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다 갈라진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17
김기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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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곱추>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을 했다 한다. 몇 번을 변명했다시피 내게 80년대 말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낮엔 열심히 일하고 밤엔 죽자고 술 퍼마시던 시기라 시 따위를 읽을 겨를 같은 건 애초에 없던 시기다. 그러니 시인의 이름이 낯설 수밖에. 근데 어떻게 이 시집을 사게 됐느냐고? 별 거 없다. 시집 뒤편에 달려 있는 <해설>을 오생근 씨가 썼다는 이유로 고민 없이 골랐다. 그러나 지금 독후감을 쓰기 위해, 천생 평론가인 오 씨의 시집 해설 읽기는 미루어 두었다. 그의 해설을 읽는다면 김기택의 시에 관한 온전한 감상은 (그것이 비록 남루할지언정) 절대 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평론가의 글은 자주 독자의 머릿속에 돌에 새겨놓은 관념으로 작용한다.
 시집을 열면 나오는 첫 번째 시가 <우주인 2>이다.


 우주인 2


 몸무게 없는 몸으로 그는 검푸른 창공에 홀로 떠있습니다. 깊디깊은 허공에 익사하여 온통 부력만 남은 무중력 하늘에 둥둥 떠다니고 있습니다. 벌어진 입과 귓구멍 콧구멍에 무한을 가득 채운 채 끝없이 투명한 공기에 매장되어 있습니다. 막힘없이 펼쳐진 하늘에게 목 졸리고 숨구멍 막히고 팔다리 결박되어 우주 쓰레기들과 함께 떠돌고 있습니다. 놀란 입을 벌리고 눈을 허옇게 뒤집고 있는 공포는 아직도 우주선에서 조난당하고 있는 중입니다. 영혼과 천연 방부제가 배합된 우주 공기는 오래 묵은 미라를 칭칭 감아 하늘 높이 별처럼 띄워놓고 있습니다.



 시집을 발간한 시점이 2012년. 난 이 시를 읽으며 송구하면서도 섬뜩하게도 김민정의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에 든 시 <곡우>, 이날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는 24절기 중 여섯 번째 절기인 곡우穀雨와, 2014년 곡우를 즈음해 사고가 난 세월호 사건을 애도하기 위한 哭의 비, 곡우哭雨를 중의한 시 <곡우>가 떠올랐으며, 다시 강조하건데 송구하면서도 섬뜩하게도 세월호 안에 갇힌 채 익사한 넋들을 떠올리고 말았다. 제목이 <외계인>이고 외계인이 익사한 공간이 검푸른 창공, 그것도 “투명한 공기에 매장된 창공”일 뿐, 사실 우주의 투명한 공간들과 물속, ‘매장된 곳’과 ‘세월호 내부’는 적어도 비슷하거나 같은 개념이니 이 시를 읽고 이리 생각한 독자는 분명히 나 한 명은 아닐 듯하다. 그렇다. 시가 섬뜩하다. 시를 읽으면서 왜 이런 자유로운 연상 작용이 가능한가 하면, 시인이 익사체 또는 익사체로 보이는 대상을 상당히 객관화 하여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읽어온 시들 가운데 죽음을 주제, 적어도 소재로 한 것들이 어디 한두 편이었나. 그것들 가운데 이 시만큼 노골적인 죽음의 상태를 내놓고 묘사한 것을 나는 기억할 수 없다. 물론 시를 읽어온 내력이 일천하기는 하지만.
 두 장을 더 넘기면 <넥타이>란 제목의 시가 또 하나 나온다.



 넥타이



 목이 힘껏
 천장에 매달아 놓은 넥타이를 잡아당긴다
 공중에 들린 발바닥이 날개처럼 세차게 파닥거린다


 목뼈가 으스러지도록 넥타이가 목을 껴안는다
 목이 제 안에 깊숙이 넥타이를 잡아당인다
 넥타이에 괄약근이 생긴다


 발버둥치는 몸무게가 넥타이로 그네를 탄다
 다리가 차낸 허공이 빙빙 돈다


 몸무게가 발버둥을 남김없이 삼키는 동안
 막힌 숨을 구역질하는 입에서 긴 혀가 빠져나온다


 벌어진 입이 붉은 넥타이를 게운다
 수십 년 동안 목에 맸던 모든 넥타이를 꾸역꾸역 게운다
 게워도 게워도 넥타이는 그치지 않는다


 바닥과 발끝 사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줄어들지 않는 한 뼘의 허공이
 사람을 맨 넥타이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



 실감나시지? 넥타이로 목을 매단 사람이 죽어가는 몇 분을 그대로 그려놓았다. 시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진심으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상당히 잘 쓴 시 아닌가 싶다. 마지막 연, “바닥과 발끝 사이 / 아무리 발버둥쳐도 줄어들지 않는 한 뼘의 허공”, 이 절망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생과 사의 간극을 어떻게 더 절묘하고 극명하게 묘사할 수 있겠는가. 지금 시집의 앞날개를 보니까, “시인은 다양한 죽음의 사건을 인간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본다.”라고 써놓았다. 이 독후감을 쓴 다음 곧바로 읽을 오생근 씨의 해설에 나온 문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적확한 설명이다. 조금도 애도나 안타까움이나 동정의 묘사도 포함하지 않은 죽음 날 것의 상태에 관한 묘사. 그런데 어쩔 수 없다. 읽기가 힘들다. 이런 시들은 위에서 얘기했듯이, 절묘한 묘사를 든 시라 할지라도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물론 모든 시가 다 이렇지는 않다. 예를 들어, “우산들은 어떻게 공기 속에서 비 냄새를 찾아내 / 첫 빗방울이 떨어지자마자 활짝 펴지는 것일까. / 눈물은 어떻게 슬픔이 지나가는 복잡한 길을 다 읽어두었다가 / 슬픔이 터지는 순간 정확하게 흘러내리는 것일까. / 저 많은 꽃들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 봄과 나뭇가지에 마련된 자리에 찾아와 한꺼번에 터지는 것일까. / 비가 그치면 저 많은 우산들은 / 어떻게 제 이름이 새겨져 있는 자리를 찾아 일시에 증발해버리는 것일까.”(<우산을 잃어버리다> 부분)라고 삶과 자연의 연관을 잃어버린 우산을 통해 노래하기도 한다. 그래도 내 경우엔 죽음의 임팩트가 과했다. 좋은 시집이기는 하지만 내게 맞지 않는 것을 남에게 추천할 수는 없는 것. 아쉽지만 이 시집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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