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적인 안녕 문학과지성 시인선 528
하재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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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는 시작을 “19xx년생.” 이렇게 했는데, 시집의 앞날개에 시인이 자신의 나이와 학력을 밝히지 않았는데 구태여 일종의 개인정보를 공개할 필요가 없다 싶었다. 관심 있는 독자라면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시겠지 뭐. 이 시집에 하재연의 세 번째이며 두 번째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을 낸 이후 7년 만에 빛을 봤다고 한다. 7년 만에 시집 한 권. 좋다. 한 시절 내가 참 좋아했던 시인이 있었다. 달달한 시어로 희망과 풍경과 슬픔과 기쁨과 현실을 조근조근하게 이야기했던 시인. 그러다가 정신 차려 다시 보니 이 양반이 마치 풀빵 기계에서 붕어빵 찍어내듯이 비슷비슷하게, 즉 정형화된 시편들을 대량생산하고 있더란 거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이젠 거의 없어졌지만 예전에 회사들마다 경쟁적으로 요란한 사보 만들기 시합이 벌어졌을 때, 한 달에 수십 권의 사보에 비슷한 수필이면 수필, 시론이면 시론 등 온갖 아는 척 잘난 척 같은 걸 끼적여주고 편 당 한 30만 원 가량 수금을 하던, 아직도 이름만 대면 누군지 알 정도의 잘 나가는 시인, 아니 희망과 슬픔 도매업자. 누구라고? 맞습니다, 그이. 지금도 그이 이름 검색해보면 다른 시인들과의 모음 시집 말고 자신만의 이름을 단 시집, 동화, 수필집 중에서 절판이나 품절 빼고 당장 살 수 있는 것들만 서른한 권이다. 그이에 비해 7년에 한 권 시집을 낸 하재연이 얼마나 시에 관해 구두쇠인지 짐작할 수 있다.
  시집의 가장 앞에 내세운 시 <양양>을, 마침 짧기도 하니 읽어보자.



  열 마리 모래무지를 담아두었는데
  바다로 돌려보낼 때
  배를 드러낸 채 헤엄치지 못했다고 했다.


  집에 와 찾아보니
  모래무지는 민물고기라고 했다.


  누군가의 생일이라 쏘아 올린 십 연발 축포는
  일곱 발만 터져 행운인지 불운인지 모르겠다고


  노란 눈알이 예뻤는데


  물고기는 눈을 감지 못하니까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다고 했다.  (전문)



  이거 참. 나이가 몇인데 모래무지를 돌려보낸다고 바다에다 방생을 하나 그래. 시인은 좋은 마음에서 모래무지에게 넓고 넓은 바다의 자유로운 삶을 돌려주려 했으나 바다에 살이 닿은 순간 눈알이 노란 모래무지는 죽어 배를 내놓고 둥둥 떠오르고 만다. 하긴 바다라는 무한의 공간과 죽음이란 것이 우주적인 시각으로 봐서는 동일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걸 생일 기념으로 쏘아올린 십 연발 축포와 대구를 만들어놓는 건 좀 그렇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닌데, 열 발이 터져야 비싸게 주고 산 축포가 제 값을 하는 셈이지만 겨우 일곱 발만 터졌으니 30퍼센트의 실패인가, 아니면 행운의 숫자인 일곱이 나왔으니 행운의 별점인가 헛갈린다는 의미, 이것이 바다라는 무한의 자유 또는 죽음을 맞은 노란 눈알의 모래무지 방생하고 비슷한 기분이기는 힘들지 않겠나 하는 것뿐이다. 아닌가? 민물고기 모래무지를 바다에 방생하는 장소가 양양, 날마다, 밤마다 양양의 바닷가에서는 누군가의 생일 기념 축포가 쏘아져 올라가니 모래무지를 방생해 살거나 죽거나 할 확률 7할과 3할의 경계, 그날도 일상적인 축포가 터진 장면을 묘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겠고.
  시집 2부의 첫 시도 제목을 <양양>으로 했다. 그 시에서는 모래무지 대신 해마가 등장한다. “(전략) 눈 뜬 해마는 식물 같아, / 수컷이 새끼를 낳는다지. // 너는 해마가 약으로도 쓰인다고 / 멸종 위기라고 // 물에 사는 고기들이 / 다 고기인 건 아니라고. // 다음 날이 도착했는데 // 죽은 해마와 / 나는 사람이 먹어야만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문제는 대한민국 강원도 양양군과 접해있는 바다에는 해마가 살지 않는다는 거. 그러니 이건 시인이 머릿속에서 바다와 해마라는 특이한 생물을 상상하면서 쓴 것일 텐데 독자인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해마와 수컷이 자기 배 속에 수정란을 포란하고 있다가 새끼를 낳은 습성과, 다음 날이 도착했을 때까지, 아니면 도착함과 동시에 “죽은”해마, 그리고 먹어야 살 수 있는 인간에 관하여 생각했는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시인은 음절 ‘양’ 또는 ‘영’처럼 입술이 벌어지는 ‘ㅇ’과 닫히는 ‘ㅇ’에 관심이 있다. 대표적인 단어가 “안녕.” 사실 ‘안’은 입술이 벌어지게 하는 것은 ‘ㅇ’이 아니라 모음 ‘ㅏ’이지만 시인도 알고 썼으니 독자도 맞춰서 읽어야 에티켓일 것이다. 입술이 닫히는 ‘ㅇ’도 받침 ‘ㅇ’이 아니라 입술이 (조금) 닫히는 모음 ‘ㅕ’인 것과 마찬가지로. 근데 아닐지도 모르지만, 아니, 아닐 확률이 거의 100퍼센트지만 시인은 ‘ㅇ’을 쓰기 시작할 때의 점과 끝날 때 마지막 연필이, 볼펜이, 만년필이 시작점과 맞추느냐, 마주치지 못하느냐 하는 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거 같다. 만일 처음과 끝이 만나 원을 이룬다면 윤회, 우주가 되는 것이고, 마주치지 못한다면 처음은 탄생, 끝은 죽음의 한 사이클에 머무는 거라고. 맞아? 그건 독자 개개인이 판단하실 일. 하여간 시인이 보기엔 “안녕, 하는 입술이 벌어지는 ㅇ과 닫히는 ㅇ을 / 소리 없이 흉내 내며 눈이 그칠 줄 모”르는데 눈 속에서 “토성의 고리가 되어버린 어떤 죽음을 생각”한단다. (<양피지의 밤>) 이 죽음은 말할 것도 없이 W.G. 제발트일 터.
  이번 시집의 중요한 시적 소재 가운데 하나는 음악. 아예 시의 제목을 <해변의 아인슈타인>이라고 박아놓고 시작하는 시는 필립 글래스가 작곡한 동명의 오페라를 염두에 두고 쓴 것 같은데, 필립 글래스의 작품을 듣는 일 자체가 지적 수준이 어느 단계에 오르지 않은 나 같은 이들에게는 고문일 뿐이라서 그런지 “검은 지구의 밤하늘이 조금 더 / 검어졌습니다.”로 끝나는 시가 무엇을 주장하는지 그저 감감할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페이지를 넘기면 <평균율>. 피아노 공부하는 분들이 피아노의 구약성서라고 한다는 바흐의 작품이지만 나도 평균율 1집과 2집, 합해서 넉 장의 CD를 한 번에 다 들은 경험은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의 녹음으로 딱 한 번뿐이다. 그것도 솔직히 음악 감상이 아니라 인내심 테스트 수준이었음을 고백하겠다. 그런 음악을 “오늘 엄마와 손잡는 꿈을 꾸었어, / 내일도 손을 잡아줘 조금 힘껏, 아프지 않게 // 세계를 열두 가지 색으로 나누면 무지갯빛이 아니라 / 희고 검은 색들만이 나는다.”라고 하면서 엄마와 손을 잡는 꿈을 꾸는 소년시기임에도 세계가 일곱 개의 흰 건반과 다섯 개의 검은 건반, 합해서 열둘의 희고 검은 색만 남는다는 건, 피아노를 연습하는 고통을 이야기한 것인지, 평균율이 세상을 대표하는 예술이라는 뜻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하재연의 시집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과하게 우울하다는 거. 첫 시 <양양>에서 민물고기 모래무지를 무지하게끔 바닷가에다 쏟아버려 죽이는 것으로 시작해 마지막 시 <행성의 고리>에서 “우리는 어디선가 이어져 있겠지 / 찌그러진 타원형의 바깥들에 매달려 / 계속해서 바깥이 되어가고 있겠지 // 검은 우주처럼 // 끝없이 돌면서 / 팽창하면서”라고 노래하며 기어이 안착하지 못하고 안쪽 행성 대신 행성의 고리에 머무는 우울한 코다로 마감한다. 오늘 독후감을 시작할 때 저 위에서 예로 든 시인은 당시 우울의 극에 달했던 사회분위기에서 희망을 이야기하고, 슬픔과 동시에 기쁨을 노래했던 바, 당시 독자들에게 새로이, 아름다움은 슬픔 속에 있다는 놀라운 진실을 밝혀, 반백년에 조금 모자란 세월 동안 그걸로, 아직도 먹고 산다. 그러나 우울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극도의 우울로 나름의 터전을 잡은 극소수의 몇몇 시인을 제외하고, 아니, 그들이 이미 우울과 절망의 효용을 다 소진해버렸기 때문에 아직까지 남은 우울은 우중충함 또는 개인 화장실과 비슷한 것 외 새로운 우울의 전망을 발견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싶다. 시인들이? 그럴 리가 있나. 독자인 내가 그렇다는 말이지.
  나는 너무나 자주 우울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1 이젠 색다른 우울, 우울의 새로운 전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당분간 옛 시인들의 노래를 감상해보기로 작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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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수영의 시 <거미>,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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