인>을 읽어보면 이젠 동성애자에 가까운, 무성이나 팬섹슈얼 또는 굳이 젠더의 개념이 없는 그냥 ‘인간’의 삶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저 그리스 시대엔 에이섹슈얼이나 팬섹슈얼은 존재하지 않았으니, 존재하더라도 주장할 수 없었으니 사포와 소피아를 동성 커플로 정했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책엔 사포와 소피아는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돌 스니어피스를 내세워 사포와 없어진 그의 시를 상당한, 쉽게 따라가기 벅찬 메타포로 그림을 그려내는데, 아이고, 난 손 들었다. 글/주장을 이해하기는커녕 따라가기도 벅찼다. 사변이 확장되면서 어느 선을 넘어가면 이런 주제가 아니더라도 손을 들고 백기투항할 밖에.


  원래 이름은 프레데릭이지만 집안에서 가까이 지내는 늙어 꼬부라진 추기경이 프레데릭을 ‘헨델’이라 부르면서 이름이 ‘헨델’로 굳어진 남자. 어려서부터 금욕적인 취향과 사색적 천성으로 세상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신학교의 의학도 출신으로 현재는 암 전문병원에서 유방암 수술에 권위를 지닌 의사다. 요즘에는 암 수술도 하지만 암과 관계없이 유방절제술을 받기 원하는 여자들이 부쩍 많아졌다. 세월이 변해 결혼은 이제 원초적 미스터리 또는 유전적인 인식으로만 존재하는 것 같다.

  헨델은 사랑이나 육욕의 감정을 느끼고자 간절히 원하지만 애초에 감정을 모르는 인간이다. 동료들은 헨델이 냉정하게 거리를 둔다고 평할 뿐이다. 거의 매주 삶과 죽음이 자신의 손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 진중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고착된 것으로 짐작한다. 그는 의사이고, 가톨릭이며, 여성을 숭배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동정남이자 사상가이며 바보다. 이제 도시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지만 쉽지는 않다. 가톨릭이라는 인생의 든든한 징검다리의 간격이 점점 더 멀어져 집게 하나로 수면에서 버티고 있던 헨델은 신앙이 삶의 안전벨트가 아님을 깨닫고 만다. 결국 집게를 놓고 미지의 조류 속으로, 낯선 바다로 떠나려 하는 헨델.

  그러면 역사 속의 큰 음악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은? 영화 <카스트라토> 속에서 우리가 본 헨델. 카스트라토의 목소리를 가장 좋아했지만 실생활에서 거세당한 카스트라토를 천시했던 인물이다. 그가 작곡한 마흔 개가 넘는 오페라 속에는 한 편도 빠짐없이 원래 카스트라토 배역이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극고음의 소프라노 음역대는 아니고, 여성 드라마틱보다 강한 음성, 표현하기 힘든데, 쇳소리처럼 날카롭다는 뜻이 아니라 목소리 속에 힘이 든 목소리를 좋아했다. 작품 속에 실제 녹음한 <장미의 기사> 마지막 삼중창을 예로 들어 원수부인을 카스트라토가 노래한다.

  일찍이 20세기 초반에 명성을 누려 극도로 부유하게 살던 카스트라토가, 당시 젊은 사제, 훗날의 추기경과 동성연애 관계에 있다. 세월이 흘러 젊은 사제는 다 늙어 기름이 빠진 추기경이 되었으나 젊은 남자를 찾는 취향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적인 만족보다는 젊은 시절에 감탄해 마지않던 카스트라토 목소리를 갈구하는 음악적 취향이 훨씬 더 강하다. 하지만 거세당한 어린 아이를 어디서 구하나? 유럽에서는 돼지를 놔서 키우는 일이 잦았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거세 남아의 생식기는 거의 돼지들이 뜯어먹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내시 집안에서는 거의 대부분 집에서 키우던 개들이 뜯어먹었다. 지난 세기에 잡지 “뿌리깊은 나무”에서 읽었다, 구라 아니다. 여기에 유럽과 우리나라 공통으로 가난한 부모가 아들만이라도 굶지 않고 살라고 고의로 거세를 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지만. 유럽은 칼로 자른 모양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자기 머리카락으로 단단히 묶어 놓으면 몇 달 후에 같은 DNA를 가지고 있어서 부작용 없이 잘라졌다고 한다. 이건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의 교양. 문제는 고환이다. 음경의 존속 여부와 관계없이 고환이 없으면 갈증도 없다. 고환을 내버려두고 음경만 잘라버리면, 아이고 불쌍해서 어떻게 보나, 터질 것 같이 욕망은 넘쳐나는데 해소할 기재가 없게 된다.

  여기까지 달렸으니 헨델의 끝을 보고 싶다. 그러나 참겠다. 독자를 놀라게 할 장면은 안 알려드린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피카소는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여성이다. 피카소의 아버지 잭 경은 수년에 걸쳐 55점의 그림을 주문 제작한 미술애호가처럼 보인다. 하지만 55점 전부 자신의 초상화다. 경의 생각으로 하면, 그림 그리는 여자는 우는 남자하고 같다. 둘 다 제대로 하지 못 한다나? 그래서 딸의 미술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미술학교에 보내지 않겠다면서 18세 생일날 베이지색 고무장갑과 긴 에이프런을 선물하며 겨자 공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라고 한다. 피카소는 정말로 겨자 공장에 들어가 노란 색으로 그림 연습을 하더니 숨어있던 재능과 그걸 응용하는 재주로 로열 아카데미에 들어가 과정을 끝마쳤다. 하지만 왕립 아카데미를 끝내고 본격적인 시작을 하기 위해서는 천재성이 필요한데 스스로 보기에 더 이상은 아쉬운 일이었다. 오직 순미술만 염두에 두는 피카소에게 앞날을 위한 선택은 딱 두 가지뿐이다. 화가가 되거나 아니거나. 아버지는 여전히 그림은 테스토스테론 과잉의 표시라서 딸은 균형잡힌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시체 또는 시체상태의 인간이 되라는 것.

  아버지 잭 경은 자수성가한 부자이다. 비록 아내가 거액의 지참금을 가지고 와서 그걸 부동산 투자에 쓰는 바람에 땅 짚고 헤엄친 것이긴 하지만 아내가 내 소유니까 아내의 돈 역시 내 것이라면 할 말이 없기는 하다. 자수성가한 사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이상한 곳/것에 인색한 점이다. 피카소의 부모 역시 예외가 아니라 집도 넓고 방도 여러 개이건만 아이들 방을 배정하지 않고 피카소가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남매를 같은 방에서 같은 이불을 덮고 자게 했다. 아빠는 그렇다 치고, 엄마는? 간단하다. 이 집에서 아빠가 시체이듯이 엄마도 시체, 오빠도 시체였다.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뿐 뇌 속에서는 아무런 화학작용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직 요구하고 떼쓰고 뺵빽 우는 건 피카소 하나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열다섯 먹을 때까지 오빠하고 한 방에서? 그렇다. 부모가 미친 연놈이지 뭐. 오빠가 어렸을 때는 괜찮았는데 다리 사이에 칫솔처럼 털이 돋을 때부터 일상적인 폭행이 일어났다. 세월이 감에 따라 오빠는 체격도 건장해지고 완력도 대단해졌다. 오빠가 요구하면 피카소는 아무 소리 하지 않고 그냥 눈 감고 하는 대로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것을 배워나갔다. 턱뼈가 부러졌고, 팔목과 발목도 부러져봤으며 팔꿈치 뼈도 깨진 적이 있다. 엄마한테 말을 해보지 그랬느냐고? 어째 신부님하고 똑 같은 말을 하실까? 심지어 고백성사를 핑계로 해결을 바랐지만 고해신부도 집안 일이니 엄마한테 이야기하라고 했을 뿐이다. 엄마는 아냐고? 안다. 피카소가 예민해서 아무것도 아닌 일 가지고 떠든단다. 오빠가 그랬을 턱이 없단다. 진짜로 그렇게 믿는 게 아닌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문제를 백일하에 드러내기는 더 싫다.

  그리하여 피카소 역시 집을 나와 열차에 올라, 이제 다시는 이 도시로 돌아오지 않을 각오를 한 헨델을 만나면서 모든 이야기가 한 곳으로 집중하게 된다. 나는 소양이 부족해 사포에 관련한 담론을 이해하지 못해 아쉬웠다. 어쩔 수 없지 뭐. 수양이 부족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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