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입이 없는 것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275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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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시단에 1952년 용띠 시인들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황량했을까. 특히 모더니즘 쪽에서. 전남 해남 출신 황지우, 충남 연기 출신 최승자, 그리고 경북 상주 출신 이성복.
  이성복. 이이의 시집을 읽어보면 참 감각적인 시어로 인해 책마다 감탄하고는 했다. 지금 전문을 외우지는 못하고 부분만 기억해 간혹 독후감 쓸 때도 써먹는 구절이 있다. 《그 여름의 끝》에 실린 <눈물>. “수만 광년 먼 먼 별에서 흐르는 눈물 수만 광년 먼 먼 별에서 이제 막 너의 눈에 닿는 눈물……” 이것뿐인가. 《호랑가시나무의 기억》에서도 아스라한 시구詩句가 얼마나 독자의 염통과 허파 사이에 있는 거, 마음을 후비는지. 그런데 이 시집을 내고는 그만 이성복의 새 시집에 관한 얘기가 없었다. 그 사이에 십 년의 세월이 흘렀고, 우리 시인들이 가끔 젊은 나이에 시를 접는 일이 잦아, 계명대 교수를 하는 이성복이 이제 시업을 접은 것으로 알고 여태까지 살았는데, 천만의 말씀을.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이후에 십 년의 세월을 던져 오늘 독후감을 쓰는 《아, 입이 없는 것들》을 냈으며, 이후에 한 권을 더 냈다고 해서, 그건 일단 알라딘 보관함에 넣어놓았다.
  이 시집은 모두 3부, 125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들 역시 제각각이라기보다 작은 단위의 ‘소집합’들로 엮어 있다. 이성복의 나이 51세에 출간한 시집으로 이제 시인은 더할 나위 없이 완숙한 경지에 이르러, 나이든 시인이 가끔 그렇듯 그저 자신이 본 것, 경험한 일 같은 걸 그냥 이야기하는 듯이 쓴 시도 보이고, 자신의 가정사인 것처럼 읽히는 주변의 일도 시의 소재로 삼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성복인데, 이게 말이 “여전히”이지 세월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울울창창했던 시절의 감상을 지니고 있기가 쉽지 않은 법. 첫 번째 실린 시 <1 여기가 어디냐고>를 읽어보자.



  붉은 해가 산꼭대기에 찔려
  피 흘려 하늘 적시고,
  톱날 같은 암석 능선에
  뱃바닥을 그으며 꿰맬 생각도 않고
  여기가 어디냐고?
  맨날 와서 피 흘려도 좋으냐고?  (전문)



  척 봐도 저녁노을이다. 붉게 물든 하늘을 본 시인은 그걸 해가 산꼭대기에 찔려 흘린 피라고 노래를 하니 참, 이성복이 여전히 이성복인 게 맞지 않은가. 또 10년 전의 시집 《호랑가시나무의 기억》을 기억하는 독자한테 조금은 뻔뻔하게 자신은 호랑가시나무를 본 적이 없다고 고백을 하면서도 당시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꽃을, 꽃 속에 숨은 가시를 노래한다. <56 푸른 치마 벗어 깔고>.



  이제 곧 창검처럼 솟은 가시들
  사이로 사뿐사뿐 흰 꽃들
  술래잡기하다가
  지쳐 다리 뻗고 쉬려고 할 거야
  잎새들 그 밑에다
  푸른 치마 벗어 깔고
  꽃들이 떨어질까 애태울 거야
  하지만 쉽게 당하지만
  않을 거야, 너무 가벼워
  가시에 찔리지 않을 흰 꽃들  (전문)



  그리고는 곧바로 이어지는 <57 날마다 상여도 없이>에서 “나는 죽는 꼴 보기 싫어 / 개도 금붕어도 안 키우는데, / 나는 활짝 핀 저 꽃들 싫어 / 저 꽃들 지는 꼴 정말 못 보겠네 / 날마다 부고도 없이 떠나는 꽃들, / 날마다 상여도 없이 떠나가는 꽃들”이라 노래하면서 앞의 시를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시들이 개별적이지 않고 소집합을 이룬다고 한 것.
  이런 단정은 26번째부터 시작하는 일련의 시들에 이르러 모더니즘적 절정을 만들어낸다. 좀 길더라도 인용해보자. <26 어떻게 꽃은 잎과 섞여>



  어떻게 꽃은 잎과 섞여
  잎을 핏물 들게 하는가
  마라, 생각해보라
  비린내 나는 네 살과
  단내 나는 네 숨결 속에서
  내숭 떠는 초록의 눈길을
  어떻게 받아내야 할지
  초록 잎새들이
  배반하는 황톳길에서
  생각해보라, 마라, 어떻게
  네 붉은 댕기가 처음 나타났는지
  그냥 침 한번 삼키듯이
  헛기침 한번 하듯이 네겐
  쉬운 일이었던가 마라,
  내게 어렵지 않은 시절은 없었다
  배반 아닌 사랑은 없었다
  솟구치는 것은 토하는 것이었다
  마라, 나를 사랑하지 마라  (전문)



  처음 이 시를 읽을 때, 3행 “마라, 생각해보라”에서 콱 막혔다. ‘마라’가 뭘까? 시인이 프랑스 언어를 전공했다고 설마 프랑스 혁명 당시 목욕하다가 칼 맞아 죽은 장 폴 마라를 가져다 쓰지는 않았겠지만 혹시 또 몰라. 이런 생각까지 했다. 일단 모르는 것으로 하고 시를 다 읽으니 마지막에 가서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 마라, 말아라. 금지의 명령어였다. 이성복은 이 금지의 명령을 “생각해보라, 마라”로 두 번, “쉬운 일이었던가 마라,”로 한 번 쓰고 나서 “마라, 나를 사랑하지 마라”고 마무리한다. 근데 이게 이 시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다음 시 <27 네가 왜 여기에, 어떻게>에서 시인은 훨씬 더 문제적 “마라”를 다시 등장시킨다.



  마라, 네가 왜 여기에, 어떻게
  가로등 불빛에 떠는 희부연 길 위에,
  기우는 수평선, 기우뚱거리는 하늘 위에
  마라, 네가 어떻게, 왜 여기에,
  대낮처럼 환한 갈치잡이 배 불빛, 불빛에
  아, 내게 남은 사랑이 있다면
  한밤에 네게로 몰려드는 갈치떼,
  갈치떼 은빛 지느러미,
  마라, 네가 왜, 어떻게 여기에  (전문)



  이후 <28 내 몸 전체가 독이라면>에서 다시 “마라, 네 눈 속에 내가 뛴다 / 내 다리를 묶어다오 / … (중략)… / 넌 믿겠니, 나를 믿지 마라”라고 하며 다시 <29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에서도 “(전략) / 마라, 나는 너의 허리를 감는다 / … (중략)… / 지상에서 가장 / 낮은 하늘 네 눈동자 속으로 / 빨려드는 것이다 마라, (후략)”를 거쳐 30, 31번째 시까지 등장한다. “마라”가 내가 이 시집을 읽으면서 가장 주목했던 것. 시집을 다 읽으면 마지막으로 시인 강정의 해설이 나온다. 근데 해설의 제목 자체가 “오, ‘마라’가 없었으면 없었을……”이다. 해설을 읽지 않아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문가의 해설의 제목이 이렇게 뜨니까 속으로 은근히 기분이 좋다. 근데 뭐 ‘마라’ 하면 ‘말아라’ 라고 하는 뜻이며,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인지는 시마다 조금씩 다르다, 이렇게 좀 쉽게 쓰면 안 될까? 안될 턱이 없다. 시를 읽는 것도, 해석하는 것도 다 독자 마음이니까.
  이성복. 이제 이이도 어느덧 일흔 살을 눈앞에 두었구나. 이젠 어떤 노래를 할까, 궁금하다. 언제나처럼 참 세월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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