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러스 마너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조지 엘리엇 지음, 한애경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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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북쪽, 북쪽이라고 스코틀랜드와 접경지역까지 가는 건 아니고 얼핏 맨체스터 정도 북쪽의 공업도시에 주로 직조공들이 많이 모여 살던 랜턴야드라는 동네가 있었다. 이곳의 한 젊은 직조공 사일러스 마너는 다른 직조공들과 마찬가지로 어린 나이에 공장에 들어와 착실하게 기술을 익히면서 활발하게 육체적, 정신적 활동을 하고 있었다. 주로 (교회churches가 아닌) 예배당(chapel)을 중심으로 작은 은둔의 세계에서 높이 평가를 받았으며 절친 윌리엄 데인과 친밀한 우정을 바탕으로 풍성한 삶을 이루어 사람들은 이들을 (골리앗의 목을 벤)다윗과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 같은 친구사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윌리엄은 신앙심이 깊지 않은 교인에게 지나치게 엄격하고, 자기 시각에 도취하는 바람에 스스로를 스승보다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사일러스는 이것조차 윌리엄이 완벽한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봤다. 윌리엄은 개종을 할 무렵에 꿈을 꾼 적이 있다. 꿈속에서 성서는 성서인데 아무 글씨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성경에 저절로 검정 글씨가 솟아올랐으니 “하느님께서 불러 택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하라.” 그러니까 진복자는 아니라는 얘기 맞지? 안 보고 믿는 자가 진복자인데 윌리엄 데인은 글자로 솟아오른 것을 보고 개종을 했으니까. 아니면 말고.

  사일러스는 젊은 하녀와 약혼을 했다. 그리고 돈이 충분히 모일 때까지 기다리며 일요일마다 데이트를 즐겼는데, 가끔 윌리엄을 불러 동행한 적이 있다. 이 당시 사일러스가 기도 중에 갑자기 경직발작이 일어났고, 보나마나 뇌전증이지만, 당시 유럽의 많은 우둔한 기독교인들처럼 이 예배당의 신자들 역시 이를 “선택된 형제에게 내리는 특별한 소명”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한 명, 윌리엄 데인 만이 사일러스에게 이 현상이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이 아닌 사탄의 방문”이라고 대못을 박으며 “마음 속으로 저주받을 만한 일을 숨기고 있지는 않은지” 숙고해보라 권고한다. 그렇다고 사일러스는 아무 원한을 품지 않았으나 친구의 의심이 괴로웠는데, 신기하지, 이 시기부터 약혼녀 사라의 태도가 이상하게 왔다 갔다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예배당의 늙은 집사가 오늘 내일 해서 젊은 신도인 사일러스와 윌리엄도 야간에 몇 시간씩 간병을 해주었다. 환자를 돌보다가 잠깐 잠이 들었고, 잠이 깼을 때는 집사가 이미 요단강을 건너 갔으며, 집사의 돈주머니가 없어져서 찾아봤더니 윌리엄 데인에 의하여 사일러스 방 옷장 뒤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는 사일러스 마너. 예배당은 빅토르 위고의 <파리 노트르담>처럼 제비를 뽑아 유무죄를 가리기로 결정을 했지만, 마너는 결국 유죄 제비를 뽑아 훔친 돈을 변상하고 교인자격을 박탈당한다. 선고의 자리에서 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앞뒤를 알아차린 마너.

  “윌리엄 데인. 바로 자네가 돈을 훔쳤지. 내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음모를 꾸민 거야. 그런 일을 꾸몄는데도 아마 자넨 잘 살아가겠지. 이 세상을 공정하게 지배하는 의로운 하느님 따윈 없고, 무고한 사람에게 불리한 증언이나 하는 거짓 하느님만 있으니까.”

  윌리엄은 이렇게 반박한다.

  “이 말이 사탄의 음성인지 아닌지는 형제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자넬 위해 그저 기도만 하겠네, 사일러스.”

  사라는 목사와 새 집사를 통해 곧바로 파혼을 통보하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윌리엄 데인과 결혼했으며, 사일러스 마너는 도시를 떠나, 남쪽으로 향한다.


  살기 좋은 영국 Merry England라고 불리는 비옥한 평원의 중앙. 숲이 울창한 아늑한 분지. 세상 소식이 들리지 않는 곳에 래블로라고 하는 마을이 있고, 마을 근처의 멋진 덤불 사이의 오두막을 빌어 여전히 직조 일을 하는 사일러스 마너. 창백한 얼굴에 툭 튀어나온 커다란 갈색 눈은 어려서부터 가는 실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내려다보는 일을 오래 해 피할 수 없는 지독한 근시였는데, 이것이 농촌 사람들이 보기엔 악마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마너가 이사 오고 15년이 지났지만 그는 옷감을 짠 것을 고객에게 가져다 주고 재료를 받아오는 일 말고는 일체의 왕래가 없이 한결 같은 외톨이로 지냈다. 그러지 않아도 선하지만 시골 특유의 폐쇄적인 성향을 지닌 래블로 사람들은 마너에게 뭔가 신비하고 특이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시각에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로부터 배운 약초와 약초의 조제법으로 구두쟁이의 아내 샐리 오츠의 심한 심장병과 수종에 큰 도움을 준 이후에 더해졌다. 그것을 보고 들은 래블로 주민들은 의사 킴블 선생에게 직접 가려면 돈이 많이 드니, 자잘한 환자들이 돈을 조금 들고 마너를 방문하기 시작했으나 그는 화를 내며 이들을 쫓아내 버려 외톨이 직조공을 향한 동정심마저 반감으로 돌아서 버렸다. 그래도 마너가 갑자기 “눈이 죽은 사람처럼 굳어 있고 몸을 흔들어도 사지는 뻣뻣하고 손은 무쇠로 만든 듯 가방을 움켜쥐고 있어서, 죽었나,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정상으로 돌아와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새가 자기 둥지를 들락거리듯 그 사람의 영혼이 몸에서 벗어났다가 들락거리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신앙적 신비로움은 여전했다.

  게다가 이웃 교구 타알리에 있던 유일한 늙은 직조공이 숨을 거둔 이후 직조 기술 덕분에 그나마 환대받는 주민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마너는 과거를 돌이켜 생각하기 정말 싫고 이웃이 되어야 할 낯선 사람들에게 사랑과 우애를 느낄 만한 일도 없다고 단정하여 스스로 고립된 일상을 살 뿐이었다. 그러다가 첫 고객인 오스굿 부인은 직조의 대가로 21실링짜리 금화 다섯 개를 받은 것이 마너의 나머지 삶이 변하게 되는 전환점이었다.

  마너의 삶은 일 말고 아무것도 없었다. 간혹 주민들이 아는 척이라도 하기 위해 집을 방문하면 여간해 집안으로 들이지도 않을 뿐더러 만일 들였다 하더라도 왜 이 손님이 얼른 가버리지 않는지 악마를 연상시키는 튀어나온 눈알을 뒤룩뒤룩 굴릴 뿐이니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이웃이라도 쉽게 정을 붙일 수 없었다. 그래서 마너는 일하고, 일하고 또 일했다. 그렇게 벌어들인 금화와 은화는 쓸 일조차 없었다. 15년 동안이나 래블로에서 살면서 남자라면 그래도 가끔 들러 친목을 다지며 맥주라도 한 잔 기울이는 주점 레인보에도 한 번 가본 적 없는 마너는 그저 철제 통에다 금화와 은화를 보관할 뿐이었다. 세월이 흘러가며 돈이 많아지자 여느 일반 농가가 다 그렇듯이 마루 바닥을 한 장 뜯어내고 땅을 파내 빈 자리에 통을 묻고 생기는 대로 금은화를 보관했다. 더 세월이 가서 이젠 철제 통도 작아 다 담지 못하자 가죽 주머니 두 개를 장만해 그것이 그득해질 때까지 모으고 또 모았다. 그럴수록 마너의 몸은 더 쪼그라들고 시력은 형편없이 악화되었으며 이제 주민들은 마흔도 되지 않은 마너에게 ‘마너 영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만큼 그는 더욱 쇠약해져갔다.

  그래도 마너에게 새로운 습관이 생겨 그것을 보람과 만족으로 알았다. 낮에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저녁 때 밥을 먹고 어두워지면, 그는 마루바닥을 들춰 흙을 걷어낸 다음 가죽 자루 두 개를 꺼내 금은화를 쏟는다. 그리고 만면에 가는 웃음을 지으며 얼마나 많은 금화와 은화가 있는지, 세기 시작한다. 한 줄로 쌓아 놓은 것이 몇 줄이나 되는지. 돈이 많아지면서 마너의 얼굴엔 그로테스크한 만족의 기미가 엿보였다. 마치 굴 속에 금은보화와 마법의 반지를 보관하고 있던 외로운 큰 뱀이나 땅굴을 파고 금광에서 채취한 황금덩이 속에서 만족한 웃음을 짓는 독한 얼굴의 난쟁이들처럼.

  15년간 마너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해코지하는 사람도 없었고, 아무 생각없이 집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도 없었고, 밥 한 번 같이 먹는 사람도 없었다. 너무도 오랜 세월 동안 그에겐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밤, 새롭게 일감을 받았건만 일에 필요한 꼰 실을 사오지 않았다는 걸 알고, 여태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었는데, 문을 그냥 열어 둔 채로 밤마을을 가버렸다. 마너가 일을 보고 돌아온다. 집에서 불과 백 야드 떨어진 곳에 도착했을 때, 마을 최고의 유지이자 최대 지주인 캐스 가문의 둘째 아들이자 천하의 방탕아 던스턴 캐스가, 모은 돈이 무척 많을 거란 소문이 난 마너의 빈집에 들어와 마루 바닥을 조사하더니 금세, 여기가 아니면 어디겠어 뻔한 노릇이지, 한 짝을 들어낸 다음 가죽 주머니 두 개를 찾아냈고, 이내 그것을 들춰 매고는 유유히 사라지고 있었다. 278파운드 18펜스. 마지막으로 세어봤을 때였다. 웬만한 농지의 1년 소작료가 백 파운드였던 시절. 이렇게 마너는 새까맣게 모르지만 마너와 캐스 가문은 연결이 되고 있었던 거다.

  이후 이야기는 당시 소설 장르의 끊이지 않는 탐구생활, 출생의 비밀로 접어들고, 얼키고설킨 젊은 날의 방황과, 거짓과, 사랑과, 신앙과, 당연히 “선한” 하느님의 역사까지 19세기 소설의 정점이자 영국 소설사의 가장 위대한 별이라고 칭송받는 조지 엘리엇의 필담은 독자로 하여금 쉼없이 손가락에 침을 묻히게 한다. 다만 아쉬운 건 19세기 작가인 반면 나는 21세기 독자라는 점, 이거 딱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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