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멤논의 딸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우종길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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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 전에 읽은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와 시리즈를 이루는 작품으로, <아가멤논의 딸>의 여주인공 수잔나가 <누가 후계자를....>에서 후계자의 딸이다. 아가멤논의 딸은 순서대로 이피게네이아, 엘렉트라, 크리스토테미스, 유일한 아들은 오레스테스. 아가멤논은 그리스 신화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막장 족보를 가지고 있는 집안의 장자다. 그나마 제 명을 다 해 온전하게 죽는 이가 아가멤논의 동생이자 아내 헬레네 때문에 트로이 전쟁을 발발시킨 메넬라오스 딱 하나. 여기서 카다레가 말하는 ‘아가멤논의 딸’은 트로이 전쟁을 앞에 두고 폭풍우가 그치지 않아 트로이에서 온 예언자 칼카스의 조언에 따라 전쟁을 앞에 두고 희생당해 죽음을 맞은 큰딸 이피게네이아를 말한다. 아가멤논은 그리스 군의 최고 대장인 건 맞지만, 다 아시다시피 출발하기 전부터, 참전 중에도 사사건건 아킬레우스와 잦은 시비를 벌이는 등 절대 권력을 누리던 ‘제왕적’ 대장은 아니었다. 그래도 하여간 총사령관인 건 맞다. 근데 앞 장면부터 ‘나’의 원룸, 소파 위 반라의 모습으로 앉아 등장하는 수잔나는 알바니아 최고 권력자 후계자의 딸. 아직 지도자가 멀쩡히 살아 있는 상태에서 후계자란 건 항상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자리라는 뜻. 그런 작자의 딸이 혼전에 방송국에 종사하는 평민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마땅하지 않아 거의 타의에 의하여 이별을 해야 하는데, 이걸 자유주의 사상이 은연중에 배어있는 ‘나’가 보기엔 이피게네이아가 했던 희생쯤으로 보인다.
 당연히 이런 생각이 확장되어, 아가멤논이 왜 어여쁜 자기 큰 딸을 무참하게 살해했을까. 더 나아가, 스탈린 동지는 전쟁 중에 포로가 된 아들 야코프를 포로교환을 통해 귀환시키지 않고 적지에서 불귀의 객이 되게 만들었을까, 하는 것으로 폭을 넓혀가기 시작한다. 카다레의 생각은 트로이로 항해해야 하는 바다엔 견디지 못할 정도의 폭풍우는 아예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각 도시국가에서 온 작은 왕들 사이에 알력과 전쟁터로 가기 싫어하는 성향과, 두려움과 수컷들이 모이면 당연히 제일 먼저 발생하는 서열다툼이 폭풍보다 더 커져 있었을 것이라 가정한다. 그래 아가멤논은 이들의 다툼과 무질서를 정돈하고자 자기 딸을 무참하게 찔러 죽임으로 해서 자신의 피 묻은 도끼를 높이 들어 앞으로 있을 숱한 전사자들에게 인내하라고 강요했다는 주장이다. 스탈린 역시 전쟁 중에 장남이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고압 전기 철조망을 향해 다가가 자살하게 함으로써(감전사 후 독일병사의 총에 두개골을 맞음) 온 소비에트 영토와 부속국가의 모든 인민에게 자유로이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게 되는 건 아닌가.
 알바니아는 심지어 중국보다 더 교조적인 공산주의 국가였다고 한다. 그래 소련보다 중국과 더 긴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심지어 바르샤바조약기구에서도 소련의 정책에 반대해 탈퇴를 감행했던 나라. 그러다가 덩샤오핑이 흑묘백묘 운운하며 문호를 개방하자 중국하고도 관계를 뚝 끊고 알바니아 식 주체사상의 기치를 높이 들어 “우리는 풀을 먹을지언정 마르크스-레닌주의 원칙은 결단코 포기하지 않는다.”라거나 “설사 알바니아가 지구 표면에서 지워져야 한다고 하더라도, 지도자 동지의 사상이 알바니아의 미래를 확신하는 한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외치던 지상천국의 나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이 무척 익숙한 나라였다. 이젠 이런 알바니아도 개방을 해 온갖 나라에서 자본을 유치하고 관광객들을 받아들이고 그랬지만 1990년대 초까지도 쉼 없이 숙청과 처형과 사열/행진과 표어와 현수막이 나부끼던 공포의 경찰국가였단다.
 여기서 더 나가지 말고, 하나만 보태고 독후감을 끝내자.
 제목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와 작중 이피게네이아의 모델 수잔나가 어떻게 오버랩 되는지 잘 모르겠다. 차라리 아가멤논-스탈린, 이피게네이아-스탈린의 아들 야코프가 훨씬 어울리는 조합 아닌가? 하여간 책의 결론은 당시 알바니아를 근본부터 혁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이 최초로 세상에 나오는 여성의 성기부터 혁명해야 한단다. 직접 읽어보시면 여성비하의 발언이 전혀 아니라,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란 걸 강조하기 위해 쓴 말임을 알 수 있다.

 후계자 시리즈는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한 권으로 충분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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