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팀 오브라이언 지음, 이승학 옮김 / 섬과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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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팀 오브라이언 스스로가 1968년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징집되어 1969년부터 70년까지 베트남전에 사병으로 참전한 전력이 있다. 1968년에 대학을 다녔으면서도 베트남으로 가야 했던 젊은이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1968년의 들불 같은 반전 운동을 겪은 미국의 젊은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청년들은 약간의 돈과 대량의 대마초가 든 가방을 등에 지고 캐나다로 거주를 옮겨 ‘양심적 병역거부’를 실천에 옮겼으며, 훨씬 더 많은 청년들은 심각하게 양심적 병역거부를 고민하다 베트남 전쟁에 휩싸이기 위한 군사교육을 받았고, 아주 적은 청년들은 미국 내에서 끝까지 참전을 거부하며 기꺼이 전과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하여 1968년 이전에도 그랬지만 특히 그 해를 기점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미국 병사들은 전장으로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왔을 때 역시 미국 역사상 어느 전쟁과 비교해도 환영을 받지 못했다. 미국인들이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전쟁에 반대하고, 그 전쟁에 참전했던 것을 자랑스레 이야기하지 않는/않았던 두 번의 전쟁이, 우연하게도 동(남)아시아에서 있었던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뿐이다.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최초로 승리하지 못했으며, 베트남에서 건국 역사상 최초로 패전의 멍에를 썼다.

  불명예스러웠던 베트남 전쟁을 다룬 많은 작품이 나와 있다. <디어 헌터>, <지옥의 묵시록>,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하룻밤>, <프래툰> 같은 영화부터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 <하얀 전쟁>으로 제목을 바꾼 안정효의 <시장과 전장>,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등의 우리나라 소설들이 떠오를 뿐, 놀랍게도 외국(특히 패전국인 미국) 문학에서 진지하게 베트남 전쟁을 그린 소설 작품은 생각나지 않는다. 장교여야 하지만 작품을 쓰기 위해 일부러 사병으로 지원해 경험한 것을 쓴 태평양 전쟁 소설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의 작가 노먼 메일러의 <밤의 군대들>은 위에서 얘기한 1968년 반전 운동을 현장 취재한 것이고, 알렉시 제니의 <프랑스식 전쟁술>은 미국과의 전쟁 이전 베트남에서 벌어진 독립투쟁으로의 인도차이나 전쟁을 부분적으로 다루었으니 그것도 해당이 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나도 베트남 전쟁에 관한 미국인들의 작품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팀 오브라이언의 다분히 자전적, 경험적인 소설 또는 이야기인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을 재미있게 읽었을 수밖에. 오브라이언은 자신이 경험했던 베트남 전쟁에서의 여러 단편fragment들을 여러 매체를 통해 먼저 발표하고, 나중에 그것들을 모아 서로 연관 있게 배열하는 효율적인 방법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말단 병사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한다. 책의 제목인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은 각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짊어지고, 들고, 몸에 부착하고 다닌 것들을 개별 장비, 무기, 보호구, 개인 지참물 등을 뜻하고, 작가는 이것들에 관해 무게, 길이 등을 독자에게 상세하게 보고한다.

  전투를 위한 준비물과 무기 말고, 소대장인 지미 크로스 중위는 뉴저지 주의 마운트 서배스천 칼리지 3학년에 재학중인 ‘마사’라는 이름의 아가씨가 보낸 편지 뭉치와 사진을 가지고 다니면서 일과가 끝나면 참호를 파고 그 안에서 보는 습관을 들였는데 이때마다 뉴햄프셔 화이트산맥으로 낭만적인 캠핑을 떠나는 상상에 젖고는 한다. 헨리 도빈스는 덩치가 거구인지라 다른 건 빠뜨리더라도 여분의 식량은 꼭 가지고 다니고, 데이비드 젠슨은 야전 위생 훈련을 받은 경험이 있어서 칫솔과 치실을 항상 지참하고 여기다가 요양휴가 중에 훔쳐온 호텔용 크기의 비누 바를 배낭 옆구리에 챙기는 걸 잊지 않는다. 4월 중순에 탄케 마을 수색 중 머리통에 총알이 박힐 예정인 테드 라벤더는 원래 겁이 많은 친구라서 이걸 보완하기 위해 진정제를 아침마다 서너 알씩 먹는 버릇이 있고 여기에 6~7 온스의 질 좋은 마리화나를 어딘가에 숨겨 다닌다. 밀림 속에서는 아무 쓸모도 없는 콘돔은 무전병 미첼 센더스의 전투복 상의 주머니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일곱 개의 훈장을 받고 제대해 귀국하는 노먼 보커는 쓰지도 않는 일기장을, 랫 카일리는 만화책을, 인디언 출신 침례교도 카이오와는 아버지가 선물한 신약성경 없이는 아무 곳에도 가지 않는다.

  전쟁터는 진짜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있는 것이라 세상 어느 곳보다 징크스가 심하리라는 건 당연하다. 그리하여 이들은 자신만의 잡동사니를 마치 부적처럼 가지고 다니기도 하는데, 카이오와는 신약성경과 더불어 발소리를 없애주는 사슴 가죽 모카 신발 한 켤레(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아무 작품 참조), 데이브 젠슨은 카로틴이 풍부한 야맹증 개선 비타민, 리 스트렁크는 최후의 무기라고 주장하는 새총, 랫 카일리는 브랜디와 M&M 초콜릿, 테드 라벤더는 6.3 파운드나 나가는 야간투시경을, 그리고 헨리 도빈스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부적으로 여자친구의 팬티스타킹을 목에 두르고 다닌다. 도빈스는 얼마후 여자친구로부터 결별 선언 편지를 받지만 잠깐 고민하다가, 그래도 팬티스타킹이 자신을 보호해주는 능력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 믿으며 계속 목에 감고 다닌 결과 책이 끝날 때까지 상처 하나 입지 않는다.

  전쟁은 장난이 아니다. 인간을 가장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상황을 우리는 전쟁이라 부른다. 애초에 세상에 정당한 전쟁은 없다고 믿는 나는 같은 맥락에서 모든 전쟁에 반대한다. 그래 이 책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참상, 시신들이 함부로 훼손된 광경, 차라리 몸이 터져 하늘로 솟구치며 나뭇가지에 바로 전까지 함께 농담한 친구의 내장이 걸리고, 나무를 기어 올라가 그걸 수습하는 일. 끊임없이 폭우가 내리는 절정의 우기에 마을의 공동변소 비슷한 용도로 사용하던 곳을 하필이면 야영지로 골랐다가, 하필이면 박격포의 집중 포격을 받고, 하필이면 가장 진중하던 카이오와가 치명상을 입은 상태로, 하필이면 똥의 늪 속으로 빠지는 걸 뻔하게 보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구출해낼 수 없는, 참경들.

  팀 오브라이언은 참경과, 그걸 목도했던 병사들이 훗날 무력감과 후유증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이런 것들 ‘만’ 쓰고 있지 않다. 그는 과거 베트남에서 겪었던 일들과 이에 관한 트라우마와 치유라기보다는 그것, 기억들, 후유증과 함께 살아내기를 말하고 있는데, 이의 해결을 위한 방법으로의 “이야기”, 이야기를 만드는 것, 이야기를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 그것을 통해 전쟁, 궁극적으로 죽음과의 화해를 도모하고 있다. 이것이 오브라이언이 글을 쓰는 목적이라고, 단순히 이 책만 읽으면 결론을 낼 것 같다. 그래서 작가의 경험을 중심으로 써내려간 단편의 모음을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 다 빼고, 전쟁터에서 수컷들의 일상적인 욕설도 빼고, 빼어난 문장을 중심으로 감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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