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와스 씨를 위한 집 1 대산세계문학총서 127
V. S. 나이폴 지음, 손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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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겔 스트리트>와 <도착의 수수께끼>에 이어 세 번째 읽은 나이폴. <미겔 스트리트>는, 아니, 먼저 나이폴의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하자. 영국의 흑인노예 해방으로 인해 사탕수수 재배 인력을 위해 급하게 수입된 인도인 이민 3세로 영국령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태어나 식민 모국이었던 영국의 장학금을 받으며 영국에서 유학해 영국인으로 살고 있으나, 여섯 살부터 청소년기까지를 보낸 트리니다드 토바고, 그중에서도 수도 포트오브스페인을 사실상 고향으로 인식하는 인도 브라만 핏줄의 소설가. 대충 그림이 그려지실 것이다. 자신의 가난하고 지긋지긋했던 소년시절을 밝은 필체의 연작소설로 그린 것이 <미겔 스트리트>. 나중에 나이 먹어 이제 영국에 안착하여 스톤헨지 부근에 자그마한 돌집을 짓고 방랑하는 인도인이 드디어 한 곳에 정착하기 전까지 있었던 몇 번의 도착arrival이 의미하는 바를 쓴 <도착의 수수께끼>는 자신의 기억을 큰 줄기로 하되, 당연히 작가 스스로가 선별하고 자의적으로 왜곡시킨 경험을 서술했다고 할 수 있고, 이번에 읽은 <비스와스 씨를 위한 집>은 얼핏, 작가 나이폴의 아버지 시퍼사드 나이폴의 생애를 ‘집’을 얻기 위한 투쟁의 측면에서 관찰한 작품이라 주장할 수 있음직하다. 물론 내가 나이폴에 대해 잘 알아서 이렇게 얘기 하는 건 아니다. 책 뒤편 해설에 나이폴의 아버지 시퍼사트 나이폴 씨가 브라만 계급출신이고, 부유한 처가에 더부살이를 했으며, 이 책의 주인공 비스와스 씨와 비슷하게 처가와 애증의 관계에 있었다고 하니, 하는 말이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아직 트리니다드와 토바고가 각각의 식민지로 떨어져 있을 당시, 트리니다드의 한 농촌 도시에서, 힌두교 미신에 의하면 불길하기 짝이 없는 자정, 밤 열두 시에, 머리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두 발부터 세상 구경을 하면서, 손가락을 여섯 개 달고 한 아이가 태어나니 이이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모헌 비스와스 씨다. 더 이상 불길할 수 없는 별자리를 타고 난 모헌을 내려다보며 일종의 주술사는 지금 태어난 이 집안의 셋째 아이가 어미 아비를 잡아먹을 팔자라고 단정을 해버리면서, 특별하게 물, 마시는 물이나, 물 비슷한 우유, 술 등을 일컫는 것이 아니고, 흐르는 물 가까이엔 절대로 못 가게 해야 한다고 아이의 부모 가슴에 힘차게 못질을 한다. 이런 예언은 아빠보다는 엄마 빕티의 가슴에 팍 새겨졌다. 그러나 불길한 예언은 언제나 들어맞는다는 소설작법 제2장 1절의 진리에 의거하여, 마치 탯줄이 저절로 떨어지듯 여섯 번째 손가락이 어느 날 신체에서 똑 떨어지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인생에서 딱 한 번 물에 빠졌을 뿐인데, 수영과 잠수를 동네에서 가장 잘하는 아빠가 모헌을 구하려 몇 번 잠수를 감행했다가 기어이 용왕님을 알현하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세상에서 자식 교육에 전력을 기울이는 인종 가운데 유대인과 한국인은 널리 알려져 있고, 인도인의 상류계급들도 그러한가 보다. 모헌의 엄마는 이제 가족/친척 가운데 가장 계급이 낮은 과부로 떨어졌음에도 어린 비스와스에게 일정한 수준의 교육을 받게 하는데 성공한다. 그래 부실한 체력으로 육체노동과 완력의 사용에 체질적 약점을 갖고 태어난 비스와스 씨가 처가에서 온갖 굴욕, 온갖 잡일을 하다가 비록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버젓하게 신문사 기자에 이어 국가공무원이 될 수 있었으니, 교육의 힘이 대단하기는 대단하다.
 이 책을 읽어보면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비스와스 씨의 굴곡진 인생을 희극적 묘사로 일관하고 있지만, 사실 각 장면이 진짜 지긋지긋한 가난과 눈치와 처가식구들에 의한 멸시와 비난을 견뎌야 하는 와중의 모습을 이렇게 희화화해놓은 것이다. 이런 면에서 서술방식은 <미겔 스트리트>와 비슷하다 할 터인데, 자정에 거꾸로 태어난 육손이 비스와스 씨는 또한 사주에 해학과 신랄한 풍자의 팔자가 들어있는지라 대책도 없이 처가식구와 처가의 권력에 반항하고, 비아냥거리고, 비웃다가, 심각한 수준까지 얻어터지기도 하고, 내쫓기기도 하고, 소작쟁의가 일어날 것이 뻔한 사탕수수 농장의 관리인으로 보내지기도 한다. 작가 나이폴은 자기 아버지의 현신이라고도 할 수 있을 비스와스 씨를 어찌 이렇게 묘사해놓았을까. 주둥이만 살아 나불대며 하는 일마다 전부 실패로 마감하며 인생을 다 바치는 인물. 그러면서도 단 하나, 그래도 자기 살아생전 집 하나는 남겨놓는, 집 하나만 달랑 남겨놓는 인물로. 그건 책을 읽어보시면 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비스와스 씨가 나하고 매우 비슷한 면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어떻게 하는 일마다 그리 꼬이는지. 그와 내가 제일 다른 건, 나는 열세 번의 이사 끝에 처음으로 내 집을 장만한 다음, 집과 여하튼 모든 부동산에 관한 전권을 아내에게 위임했다는 거. 살아보니 여자 말 들어서 나쁠 거 별로 없더라고.
 비스와스 씨는 딸, 딸, 아들, 딸을 둔다. 이 가운데 큰딸 사비는 장학금을 받고 영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갔다가 다시 귀국을 하고, 아들 아난드 역시 장학금을 받고 영국으로 유학을 가 그곳에서 정착하는 걸로 봐서, 독자는 중요한 출연진인 아난드가 작가 V.S.나이폴이고, 비스와스 씨가 그의 아버지 시퍼사드 나이폴 씨라고 오해할 권리가 있는데, 뭐 굳이 그렇게 오해할 필요 없이, 그냥 읽어도 재미있는 작품이다. 1, 2권 합해서 870쪽에 달해 분량이 좀 부담스럽지만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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