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 크툴루의 부름 외 1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7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김지현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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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쉽다. 열흘만 빨리 읽을 것을. 비 내리는 주말 한 여름 밤, 이미 모두 잠 든 밤, 빗소리가 창문을 때리는 소리만 충일한 시간, 창으로 습한 바람이 훅훅 끼쳐올 때, 혼자 스탠드 불 아래 이 책을 읽고 있었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가끔 뇌성벽력을 때려 약하게나마 창틀이 오그르르 우는 밤이면 더욱 어울렸을 것이고.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 책을 읽으면서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지만 도저히 그만 둘 수 없는 유혹적인 호기심. 이젠 마음에 때가 끼어 소스라치거나 오소소 소름이 돋는 일은 없었지만 내내 불길한 몽환 또는 즉물적 현상이 당장이라도 이 한 밤에 벌어질 것 같은 공포감. 하, 이런 느낌은 중학교 시절 영화 <엑소시스트> 보고 한밤의 골목길 걸어 집에 갈 때의 팽팽한 신경줄 이후 처음이다. 저 어둑한, 아니, 옻빛같이 깜깜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골목길의 한 구석에서 무엇인가가 내가 다가갈 때까지 도사리고 있다가 일시에, 순간적으로 확 달려들 것 같은, 결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임은 확신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느껴야 했던 모종의 공포감, 혹은 두려움. 이 정도면 이해하시겠지. 그리하여 이 책을 읽는 것은 한 여름 밤을 위한 최고의 선택일 수 있다.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공포는 첫째가 지하, 두 번째가 죽음, 세 번째가 지구 외의 행성에서 오는 불길한 실제 형상에 관한 이야기의 형태로 표시된다. 나는 아파트 7층에 살고 있는데, 고층의 아파트에 사는 도시인임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러브크래프트의 지하 세계에 관한 집착은 말 그대로 그로테스크하다.
  이이보다 한 세기 앞서 영국의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생체 과학자를 등장시켜 이미 죽은 사람들을 얼기설기 꿰매 한 생명체를 만든 바 있으나, 이 새로운 생명체는 자기 번식 본성 또는 세상에 오직 혼자라는 외로움에 절망해 결국 극지방의 얼음나라로 향하는 운명이었으나, 러브크래프트가 만든 새로운 생명은 이것과 조금 다르다. 모두 열세 작품을 다 소개할 수 없어 <시체를 되살리는 허버트 웨스트>만 예로 하여 <프랑켄슈타인>을 소환했던 바, 이 작가는 죽음의 본질과 죽음을 인위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가설을 세운 한 똑똑한 의과대학생이, 생명이란 근본적으로 기계작용에 의한 현상이란 전제, 즉 대단히 유물론적인 입장에서 시체를 소생시킬 수 있는 약물 개발을 하는 과정과 결과를 섬뜩하게 묘사하고 있다.
  의과대학생 허버트 웨스트는 “영혼이라는 건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헤겔을 신봉한다. 그리하여 나름대로 생명을 소생시키는 화학물질을 개발하였으며, 대학 3학년 시절부터 죽음의 상태에서 다시 생명을 주는 실험을 하기 위해 무수한 실험동물을 학살해 드디어 헌신적인 의사이자 의대 학장인 앨런 할시 박사에 의하여 더 이상의 동물 생체실험을 금지당하고 만다. 화자 ‘나’는 일견 천재성이 돋보이는 웨스트와 동기이지만 기꺼이 그의 조수 노릇을 하여 실험에 참가했던 것인데, 이런 상황에 처하자 웨스트는 곧바로 어떻게든 신선한 인간 시체를 구해서 비밀리에 실험을 지속하고자 언덕 뒤에 버려진 농가에 수술실과 실험실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아무 시체나 다 실험에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서양인들이 흔히 하듯 죽은 다음에 방부처리를 한 시신은 결코 소생시킬 수 없으며, 죽은 후 시간이 지나 뇌와 장기에 치명적 상처를 입은 시신 역시 사용할 수 없어 될 수 있는 대로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묻힌 시신을 찾기에 이르러 실험실 역시 공동묘지에 인접한 장소, 인적이 드문 곳으로 물색을 했던 것.
  어때, 으스스하시지?
  그러다가 마침내 젊고 건장한 노동자가 연못에서 익사한 사건이 벌어진다. 이 건장한 체격의 젊은이는 연고가 없어 시 당국에 의하여 방부처리하지 않고 당일 곧바로 공동묘지에 매장을 하는데, 마침 칠흑 같은 밤중이라 웨스트와 ‘나’는 회색 눈과 갈색 머리카락을 한 젊은 시신을 묘지에서 꺼내 실험실로 운반한 다음, 시신의 팔 정맥에 다량의 시약을 주사 하고나서 주사를 위해 절개한 부분을 깔끔하게 봉합을 한다. 45분이 지나도 반응이 없자 다급한 마음에 옆방으로 가서 또 다른 시약을 조제하고 있을 때, 어두컴컴한 실험실에서 터져 나온, 평생 들어본 적 없는 무시무시하고 귀기 어린 비명이 들려온다. 현세의 생명체들이 느끼는 온갖 초월적 공포와 기괴한 절망을 압축한 듯한 비명, 인간일 리 없고, 인간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닌 끔찍한 비명이 들려, 웨스트와 ‘나’는 갑자기 엄습하는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고 창문을 뛰어넘어 오두막을 탈출해 시골길을 미친 듯이 내달린다.
  다음날, 학교를 결석하고 하루 종일 잠에 빠져 있다가 오후에 신문기사를 보니, 체프먼 농가에서 원인모를 화재로 농가가 전소되었으며 무연고 묘지의 새 무덤이 손으로 긁은 것처럼 망가져 있더란 기사가 실렸다. 이후 지금은 실종 상태인 웨스트는 17년 동안 누군가 뚜벅뚜벅 자신을 쫓아오는 환청이 들린다며 종종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16년 전에,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속에서 주요 무대가 되는, 아컴 지역 전역에 장티푸스가 창궐해 웨스트와 ‘나’는 미스캐토닉 대학의 여름학기를 수강하다가 장티푸스와의 싸움에 투입되기에 이른다. 이 때 가장 영웅적으로 역병과 사투하던 인물이 바로 헌신적인 의사이자 의과대학장인 할시 학장. 하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와중이라 감시가 소홀한 틈을 이용해 시신 한 구를 대학 해부실로 밀반입하는데 성공한 이들은 또다시 시약을 주사했으나 잠깐 눈을 뜨게 만드는 것까지는 성공하고 곧바로 다시 기능을 상실하는 경험을 한다. 이 때 8월 14일, 할시 박사가 갑작스럽게 운명을 하고 15일에 장례를 치룬다. 16일 새벽 두 시에 웨스트의 하숙방에는 또다시 시신의 정맥에 시약을 주사하는 행위가 있었고, 세 시에 극한의 비명과 더불어 웨스트는 폭행을 당해 기절한 상태로 발견이 된다.
  이날부터 두 번째 공포가 시작한다. 크라이스트처치 공동묘지 경비원이 발톱 같은 것으로 살해당해 갈가리 찢겨 죽음을 당했고, 괴물이 등장해 총 여덟 집이 습격을 받아 사납게 찢어진 시신이 17구에 달했는데, 가까스로 살아남은 목격자에 의하면 기형 유인원이나 인간 형상의 악마 같은 모습이었다고 했다. 셋째 날 경찰이 이끄는 수색대가 기어이 괴물을 생포하는데 성공했다. 급박한 상황이라 발포를 해, 총을 맞았음에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괴물 또는 범인을 세프턴 정신병원에 수용을 하고 이후 16년 동안 완충제로 벽을 둘러싸 자해를 막는 특별 방에 수감시키다가 최근에 병원에서 탈출한 범인 또는 괴물이 하필이면 할시 박사와 비슷한 모습이었다는 것이 관계자의 증언이었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냐고? 아니다. 이제 반 정도 왔을 뿐이지만 결론은 안 가르쳐드린다.
  하여튼 공포, 괴기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강력 추천이다. 이런 분들은 정말 한 번 읽어보시라. 지하, 깊고, 깊고 어두운 암흑의 지하,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묻혀있는 곳에서 스며 나오는 불길한 연기와 녹색의 끈적거리는 액체, 정신을 잃을 것 같은 부패의 악취. 그 속에 존재하는 또는 존재할 지도 모르는 악령이랄까, 근원적인 죽음의 실체랄까, 그런 것들이 당신의 꿈자리까지 뒤숭숭하게 만들 터인데, 독자에 따라서는 이런 장르를 선호하기도 하니, 이게 바로 사람살이겠지. 하여간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래 별점 하나 정도는 뺄 것이지만, 여름밤에 읽기에 가히 <구미호> 이야기보다 몇 배 으스스, 오소소 소름 돋는 건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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