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팔이 소녀 말로센 시리즈 3
다니엘 페낙 지음, 이충민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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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 페낙. 분명히 이 사람이 쓴 다른 소설을 읽은 기억이 있다. 뭐였더라. <떠도는 그림자들>? 한 번 이 책이 떠오르자 완벽한 혼돈상태가 됐다. 프랑스 소설가 파스칼 키냐르와. 일단 키냐르를 생각하니 본문만 570쪽이 넘어가는 장편인데 암호해독에 특별한 능력이 없는 독자에겐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키냐르의 길고 긴 장편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하물며 200쪽이 겨우 넘는 <떠도는 그림자들>도 억지로 읽었음에야, 걱정을 하며 장바구니에 넣고 주문하기 버튼을 클릭했다. 이런 심정, 조금 과장하면, 다시 말해, 과장하면 그렇다는 건데, 주문하기 버튼을 클릭하는 비장한 마음이 목에 돌을 매달고 벼랑 위에 서서 깊은 바다를 바라보는 마음과 비슷할까. 하여간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심정으로 구입을 하고, 드디어 책장을 열었고, 한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아, 이 사람이 <떠도는 그림자들>을 쓴 파스칼 키냐르가 아니고, <몸의 일기>를 ‘다니엘 페나크’란 이름으로 번역 출간한 바로 그 사람이구나, 알아챘다. 완전 형광등. 하긴 나로 하여금 스스로 형광등을 자처하게 만들 만큼 파스칼 키냐르의 이름이 공포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니까. ‘다니엘 페나크’가 됐던 ‘다니엘 페낙’이 됐던, 이이라면 읽어내는데 별 문제 없지. 일단 안도.
 호, 놀랍게도 엽기성 연쇄살인과 코미디가 마구 섞여 있는 프랑스판 서부영화다. 소위 누아르로 분류할 수도 있겠지만, 진정한 누아르 장르로 만들기에는 작가의 직업이 너무 교양적이다. 학교 교사였을 걸? 그 나라에선 중등학교 교사가 소설도 많이 쓴다. 참 좋은 책 <프랑스 식 전쟁술>을 쓴 알렉시 제니도 학교(심지어 생물) 선생이었잖은가. 동화책도 많이 써서 동화작가로 분류하기도 하는 다니엘 페낙이 연쇄살인을 주제로 하는 작품을 썼다고 해서 잔혹 엽기로 일관하기는 쉽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모든 악인은 극히 일부의 선량한 희생자들을 길동무 삼아 저 세상으로 가고, 남은 착하거나 보통의 인간들은 다시 사회에 복귀해 지겨운 일상을 계속 이어가는 쪽으로 결말을 냈다. 물론 교직을 경험한 작가답게 교훈 한 가지는 주어야 직성이 풀렸겠지. 기어이 뱅자맹 말로센의 애인 쥘리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을 하고야 만다.


 “누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든 말리지 않을 거야. 히틀러가 미술 장학금을 받았다면 정치 같은 걸 했겠어?” (571쪽)


 초반에 이 책이 ‘말로센’이란 프랑스의 콩가루 집안에서 벌어지는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을 쓴, 소위 ‘말로센 가족 시리즈’라는 것을 알 게 된다. 그러니 만일 <산문팔이 소녀>를 포함해 이 시리즈에 관심이 있으시면 1편에 해당하는 <식인귀의 행복을 위하여>부터 찾아 읽으시면 좋을 듯하다. 1편은 내 단골집 알라딘에선 품절이고 나머지 이너넷 책방에선 팔고 있다. 나도 얼른 주문했다. 한 5월경에 읽을 듯. 모두 여섯 편이라는데 그걸 다 챙겨 읽은 정성까지는 없을 것 같다.
 화자이자 중요한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뱅자맹 말로센. 이이의 직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출판사에 근무하면서 자기가 쓴 원고를 보내기는 했지만 채택되지 못하고 연이어 퇴짜를 맞는 작가지망생들, 자신이 시대를 너무 앞서가는 운명을 타고나 현세에 고난을 받아야 하는 천재라고 착각하는 이들의 거친 항의를 감당하는 일. 프랑스에선 이런 지망생들이 출판사에 난입해 온갖 사무 기물을 때려 부수고, 담당자에게 폭행의 위협을 하고 뭐 그래도 그게 그냥 일상생활 정도로 여기는 바람직한 문화가 있었나보다. 하여간 남을 달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뱅자맹 말로센에게 사랑하는 여동생 클라라가 있다. 많고 많은 동생들 가운데 어느새 열아홉도 안 된 클라라를 제일 아끼는 건, 그 아이가 세상에 나올 때 자신이 직접 받았기 때문이다. 형제가 여덟인가, 아홉인가, 더 많던가? 하여간 무지하게 많은데 놀라운 건 아이들 전부 다 공통의 어머니를 갖고 있고, 개별적으로 다른 아버지를 갖고 있다는 점. 그러니 내가 저 위에서 프랑스판 콩가루 집안이라고 한 게 이해가 되시지? 이 가운데 클라라가 누구의 아버지의 동생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세르비아-크로아티아계인 스토질코비치 삼촌을 면회하러 가서 클라라가 한 남자와 돌이킬 수 없는 사랑에 빠졌으니 누군가 하면, 비스듬히 기우는 햇빛에 흰머리가 금빛으로 반짝이는 키 큰 왕자님, 하늘색 눈의 대천사, 쉰여덟의 대천사, 그리고 교도소장.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동생보다 세 배나 나이를 더 먹은 늙은이에게 엄마 배 속에서 나온 그대로의 상태로 있(다고 믿)는 동생 클라라를 어떻게 기쁜 마음으로 시집보내겠느냐고. 말 그대로 열불이 난다. 그러나 어이할꼬. 클라라는 키 큰 대천사와의 혼인을 반대하면 퐁네프다리 위로 올라가 센이라고 부르는 파리의 개천에 빠져 죽겠다고 협박을 하는 걸. 그래 어쩔 수 없이 승낙한 상태. 날짜는 어김없이 흐르고 어느덧 결혼식 날이 되어 교도소 성당에서의 혼인을 위해 차 몇 대를 대절해 가고 있는 중에, 저 멀리 성곽 위로 곧게 솟는 하얀 연기. 하필이면 그날 새벽, (여태까지는 차라리 천국에 더 가깝도록 평화로웠던, 그래 일부 수형자들은 형기 연장을 호소할 정도였던)교도소에서 폭동이 일어나 창백하고 키 큰 대천사가 처참한 모습으로 죽임을 당한 다음이다. 이게 사건의 시작이다. 첫 번째 죽음. 이리하여 결혼식장은 순식간에 장례식장으로 변해버린다. 뭐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이나 의미로 따지면 거기가 거기긴 하지만.
 스토리는 여기까지만. 앞에서 여러 번 이야기 했다시피 엽기 연쇄살인보다 더 재미있는 건, 작가의 입담이다. 미칠 지경으로 재미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웃음이 터진다. 물론 나중에 화해는 한다. 그런데 어째 '가톨릭의 맏딸'이라고 불리던 나라 프랑스에서 이리도 가혹하게 기독교와 기독교의 신을 희화화하는지 놀랍기도 하다.
 나는 이 책이 쇼킹이었다. 제목 <산문팔이 소녀>. 애초부터 작가를 ‘파스칼 키냐르’로 오해했으며, 제목이 이런 식으로 붙었으니 분명히 소설, 즉 산문을 쓰는 여러 가지 허풍, 엄살, 과장, 잘난 척, 형이상학, 미학, 두통거리들이 만발할 것으로 생각했다가 유쾌한 연쇄살인이라니. 고생할 걸 각오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웃으면서 책을 덮었다. 이것만 가지고도 웃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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