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아이들 1
에이브러햄 버기즈 지음, 윤정숙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작가 버기즈가 에티오피아에서 인도인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신 스스로는 에티오피아가 고향이라고 여기지만 현지인들은 외국인으로 대했던 부류. 인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라는 첸나이(과거 이름이 ‘마드라스’) 소재 마드라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미국 스탠퍼드 의과대학 종신교수로 있단다. 작가의 정체성을 아는 것이 작품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출판사의 책 소개 내용을 보면, “광활하고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자연과 피로 얼룩진 에티오피아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운명의 광기에 맞서는 한 가족의 대 서사시”라고 했다. 즉 책의 주된 내용은 에티오피아에 사는 한 인도인 가족의 서사이고, 아프리카의 자연과 에티오피아의 굴곡진 현대사는 그냥 배경으로 존재한다. 피로 얼룩진 에티오피아의 현대사와 맞서지 않는다. 인도계 미국인 작가답게 에디오피아에 사는 주인공의 가족을 포함한 외국인 중에서는 악역도 만들지 않았다. 주인공 메리언 스톤이 사는 곳은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언덕 위에 선교목적으로 세운 ‘미싱’이란 이름의 병원. 나중에 특별한 오해를 받아 메리언이 에티오피아를 탈출해야 했던 때를 제외하고 주인공의 가족들은 언제나 집권층의 아내, 누이의 출산을 돕거나 충수염을 수술해주는 덕에 안전한 생활을 보장받는다. 1권 초반에 예멘의 아덴으로 가는 배에서 거의 죽어가는 의사 토머스 스톤을 해먹에 누임으로 해서 폭풍우로 배가 아무리 출렁여도 수평을 유지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이 특별한 ‘미싱’ 병원의 구성원들이 험난한 격랑에 휩쓸린 에티오피아의 피에 젖은 현대사 안에서도 지오이드 선과 언제나 수평을 유지할 수 있는 해먹에 놓인 상태 정도로 이해했다. 일단 외국인이고,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그들의 생명과 건강을 보살펴야 하는 의사라는 직업이며, 에티오피아 안에서는 어떠한 정치적 이익도 추구하려 하지 않는 집단을, 아무리 철면피 흡혈 독재 정권이라 한들 괴롭힐 이유가 없지 않겠나. 그러니 분명히 하자. 이 책에선 정치적으로는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단정하지는 않겠지만, 책을 선택할 때 정치적 의미를 과대평가하는 일은 삼가는 것이 좋겠다.
 위에서 토머스 스톤이란 의사 이야기를 했다. 토머스로 말하자면 인도에 사는 영국인 가정의 외아들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외과의가 되어 다시 인도로 왔다가, 인도가 해방이 되는 바람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어 떠나야 했던 이. 거의 천재 수준의 외골수로 오직 일 하나에 자신의 존재가치가 있다고 단정하는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있다. 지구상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런 인간들 가운데 잘 풀린 몇 명의 지시를 받으며 밥을 벌어먹는다.) 일벌레 스타일로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미싱병원에서 일하기로 하고 떠나는 배 안에서 인도 출생으로 맨발의 카르멜회 출신 간호사 수녀 두 명과 동승하면서 사달이 벌어진다. 극심한 뱃멀미와 열병으로 황천길을 앞에 둔 처지에 떨어지는 것. 이때 간호사 메리 조지프 프레이저 수녀가 엉망이 된 토머스를 극진히 간병해 살려내면서 둘의 유대가 깊어진다. 그 후 토머스 스톤은 예정대로 미싱병원으로 출발했으나 메리 수녀에겐 아덴에서 큰 불행이 닥쳐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아프리카 대륙에 오직 한 명 있는 아는 얼굴을 찾아 아디스아바바의 미싱병원을 찾아오기에 이른다. 아, 너무 길게 쓰고 있다. 근데 책이 그렇다. 실패에서 실꾸리가 풀리듯 술술 풀려나오는 이야기가 얼마나 능청맞게 잘 들어맞는지 도무지 큰 줄거리를 뚝뚝 끊어 소개하기가 힘들 지경. 어쨌든 다리 사이에 몇 줄기 피를 흘리며 미싱병원의 원장 수녀 앞에 서게 된 메리 조지프 프레이저 수녀는 기꺼이 받아들여져 일벌레, 수술벌레, 신기의 손놀림을 가진 외과의 리처드 스톤 선생과 환상의 수술 커플을 이룬다. 메리 수녀가 아무리 하느님의 신부bride라지만 (서로 호의를 가지고 있는)남녀가 만날 끔찍한 수술이란 스트레스 속에서 붙어 있는데 교통사고가 나겠어, 안 나겠어. 덜컥 애가 들어선 메리 수녀. 그러나 그녀는 출산 바로 전날까지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다가 갑자기 지옥 같은 산통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애초에 자연분만이 불가능했던 이유는 일란성 쌍둥이가 서로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머리와 머리 사이에 마치 탯줄 같은 끈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기 때문. 불행은 언제나 한 가지 이유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서, 인도 출신의 유능한 산부인과 의사 헤마는 때마침 휴가를 얻어 인도를 방문하고 아직 채 돌아오지 않은 상태. 토머스는 자신의 개인사 때문에 가까운 사람의 수술에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증상으로 제왕절개를 도저히 할 수 없는데 이걸 어떻게 하나. 외과의 토머스는 배 속에 든 것이 쌍둥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해 산도에 머리가 걸린 태아를 분해해 몸 밖으로 빼냄으로 해서 산모를 살리기로 결정한다. 먼저 머리뼈를 부숴 두부를 떼어낸 다음 견갑골과 늑골, 그리고 폐와 심장, 간의 순서로. 그래 아이의 정수리를 째는 순간, 힌두의 여신처럼 등장한 산부인과 전문의 헤마. 헤마가 등장하자마자 원시적으로 생긴 태아 해체장비를 집어던져버리고 제왕절개 수술로 접어든다. 그래 아들 쌍둥이 시바와 메리언이 탄생할 수 있는 것. 아이들의 엄마 메리 수녀는 과도한 출혈과 쇼크로 세상을 저버렸지만 서로 연결된 몸으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는 부모에게 다소 과하게 총명한 지능을 물려받아 세상에서 첫 호흡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공포 때문에 제왕절개 수술을 하지 못해 숨을 거둔 사랑하는 메리를 눈앞에서 본 토머스는 자신이 얼마나 메리 수녀를 사랑했으며,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간 쌍둥이 아들들을 얼마나 미워하는지 즉시 깨닫고 그길로 대충 짐을 챙겨 아디스아바바를 떠나버린다. 산부인과전문의 헤마 선생은 자신이 아이들의 엄마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자연분만이었으면 형이 됐을 아이, 정수리에 길게 자상이 생긴 아이에게 힌두 최고의 신인 ‘시바’란 이름을 주고, 제왕절개 수술 덕분에 형이 된 아이에게 최고의 산부인과 의사였던 메리언이란 이름을 준다. 여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술꾼 내과 전문의 고시. 고시는 헤마와 같은 도시 출신이긴 하지만 헤마보다 좀 낮은 계급이라 그저 짝사랑만 하고 있는 상태. 토머스가 갑작스레 떠나고, 헤마는 아이 육아에 정신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외과수술을 집도하게 된 내과전문의 고시는 점점 능숙한 외과의로 변모해가며 드디어 헤마와의 결혼에 성공한다. 아울러 자연스럽게 두 아이의 아버지 역할을 하게 되고. 그래서 우연히 여자이름을 갖게 된 쌍둥이 남자 형제 시바와 메리언은 더없이 인간적이고 더할 나위 없이 현명한 부모에게 양육되는 것.
 이제 겨우 쌍둥이 형제의 탄생까지 이야기했다. 책은 이들 가운데 메리언 스톤이 50세가 넘을 때까지니까 말 그대로 초입만 간단하게 적어놓았다. 작가는 대단히 놀랄만한 입심으로 스토리를 밀고 나간다. 이런 책의 특징은 “재미있다”는 거. 본문만 850쪽에 달하는 장편소설인데 마음만 먹으면 이틀이면 다 읽는다. 대신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당신의 눈언저리는 피곤에 절어 푹 꺼져 있을 것이다. 그러니 만일 읽는다면 주말을 이용하는 편이 좋을 듯. 책을 덮을 때 다른 건 모르겠고,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고, 친한 동무가 있으면 읽어보라고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책은 빌려주거나 사보라고 권하는 게 아니다. 내 책을 줘버린 다음에 후회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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