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프 민음사 모던 클래식 69
다니엘 켈만 지음, 임정희 옮김 / 민음사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1974년 생 독일 본 태생의 여성작가 율리 체를 읽고, 나는 최근에 “평행 우주”라는 현대물리학 용어를 이용해 특정 상황에 대해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인지, 진실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지, 라는 의문에 관해 독후감을 썼다. 오늘 1975년 생 독일 뮌헨 태생 남성작가 다니엘 켈만의 <에프F>를 읽고서도 비슷한 얘기를 하게 될 것 같다.
 특정 사건이나 행위, 결과물을 놓고 이를 생산하고, 원인이 되고, 주체가 되는 인물이 확실하고, 정말로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 켈만은 <에프>를 쓰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 <에프>의 주된 관점은 의심, 혼돈, 역할의 전이 등으로 나타난다. 이를 위해 아버지 ‘아르투어’와 그의 첫째 아들인 가톨릭 사제 마틴, 마틴의 배다른 쌍둥이 형제 이반과 에릭을 등장시킨다. 만일 일란성 쌍둥이 형제 이반과 에릭을 캐스팅하지 않았다면 작가는 훨씬 더 많은 분량의 글을 보태야 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는지는 역시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그렇다. 지금 이후 독후감을 아무리 많이 써내려간다 해도 이 다중적인 의미와 열린 결말과 얽힌 관계를 갖는 매력적인 작품 <에프>를 어떤 작품이라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그저 직접 읽어보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혼남이자 거의 아마추어 수준의 작가인 아르투어 씨는 하루 날을 잡아 두 번째 아내가 낳은 일란성 쌍둥이 아들 이반과 에릭을 데리고 첫째 아내가 낳은 아들 마틴을 만나러 가는 것으로 작품은 시작한다. 원래 아버지와 아들 사이라는 것이 나이를 불문하고 별로 살갑지 않아 어디를 갈까, 잠시 궁리하다가 최면술사의 공연을 보러가기로 한다. 최면술사 린데만 역시 다른 최면술 공연과 다름없이 관객 중에 몇 명을 무대에 올려 최면을 거는 시범을 보이는데,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우리의 주인공 부자들을 불러낸다. 자긴 최면에 걸리기엔 너무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아르투어 씨는 최면을 시도하는 린데만에게 계속적으로 자신은 최면에 걸릴 수 없는 인간이라 말하지만 최면술사는 아르투어에게 자신과 자신의 일인 창작을 위해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현실에서 도망치는 것이 어떤가, 라고 최면을 건다. 결코 최면에 걸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아르투어 씨는 그길로 첫째 아내 집 앞에 아들 셋을 내려놓고, 부부 공동 계좌에서 전 재산을 인출해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테니 기다리지 말라는 전보를 보내고는 떠나버렸다. 이후 세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아버지를 다시 본 일은 결코 생기지 않는다.
 책의 1부는 이렇다. 2부는 가톨릭 사제가 된 큰아들 마틴의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된다. 작은 비밀 하나 알려드릴까? 내 주위에 가톨릭 신부도 있고, 가톨릭 환자 수준의 신자들도 무척 많고, 사제나 수녀의 아버지들도 몇 있다. 그 사람들에게 들었는데, 사제들이 가장 번민하는 것이 (그들의)하느님이 정말 존재하는지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 서품 받기 바로 전에 신앙을 포기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하는데, 이게 진실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 들었다는 말씀이니 오해는 마시라. 마틴 역시 천주의 존재에 대하여 심각하게 의문을 갖는 사제로 등장한다. 천주의 존재를 의심하는데 어찌 기적과 용서와 죄의 사함을 인정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틴은 습관적으로 미사를 집전하고, 고해를 받으며 보속을 주문한다. 어느 날 “버블 티는 내가 좋아하는 차가 아니야.”라는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은 청년이 자기가 한 남자를 살해했다고 고해한다. 버터플라이, 나비 모양으로 날개를 휙 접어 날을 펼치는 잘 드는 칼로 푹, 쑤셔 죽여 버렸단다. 이걸 어떻게 하지? 경찰에 연락을 해야 하나? 고해 신부로서 비밀을 준수하며 그의 죄를 사해주어야 하나? 마틴은 그냥 손쉽게 죄를 면해주지만 세속의 형법 상 무죄판결을 아님을 밝혀야 한다. 고해를 마치자 이복동생 에릭의 비서에게 전화가 와서 그를 만나러 가 점심을 먹고, 몇 십 년 만에 유명 소설가가 된 아버지가 찾아와 만나고 하루를 보낸다.
 1부에서는 부자가 서로 떨어져 살게 되고, 2부에선 위에서 설명한대로 큰아들 마틴이, 4부에선 유능한 자산관리사가 된 에릭, 5부에선 원래 화가가 되려고 했으나 자신만의 예술을 발견하는데 실패해 큐레이터로 직업을 바꾼 이반이 등장한다. 3부는 이 부자들의 선조가 어떤 내력으로 자신들의 DNA 디옥시리보 핵산을 후대로 이어갔는지 가계가 잠깐 소개된다.
 그래 문제는 1부(아버지 아르투어와 최면술사 린데만), 2부(마틴), 4부(에릭), 5부(이반)이 서로 얽히고설킨 사건과 관계와 소통불능이 F적으로, 라틴말로 Fatum, 운명적인 연결고리로 엮여 난장판을 이루게 된다. 이들 가족 간의 이런 불행, 적어도 행복하지 않은 상태의 상관관계와 원인은 등장인물들이 결코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가운데 오직 한 명, 독자만 마치 구름 위의 신들처럼 알게 되는 것도 재미있다. 물론 세 아들보다 인생을 많이 살아 약간 도가 튼 아버지 아르투어는 눈치 정도를 채고 있는 것 같지만. 이런 운명의 난장판, 그 속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당신과 나를 비롯한 모든 인류일지니, 나는 이 책 <에프>를 참 재미있게 읽었으며, 작가 다니엘 켈만의 다른 작품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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