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개 두 마리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15
멍징후이 지음, 장희재 옮김 / 연극과인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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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전에 멍징후이의 <워 아이 XXX>를 읽은 적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극작가 백철이 1933년에 <수도를 걷는 무리>라는 제목의 슈프레히코어 희곡을 쓴 적이 있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불과 3년 전에 멍징후이의 1990년대 작품인 <나는 사랑한다, 차차차 : 워 아이 XXX>를 통해 슈프레히코어를 처음 경험하게 된다. 3년 전 당시 우리 현대 희곡작품을 별로 읽어보지 못한 주제에 중국의 현대 희곡 작품을 읽는 것이 못내 안타까워 이후 나름대로 우리 희곡을 찾아 읽어보긴 했지만 그리 많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은 아쉽다. 출판계에서도 우리 문학이라고 하면 주로 소설과 시에 집중을 해, 뛰어난 감정의 전달방법인 드라마와 평론 분야는 상대적으로 읽을 기회가 없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독자 역시 좀 더 분발해 좋은 희곡을 발굴하는데 일조해야 할 터이다.
  <떠돌이 개 두 마리>는 2007년 작품이니 그의 나이 43세 때, 멍징후이의 중기작품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책 뒤의 역자 해설을 보면, 멍징후이는 중국의 선봉연극先鋒演劇, 연극부분의 선봉, 최첨단, 즉 아방가르드avant-garde, 1990년대 전위극의 대표 격이라고 한다. 그는 그러나 전위는 전위인데 그동안 숱하게 (공연과 전시를 통해)보아왔고, (연주 등으로) 들어온 서구적 전위와는 달리 시장성도 확보했단다. 역자 장희재는 이를 통해 멍징후이가 “침묵에 대한 저항과 연극 시장 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연출가”라고 정의했다.
  아방가르드가 중국의 당시 모습에 대하여 발언을 시작했다는 건 일면 당연하다고 할 터인데, 전위 연극이 연극 시장을 형성했다는 건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건 그동안 우리가 접할 수 있었던 주지적 아방가르드, 망치를 들고 무대에 올라 피아노를 때려 부수거나, 피아노 앞에서 몇 분 몇 초 동안 가만히 앉아 객석에서 들려오는 소음에만 집중하거나, 완전한 나신으로 등장해 연주하기 위하여 관객을 향해 가랑이를 벌릴 수밖에 없는 첼로를 켜는 아방가르드에만 익숙해, 그래서 전위라고 하면 일단 특별한 수업을 받은 전문가가 아니라면 이해하지 못하는 예술행위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희재는 해설에서 아방가르드의 특징으로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저항을 위한 발언과 (서구와 달리 시장을 확장한) 전위성. 사실 3년 전에 읽은 작품 <워 아이 XXX : 나는 사랑한다, 차차차>에서 사용한 기법 슈프레히코어 역시 전위적 방식이다. 내가 읽어본 작품에 한하여 말하자면 위에서 이야기한 백철의 <수도를 걷는 무리>와 게르하르트 하웁트만의 <직조공> 중 한 장면도 그러하다. 군중의 외침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법. 야나체크가 오페라에서 적용했던 샤우팅shouting 발성법과 유사하지만 더욱 노골적으로 자기주장을 펼칠 수 있다. 그러나 백 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럴 거 같은데, 슈프레히코어로 적어도 시장 확장을 도모하긴 무리 아닐까 싶다. 멍징후이는 <워 아이 XXX : 나는 사랑한다, 차차차>를 쓴 이후 일본 연극계를 둘러보고 중국의 연극판도 양적으로 더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리하여 특별한 교육을 받지 못한 일반 관객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희곡과 연극을 만들기 시작해, 중기 작품 <떠돌이 개 두 마리>를 쓴다.


  말 그대로다. 등장인물은 개 역할을 하는 배우 두 명. 아우 격인 리치. 돈이 많을 거 같지만 어딜, 반어법이다. 형은 아주 긴 이름을 가지고 있다. ‘럭드리·쿠드리히·알렉세이·막시모비치·페슈코프·탐·메키’ 어디서 들은 이름하고 비슷하지? 김수한무삼천갑자동박삭거북이와두루미... 그래 형은 이름의 첫 자 ‘럭’과 마지막 자 ‘키’만 따서 ‘럭키’라고 부른다. 아참. 다시 분명히 하자. 이들 둘은 ‘진짜’ 개다. 청년 개니까 설마 이들보고 개새끼라고는 안 하시겠지? 개는 갠데, 책에 실린 공연 사진 보니까 바지 입고, 때는 묻었지만 와이셔츠에 넥타이까지 했다. 이런 차림으로 이제 입신양명을 위해 고향을 떠나 도시로 향하는 두 개. 시골을 떠나 도회지로 옮긴다는 건 현대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급속한 현대화의 와류, 소용돌이 속으로 자진해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들 앞에는 다양한 도시의 모습이 등장하게 되는데, 길거리 쇼단의 일원이었다가 부유한 인간에 입양되기도 하고, 감옥에 들어가 지옥 경험을 하고, 웃기게도 오디션 프로에 참가했다가 미역국도 먹고, 이것저것 다 버리고 귀향을 결심했지만 그래도 도시가 좋아 멍멍 짖는 특기로 경비원 생활도 했으며, 강도질도 하더니 결국 도시엔 적응을 하지 못한다는 줄거리.
  이 연극 속에는 관객이 보고 배울 캐릭터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멍징후이가 주장하는 선봉연극, 아방가르드, 현 사회의 모순에 대한 발언을 서슴지 않기 위하여 모순의 부근에 있는 인물들을 강하게 풍자해야 했으니. 뭐 그렇다고 전부 죽일 놈들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좀스런 비리 유발자 정도들이다. 읽는 도중 내내 궁금했던 것이 아무리 현대화 되었다고 해도 시진핑 정부 하에서 이런 내용의 공연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 중국은 여전히 공산주의 국가라서 어린 시절부터 교육기관을 통해 중국공산당과 중국 자체에 대한 약하지 않은 정도의 사상 교육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반 시민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극장에 들어와 연극을 보고 즐긴다 해도, 문화를 담당하는 관리들이 멍징후이를 내버려 두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이이의 작품을 가지고 쉽게 장기공연을 하지는 못 했을 거 같다.
  안 읽어보실 거 알지만, 한 가지 덧붙이자면, <떠돌이 개 두 마리>는 아마 우리말로 공연하기가 극도로 어렵거나 가능하지 않을 듯하다. 만일 공연한다면 우리 식으로 완전하게 대사를 바꾸어야 할 테고, 그렇다고 해도 맛을 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가장 좋은 건 희곡을 감상하는 일일 터. 재미있는 작품이긴 하지만 전공자 말고 읽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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