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술애호가의 방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호영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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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읽은 <인생 사용법> 한 권으로 난 뻑 갔다. 이거 뭐야. 누구야? 그림을 찾아보니 거 참 불량하게도 생겼네. 완전히 동네 양아치 형 같다. 근데 거 참, 어떻게 <인생 사용법> 같은 책을 쓰려 마음을 먹게 됐는지, 아예 불가사의 자체였다. 뭐라 할까? 레고? 한 아파트에 사는 인간들의 모습을 레고 조립하는 것처럼, 또는 해체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뜯어보고, 고쳐보고, 돋보기를 들이내보다가 난데없이 팽개치기도 하는 모습이, 보통의 소설가라면 이 책 한 권의 에피소드 가지고 적어도 열권이 넘는 장편 소설을 쓰겠는데, 하는 심정. 아,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했다. 하여간 <인생 사용법>을 읽은 다음에(근데 그 책이 조금 비싸긴 하다.) 페렉에 꽂혀서 <사물들>, <W 또는 유년의 기억>, <잠자는 남자>를 읽었고, 지금 막 다섯 번째 페렉,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 읽기를 마쳤다. 이 책을 읽고 난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생긴 거하고 똑같이 정말 동네 양아치다.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을 읽으면 독일 출신 미국 이민자이자 전직 웨이터의 거부, 70명의 백만장자보다 더 많은 재산을 보유한 양조장 사장 헤르만 라프케. 이 거대 부호이자 미술애호가, 1913년 빌헬름 2세 황제 통치 25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서 독일인회 주최로 대규모 행사를 벌이는데 행사의 일환으로 그의 회화 컬렉션을 전시하게 된다. 많은 그림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은 작품은 하인리히 퀴르츠가 양조장 사장을 그린 초상화였다. 그게 왜? 거울 속의 거울. 양조장 사장 라프케의 초상을 그린 그림. 인물의 배경이 되는 벽면에 그가 거금을 들여 모은 수집품들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고, 화가 퀴르츠의 그림 속에도 과거의 명작들이 다들 제각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뿐더러(마네가 그린 졸라의 초상 속에 벽에 걸린 자기 그림의 모사화가 걸린 것처럼), 그림 속에 또 미술애호가 라프케 사장을 그리고 있는 화폭이 있었다. 그래 그림 속의 그림에 다시 벽면에 가득한 명작들이 들어 있고, 그림 속의 그림 속의 그림에도 또 그렇다. 그리하여 이론상으로는 무한대 계속되는 거울 속의 거울 현상. 세 번째 그림 속의 화면은 가로 11cm, 높이 8cm. 첫 번째 화면에서 벽에 걸려 있던 그림이 두 번째 화면에선 조금 변형되고, 세 번째에서도 다시 변형시킨 특색 때문에 이 그림이 장안의 화제가 된다. 이쯤에서 미술평론도 했던 페렉이 지금 쓰고 있는 것이 ‘소설’ 즉 ‘구라’라는 걸 이해하게 됐다. 가로 11cm, 세로 8cm 안에 초상을 비롯한 모든 세부사랑은 그려 넣는 일이 그리 만만하지 않을 텐데, 독자가 갖는 권리, 의심이 들기 시작한 거다.
 이쯤에서 머리에 떠오른 또 한 명의 구라꾼, 로베르토 볼라뇨. 그가 쓴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볼라뇨가 그의 책에서 숱한 나치 동조 문인들의 이름을 만들어서 마치 정말로 나치에 협력해 돈을 보내주는 등, 아메리카에서 파시즘을 전개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어찌나 거짓말을 잘 하는지 처음엔 단박에 넘어갔다가, 어째 아직 살아 있는 인간들도 많다, 싶어 정신차려보니 여태까지 다 구라였던 기억.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에서도 양조장 사장 헤르만 라프케가 이제 나이 들어 죽자, 그의 소원대로 최고의 박제사에게 자신의 몸을 박제로 떠서 화가 퀴르츠가 그린 그림과 거의 비슷하게 만든 지하의 방에서, 초상을 그리던 의자에 앉아, 초상화와 함께 묻힌다는 내용까지 읽고, 하, 이것도 구라구나. 확신을 하게 됐다. 그래도 얼마나 능글맞게 거짓말을 잘 하는지 화가 이름 '하인리히 퀴르츠‘를 구글 검색까지 해봤다는 거 아닌가. 근데 등장하는 옛 화가들의 명단에 솔찮게 진짜 화가의 이름도 등장하니 검색해보기 전까진 정말 긴가민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드가가 그린 <무용수들>은 1896년 1월에 화가에게 직접 6만 프랑을 주고 구입하고, 메종도레 식당에서 드가와 함께 콜체스터 특산 굴을 먹었다는데, 이땐 이미 빌어먹을 페렉이 지금 구라 중임을 알고서도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이런. 드가가 그린 <무용수들>이 한 두 작품이냐 이거지.

 

참 매력적인 작품 <La Classe de Danse> 왼쪽 아가씨가 등이 가려운데 안타깝게도 손이 닿지 않는 거 같아!


 그런데, 15쪽에 시작해 100쪽에서 끝나는 단편 소설에 관해서는 여기까지만 이야기 해야겠다. 아직 덜 얘기한 나머지 하나, 가장 중요한 하나는, 마지막 두 페이지에 나오는 바, 그것까지 밝히면 이 독후감을 읽는 페렉 애호가 또는 애호가 준비생들에게 귀싸대기 몇 방 얻어 터져도 할 말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거, 정말 인간으로 하여금 할 말 없게 만든다. 그런 게 하나 마지막에 잔뜩 힘을 주어 도사리고 있다는 거 정도는 미리 알아도 뭐 크게 관계가 있을까.
 근데. 그게 뭐냐고?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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