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플로야 을유세계문학전집 91
샬럿 대커 지음, 박재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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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초반인 1806년에 출간한 작품. 작가 샬럿 대커가 1771년 말과 72년 초 사이에 태어났다. 조금 차이가 나지만 책을 읽으면서 더불어 생각나는 영국 여류 작가가 있었다.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 이 사람들의 작품을 흔히 ‘고딕소설’이라고 한다. <조플로야> 역시 고딕. 한 마디로, 조금 괴기스럽다.
 15세기가 저물어 갈 무렵 베네치아에 로레다니 후작 가문이 있었는데, 후작은 17년 전에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라우리나 디 코르나리 양과 혼인을 해서 연년생으로 아들 레오나르도와 딸 빅토리아를 두었다. 라우리나 코레다니 후작부인에겐 자신이 언제나 찬사의 대상이 되고 싶어 하는 욕망, 허영심, 자부심이 과도한 것이 흠이었다. 후작부인이 열다섯 살에 스무 살 먹은 로레다니 후작을 만나 결혼을 해서 아이 둘을 낳아 이제 자식들이 사춘기의 문턱을 넘어설 때까지, 라우리나 부인은 그저 사치를 떠는 일 말고 별로 생각할 거리가 없었다. 심지어 정조를 지켜야 하는 이유도, 노력도. 왜냐하면 감히 후작부인을 유혹할 정도로 간이 부은 사내가 베네치아에선 없었기 때문에. 그리하여 후작 내외는 만날 가면무도회와 파티 등의 풍요와 경박함 속에서 사느라 자식들을 제대로, 19세기 초반 작품이니 그때 기준으로 ‘사랑의 매’를 전혀 쓰지 않고 그냥 방치 비슷하게 키우고 있었다. 이쯤 되면 독자는 이 책이 한 귀족 가정의 불행한 연대기가 될 것이라고 짐작을 할 수 있다. 불행한 복선은 행복한 전망보다 언제나 훨씬 더 눈에 띄는 것이라서.
 이렇게 잘 살고 있는 후작의 저택에 하루는 로레다니 후작의 절친한 친구인 부름스부르크 남작의 추천서를 가진 젊고 잘 생긴 독일인 아돌프 백작이 방문하여 장기간 투숙을 하기에 이른다. 그림이 그려지시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도? 아돌프 백작은 후작부인이 결혼할 때의 나이를 이미 지난 후작 영애 빅토리아와 백만 촉광이 넘는 눈빛을 교환하고 어느 달빛 교교한 날 밤 도금향 나무 아래 깊고 깊은 키스를 나눈 후 살그머니 빅토리아 양을 자빠뜨리면, 아, 너무 식상한 연애 이야기에 그칠 것이라서, 따님 빅토리아 대신 결혼 후 17년 동안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던 라우리나 부인과 죽기 살기의 욕정어린 연애를 벌이고 만다. 15세기 말이면 대강 연산군 재위 초기 정도. 당시 유럽에서도 귀족 집안에 아내가 바람이 나면 할 수 있는 일이 야반도주 말고는 별로 없었나보다. 아돌프와 아이들 엄마 라우리나 역시 야반도주를 해버리는데, 깨끗하게 도망가서 자기들끼리 지리산 옆에 터를 잡고 화전을 지어먹든지 어쨌든지 어쨌든 알아서 살면 이야기는 간단하지만, 겁도 없이 베네치아를 벗어나지 않고 거리를 배회하는 거였다. 길거리에서 우연하게 만난 로레다니 후작과 아돌프. 당시의 규범대로 이들은 곧바로 단도를 꺼내들고 결투를 벌였으나 일순간에 흥분해 정신이 몽롱한 후작이 냉정한 아돌프를 당해낼 수 없어 치명상을 입고 결국 죽어버린다. 아들 레오나르도는 엄마가 도망을 가버리자마자 집안 꼴 좋~다, 한 마디 하고 가출해버린 상태에 이제 빅토리아 홀로 남을 수밖에. 이 때가 기회다 싶은 엄마와 엄마의 정부가 빅토리아를 까다롭고 완고하기 짝이 없는 늙은 친척에게 맡겨버리고 다시 둘 만의 유토피아를 찾아 떠나버리는데, 여기까지가 소설 <조플로야>의 시작부분.
 나도 여기까지 읽으면서 왜 제목을 ‘조플로야’라고 했을까를 많이 궁금해 했다. 사건이 벌어지는 곳이 베네치아. 그럼 무대는 아니고, 사람 이름? 이탈리아에서 ‘조플로야’라면 여자가 주인공으로 나올 거 같은데 왜 이리 등장이 늦지? 걱정하지 마시라. 드디어 작품의 절반, 200쪽이 넘어가면 빅토리아가 꾸는 꿈 또는 환상 속에서 무어인 노예 또는 하인 조플로야가 등장한다. 무어의 귀족출신이긴 하나 15세기 말에 있었던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노예의 신분으로 떨어져 엔리케 씨의 하인으로 들어와 있던 것. 엔리케는 빅토리아가 우여곡절을 겪고 결혼에까지 이르게 된 베렌차 씨의 동생. 아이가 아버지를 빼닮았을 때 흔히들 “씨도둑은 못 한다.”라고 말한다. 그럼 엄마를 빼닮았을 때는 뭐라 그러나? “알 도둑은 못 한다.”라고? 그건 아닌 거 같은데. 하여간 빅토리아가 완전히 엄마를 빼닮았다. 새색시 빅토리아가 그만 시동생 엔리케한테 홀딱 반해버려 전전긍긍하다가, 심지어 열일곱 살이나 더 먹은 늙은 남편 베렌차가 무슨 사고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삼신산 신령님께 기도라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딱 이 즈음해서 빅토리아의 꿈 또는 환상 속에 흰 터번을 둘러쓴 존귀한 몸가짐을 가진 거구의 흑인 사나이 조플로야가 등장해, 빅토리아가 원하는 것을 거의 다 들어주기 시작한다. 어디서 읽어본 내용 같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메피스토펠레. 조플로야가 바로 19세기 초반에 다시 등장한 메피스토펠레, 바로 그다. 그 족속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원하는 바를 다 들어주면서 결코 그 행위를 통해 만족이나 행복을 얻을 수 없는 것.
 처음부터 끝까지 피비린내가 폴폴 나지만 다른 책들보다 역겹게 읽히지 않는 건, 19세기 초반의 고딕소설답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한 이십 년쯤 더 흘러 19세기 프랑스 소설가들이, 예컨대 알렉상드르 뒤마 선생이 <조플로야>를 한 다섯 권 정도의 분량으로 쓴다면 정말 재미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19세기 초 영국에선 왜 이리 음산한 이야기를 많이 만들었을까? 안개 많이 끼는 날씨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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