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밤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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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바진이 중국 현대문학사에서 루쉰, 라오서와 함께 3대 문호로 꼽힌다는 책 소개를 보지 않고, 그냥 붉고, 희고, 분홍색의 장미가 빼곡한 치파오를 입은 여성의 하반신 그림을 사용한 책의 표지와 시공사 ‘세계문학의 숲’의 명성만 가지고 골라 일 년이 넘게 책가게 보관함에 넣어놓기만 했다가, 오래 묵혀두는 것이 미안해 이제 그만 읽어보자, 하는 심정에서 사 읽었다. 애초에 장미꽃이 만발한 (옆트임이 시각을 자극하는)치파오에 눈이 어두워진 나는 현대 중국문학에서 자주 읽을 수 있는 불륜과 집안 내 난교 같은 것도 등장할 것이란 엉뚱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 중국소설에서 그런 걸 어디 한두 번 보는가. 더구나 부잣집이나 대갓집의 경우엔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 젊은 계모와 나이 찬 아들 사이의 남녀상열지사가 거의 고정화되어 있지 않느냐는 말이지. 예를 대볼까? 차오위가 쓴 <뇌우>. 또? 관두자. 하여간 그런 건 헛공상이었다. 중국판 리얼리즘 문학이랄까. 굳이 경향을 따지면 그렇다는 말씀.
 무대는 중국의 충칭. 해방이 되기 전까지 5년이 넘게 우리나라 임시정부가 있었던 곳. 상하이에서 살다 중일전쟁이 벌어지자 충칭으로 피난 와서 살고 있는 왕씨 부부와, 어머니. 이 세 명이 세상 어디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갈등의 푸가를 연주한다. 소설은, 서른네 살 동갑내기 부부와 쉰세 살의 어머니가 초장부터 등장하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당시에 벌써 대학교육까지 받았다는 거. 비록 19세기 태생인 어머니는 전족을 했음에도 당시로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교육과정을 마쳤으니 대단한 집안의 따님이었을 것이다. 왕원쉬안과 청수성은 대학시절 열정적인 청년 지식인으로 만나, 결혼이란 제도를 부정한 채 이상적인 학교를 세우는 교육운동의 꿈에 젖었다가, 전쟁 때문에 빈손으로 충칭까지 흘러들어 가난하게 살고 있는 상태. 여기에 가사를 제외한 노동능력은 없다고 봐도 무방한 원쉬안의 어머니는 며느리 청수성이 은행에 다니며 벌어오는 돈으로 살림을 하고, 열세 살 먹은 아들 샤오쉬안도 학비가 비싼 사립 기숙학교에 보내면서도, 며느리가 정식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아들의 정부’로 여기며 중국 여자 입장에서는 견디기 힘든 고부간 갈등을 유발한다.
 고부간 갈등이 발생하면 제일 골치 아픈 건, 아들이자 남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왕원쉬안. 이이가 애초에 대가 좀 센 체질이면 중간에서 적절하게 처신하며 중재를 할 수 있었겠지만, 바진이 만든 우리의 주인공은 자기의견 같은 건 어머니 배속에서 아예 가지고 나오지 않았으며,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충돌한 두 여자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회담을 통해, 당신 말이 맞지만 그래도 좀 참아줘 옛날 양반 아닌가, 어머니 말씀이 백번 옳지만 지금 상황이 그러니까 이해를 좀 해주세요, 이런 식으로 껍데기만 살짝 덮어놓는 재주 말고는 없다. 껍질 한 꺼풀만 벗기면 다시 피가 흐를 상처는 치료는커녕 소독 한 번 해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이것만 가지고는 소설이 안 된다. 독자로 하여금 머릿속에서 뭔가 재미난 상상을 하게끔 만드는 장치가 적어도 하나는 필요하다. 그래서 설치한 트랩이, 아내 수성이 다니는 은행에 아내를 사랑하는 두 살 연하의 천주임이 등장한다. 그래 이 둘이 점심시간에 비싼 커피 집에서 남자는 블랙커피를, 여자는 우유를 탄 밀크커피를 마시고 있는 현장을 주인공 왕원쉬안이 발견하게끔 유도하는 것. 때는 1940년대 중반. 왕원쉬안 마음 같아서는 오늘 밤 당장 마누라 수성을 작신 두드려 패고 싶지만, 교정쇄 검토하는 일을 하며 박봉에 시달리는 자신보다 월등하게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는 (호적에 오르지 않은)아내에게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천주임인지 뭔지 하는 어린애 뒤를 따라가, 오히려 자기가 맞아 죽을 거 같아 감히 결투는 신청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다못해 벽돌로 뒤통수라도 한 번 내려 칠 깡다구도 없다. 어때, 그림이 그려지시지? 그래도 언젠가는 중국 교육의 개혁을 위해 이상적인 학교를 짓고 운영해보고자 하는 웅대한 꿈을 꾸었던 몸. 이런 인물이 중일전쟁의 바람 속에서 주머니가 비게 되자마자 이렇게 누추한 모습으로 변모하게 된 것. 오호 애재라? 여기다가 왕 선생은 폐에 깊은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고 있기까지 한 상태. 당시 폐병이라 불리는 결핵에 걸렸다 하면 거의 죽을병이라 여기던 시절. 왕원쉬안도 예외는 아니라서 하루하루 기운이 빠지고, 기침을 하고, 객혈을 하고, 운신을 못하게 되는 것을, 왕원쉬안과 달리 아직 젊음을 유지하고 싶어 하고, 환자와 그의 어머니란 19세기 여인이 효과적으로 만들어놓은 음울한 집구석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심지어 사회적 성공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호적상 동거녀 청수성이 어떻게 견디겠는가.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청수성이 자신을 사랑하는 두 살 연하의 천주임을 따라 집을 나가 자기 인생에서 첫 번째 결혼식을 올리고 백년해로를 하느냐, 아니면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시어머니의 구박과 질시를 인내하면서 불쌍하기 그지없이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포복하고 있는 왕원쉬안의 곁을 지키느냐. 수성의 성격을 보면 앞의 것을 선택해야 하지만, 1940년대 중반이라면 뒤의 선택이 정당할 거 같고, 그렇지? 애매하시지?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풍에 휩쓸린 작은 개인들의 비극과 나약성. 과연 어떻게 될지는, 안 알려줌.
 만일 누가 나더러 이 책을 선택해서 읽을까, 말까를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읽어보라고 하고 나중에 귀싸대기를 한 대 맞을까, 읽지 말라고 해서 중국현대문학의 세 번째 ‘문호’가 쓴 마지막 장편소설을 읽는 기회를 막아버릴까. 거 고민된다. 그러니 내게 이런 거 묻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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