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의 실종 을유세계문학전집 95
아시아 제바르 지음, 장진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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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올려주시어 내게 좋은 책을 선택할 기회를 주신 분들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다.

 


 알제리. 스포츠 좋아하는 사람들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만만하게 봤던 나라였지만 뚜껑을 따보니 쌕쌕이 엔진을 장착한 놀라운 속도를 이용해 우리나라를 2:4로 유린했던 기억이 앞설 것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당시에 우리나라가 알제리에게 1:4로 진다는데 만 원 걸었었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역시 뫼르소, 이 철딱서니 없는 젊은이가 엄마가 죽은 날 땡볕이 눈부시다는 이유로 멀쩡한 아랍 청년 하나를 권총으로 쏴 골로 보낸 걸 기억할 듯. 나? 나는 알렉시 제니가 쓴 <프랑스식 전쟁술>에서 나치에 의해 국토가 점령당했을 때는 프랑스 국민들이 그들의 장기인 복종과 순응으로 어려운 시기를 겨우겨우 넘기더니, 연합군에 의해 해방이 되고, 전쟁이 끝나고, 다시 군비를 확장해 막강한 군사력을 지니게 되자,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무자비하게 식민지 저항세력을 탄압했다는 지적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떠올랐다”고? 맞다. 작가 아시아 제바르가 알제리 출신 작가라는 출판사 책 광고를 읽자마자, 뫼르소도 아니고, 카뮈가 쓴 <최초의 탄생>도 아니었고, 월드컵에서의 2:4 패배도 아니었으니, 바로 <프랑스식 전쟁술>에서 제니가 보여준 무자비한 학살, 그 피해자로서의 모습이었다.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제3세계를 바라보면, 우리가 패전국의 식민지였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다. 주로 영국이나 프랑스 등 승전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들, 이왕 알제리가 무대니까 알제리를 예를 들면,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프랑스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1954년부터 무력 독립투쟁에 접어든다. 독립전쟁은 이후 8년간 지속되었는데,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프랑스에 어디 맞상대가 되기나 했을까. <프랑스식 전쟁술>을 인용할 것도 없이, 1960년대 초반에 수도 알제에서 있었던 독립운동에 식민모국인 프랑스는 실탄 사격과 무차별 체포와 고문, 감금 등을 저지른다. 1960년대 초반에 독립하고(실제로 나이지리아가 1960년, 알제리가 62년, 케냐가 63년 등), 신생독립국답게 한 5년 정권투쟁을 하다가 내전 3년 정도를 겪으면 이미 1960년대 후반. 극동 아시아의 신생독립국에선 벌써 포항제철이 거의 완공단계에 접어드는 등 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성공리에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을 때.
 거기다가 알제리가 더욱 암울한 것은, 무려 1820년대부터 프랑스의 식민지였다는 점. 너무 오래 굴종과 예속의 상태에 처해 있다 보니, 그나마 알제리 사람들은 회교적 윤리로 버티긴 했으나, 경제, 정치, 문화 등 거의 모든 것, 심지어 언어조차도 프랑스의 부속물처럼 되어버리고 말았을 터이다.
 이 책은 크게 두 시기를 선택해 시대를 왔다 갔다 하는 방식으로 전개를 한다. 처음엔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초반까지. 주인공 베르칸이 청소년 시기를 보내는 시점이 알제리에서 민족해방전선이 해방투쟁을 본격화하던 시기와 딱 겹친다. 머리통에 쇠똥도 벗겨지지 않은 베르칸은 당시 초록, 빨강, 흰색으로 된 알제리 삼색기를 작대기에 매달고, 알제리를 알제리 사람에게! 구호를 외치다가, 다행히 총을 맞지는 않는데, 붙잡혀 돼지우리 같은 감방에서 몇 달을 보내며 정기적인 고문을 받기에 이른다. 당시 베르칸은 사실 별것도 모르면서, 어찌 보면 군중심리에 휩쓸렸다고도 할 수 있는 지경에서 붙들려 경을 쳤으나, 막냇동생이 보기엔 자기 둘째 형이야말로 대단한 독립 영웅으로 비칠 수밖에. 이 때의 장면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등장한다.
 이후 베르칸은 파리로 건너가 출판사에서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글을 쓰면서 차분히 직장생활을 하게 된다. 마리즈라는 프랑스 여성과 동거도 하면서. 이렇게 근 20년을 살다가 1991년 가을에 여전히 마리즈와의 사랑을 간직한 채이지만, 조만간 분명히 서로 다른 애인을 찾게 될 것임을 알면서 귀국길에 오른다. 못다 한 소명, 글을 쓰기 위해. 이때부터 2년 동안이 두 번째 시점. 베르칸은 참으로 험난한 시절을 택해 귀국한 꼴. 1991년 12월에 투표가 있었고, 투표에 불만을 갖고 있던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알제리 독립의 영웅 부디에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나 곧바로 내전에 돌입해 부디에프마저 암살을 당하고 만다. 이제 알제리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이지만 내전과 이슬람 원리주의에 의해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마치 문화혁명 당시의 중국을 보는 듯이 프랑스 말을 쓰는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한다. 베르칸은 비록 출판이 된 적은 없지만 파리에서 프랑스 문자로 글을 써왔고, 고국 알제리로 건너와서도 못다 한 집필의 꿈을 이루기 위해 프랑스 문자로 글을 쓰는 작가. 필연적으로 그에겐 고난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것이 무엇인지는 안 가르쳐드린다.
 여기까지 써놓고 처음부터 읽어보았다. 이런 건조한 감상문이라니. 내가 읽어도 한심하다. 이 책은 이렇게 스토리의 나열만 가지고 설명을 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1인칭과 3인칭 시점을 넘나들며 자유스럽게 과거와 현재, 비극의 역사와 에로티시즘의 경계에서, 비극으로 치닫는 현실 위에 처진 딱 한 줄 위에서, 안전그물도 쳐놓지 않은 채 이렇게 멋진 줄타기를 할 수 있는 작가가 과연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책 뒤에 역자가 작품을 해설해 놓은 글 속에 다양한 방법으로 <프랑스어의 실종>을 해체해 설명을 해놓고 있으나, 그런 건 모르겠고, 참 재미있으면서도 심각하게 읽을 수 있는 수작을 오랜만에 한 편 만났으니,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을까, 책을 덮자마자 곧바로 이이가 쓴 다른 작품을 책방 보관함에 집어넣었다. 여기까지 짧지 않은 감상문을 읽어주신 분들이여, 불민한 나를 믿고 이 책을 선택하시라. 물론 직접 읽고 난 다음의 소감에 관해서는 책임지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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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ftclub 2019-06-01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케이, 콜

Falstaff 2019-06-01 16:04   좋아요 0 | URL
후회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