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마샤르의 환상 서문문고 318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피종호 옮김 / 서문당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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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필 미국 극작가의 작품을 읽고 곧바로 독일 출신 극작가의 작품은 연이어 읽게 됐다. 굳이 나이로 구분해보자면,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유진 오닐,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와 테네시 윌리엄스, 이렇게 비교해야 하겠지만, 사실 세대 차이는 이들의 특징과 별로 관계가 없는 것 같다. 단적으로 이야기해서, 미국의 극작가들이 다루고 있는 단위가 주로 가족인 반면, 독일(어권) 극작가들은 한 나라, 도시 등 보다 넓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포착하려 하지 않았나, 하는 의미.
  이것은 필연적으로, 아니, 다시 말해야겠다. 아마추어 독자인 내가 느끼는 한에 있어서, 미국 극작가들의 인간 개별적인 감상이 훨씬 호소력이 있는 반면, 독일 극작가들의 작품에는 사회 현상에 대한 분석과 풍자가 두드러진다. 비록 내가 미국의 극작가들을 더 선호하지만 그렇다고 독일(어권) 극작가 역시 멀리 할 수 없는 이유다.
  여태 읽었던 브레히트는 단 한 권. 희곡 <서푼짜리 오페라>, <억척어멈과 그 아이들>, <갈릴레이의 생애>와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들어있는 동서문화사 책이었다. 극작가의 절친한 친구가 작곡한 쿠르트 바일의 오페라 <마하고니 시의 흥망성쇠>의 대본을 통한 것까지 합하면 <시몬 마샤르의 환상>이 다섯 번째 만난 브레히트의 극작이지만, <마하고니…>는 읽지 않은 걸로 치자.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백억 프랑을 들여 견고하게 쌓은 마지노선을 우회해 프랑스를 침략한 독일군에게 어이없이 파리를 내준 1940년 6월 14일부터 6월 22일까지, 생마르탱 시市를 무대로 하고 있다. 6월 22일? 놀랍게도 세계대전 개전 초기인 1940년 6월 22일에 독일과 프랑스는 휴전한다. 물론 후세의 역사가들은 당시 휴전 협정에 서명한 비시 정부를 ‘괴뢰 정부’라 일축하지만, 하여튼 일신상의 이유로 나치에 협력하기로 결정한 앙리 필립 페텡 원수가 휴전 협정에 서명한 것은 사실이다. 이로써 프랑스는 비록 잠깐이지만 독일의 속국으로 편입된 것도.
  베르톨드 브레히트는 이 사실과 저 먼먼 15세기 시절 백년전쟁 당시의 샤를 7세, 즉 오를레앙의 처녀, 잔 다르크가 참전하고 화형을 당했던 시기와 뒤섞어 비교하는데, <오를레앙의 처녀>를 시간 날 때마다 탐독하던 생마르탱 시의 한 여관에 하녀로 일하는 소녀 시몬 마샤르의 꿈과 백일몽을 통해 당시 인물들과 등장인물이 겹치게 만들어 놓았다. 즉, 시몬의 꿈이나 백일몽 속에서 생마르탱의 시장은 샤를 7세로, 탈영한 프랑스 중대장 오노레 페텡은 부르군트 왕국의 공작으로, 여관 주인의 어머니 마리 수포는 샤를 7세의 모후 이자보 등으로 역할을 하게 된다. 다만 장소는 현재, 독일군이 코앞에 있거나 이미 진주한 생마르탱 시의 운송업을 겸해 화물차가 몇 대 있는 여관의 큰 마당에서.
  브레히트가 강조하고자 하는 건, 저 옛날 오를레앙의 처녀가 프랑스의 국법에 의하여 화형에 처해졌듯이, 1940년 6월의 생마르탱에서 잔 다르크의 화신이라 할 수 있는 시몬 마샤르 역시 프랑스 사람들로 구성된 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모종의 조치가 취해진다는 것. 그럼 법원의 판사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전부 친 나치 성향의 인물이냐? 오히려 그러면 그만인데, 그렇지 않다는데 더 큰 비극이 있다. 아니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대한 환경의 변화에서 상류의 시민들이 자신의 보전을 위하여 소신을 버리는 행위일 수 있다.
  아쉽게도 브레히트의 작품으로는 특유의 반짝거림이 좀 덜하다. 물론 이건 바로 전에 테네시 윌리엄스의 명작을 읽을 후유증일 수도 있어서 전적으로 작가 탓을 할 수 없기도 하지만, 하여튼 독자가 읽기에 그랬다. 독자의 눈이 쓸데없이 높아져 그랬다 하더라도 다 그게 팔자라고 생각해 박하게 독후감을 쓴다고 독자를 원망하지는 말 것. 아무리 그래도 재미없는 건 재미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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