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카렐 차페크 지음, 김희숙 옮김 / 모비딕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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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차페크의 <로봇>을 읽었다. 1921년 프라하에서 초연한 연극 <로봇>의 대본, 즉 희곡을 (1920년에)발표함으로서 세계 최초로 “로봇”이란 말이 등장하게 된다. 난 이 희곡을 읽기 바로 전까지도 로봇은 기계인간인줄 알았다. 우주소년 아톰이나 태권 V 같은. 근데 아니다. 굳이 비교를 한다면, 요즘 젊은이들은 모르겠지만 황금박쥐 비슷하다. 나이 든 세대는 기억할 거다. 우렁찬 주제곡을. “빛나는 해~골에 빤쓰 하나 걸치고 무엇이 잘났다고 웃어대느냐!”
 로봇은 유기화학이 발전한 결과물이다. 차페크 본인의 <로봇>에 대한 기고문에서 짧게 언급했듯이 중세의 화학생물학자가 꾼 꿈이 호문쿨루스homunculus를 만들어내는 것이었고, 그것이 현대에 이르러, 한 천재적인 화학생물학자 로숨Rossum씨(Mr. Intellect 또는 Mr. Brain이란 뜻)가 나타나 “생명”은 있으나 영혼이 없는 일하는 생명체를 발명했으니 그게 바로 로봇이다. 로봇은 심장이 있어 피도 흐르고, 허파로 숨도 쉰다. 수명은 20년 가까이 되며,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명령대로 일만 한다. 인간의 유토피아를 위해 만들어진 로봇. 인간은 그리하여 모든 노동에서 벗어나 태초의 에덴과 비슷한 별유천지비인간의 지경에 이르는 것이 목적이다. 이 로봇을 만드는 회사가 R.U.R(Rossum's Universal Robots). 회사가 독점적으로 로봇을 생산하면서 주가는 당연히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예금을 별도로 하고 회사의 금고 속에 현금만으로 무려 (1920년 화폐가치로) 5억2천만 달러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이 놀라운 제작품을 만드는 광경을 구경하기 위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세계적 유명인사들이 공장이 있는 섬에 방문을 하는데, 하루는 유명회사 글로리 사장의 딸 헬레나 글로리오바가 R.U.R의 대표이사 도민 씨를 방문하면서 극이 시작된다.
 아쉽게도 책을 읽어가면서 점점 재미의 효용이 떨어졌다. 차페크가 1936년에 발표한 소설 <도롱뇽과의 전쟁>을 읽어봤기 때문이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 살며, 섬 주위를 배회하는 천적 상어 때문에 일정한 개체수를 유지하던 사람 2/3 크기의 대형 도롱뇽 무리에게, 천연진주 채집을 위해 철제 칼을 줘 진주를 무한정 얻다가, 나중에 정신차려보니 도롱뇽들이 강철로 만든 칼을 사용해 섬 주변의 상어들을 싸그리 몰살시키고, 점점 개체수도 불리고, 현대식 무기도 구입해, 도롱뇽이 살 수 있는 건 습지뿐이라서 인간에게 구입한 무리로 인간과 전쟁을 벌이고, 동시에 거대 폭탄을 사용해 대륙을 이리저리 관통하는 운하를 만드는 이야기. 여기서 중요한 모멘트는 사람이 도롱뇽에게 무기를 공급해 자기들 대신 전쟁에 투입함으로서 (동물적인 감각을 가진!) 용맹한 군대를 만들었다는 것. 즉, 인간의 부를 위한 노동에서 전투요원으로 탈바꿈. 개체수의 증가와 서식지 확보를 위한 대륙 횡단 운하 건설, 인간의 피폐화, 라는 구도가 <로봇>에서도 비슷하게 전개된다.
 사람 대신 노동만을 위해 개발한 로봇. 트로이를 작살낸 전환점을 마련한 헬레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여자 헬레나 글로리오바가 과학자 한 명을 꼬드겨 생각할 수 있는 로봇을 몇 개체 만들었다. 이미 로봇이 인간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는 노동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인간은 비교할 수도 없이 용감한 병기로도 사용하고 있던 터. 세상의 모든 로봇은 영혼을 가진 몇 개체를 중심으로 굳게 뭉쳐 인간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로봇이 인간이 되려면? 책에 나와 있다.
 “너희가 사람처럼 되고 싶다면, 너희는 죽이고 정복해야만 한다. 역사를 읽어보라! 인간들의 책을 읽어보라! 너희가 사람이 되고 싶다면 너희는 정복하고 살육해야만 한다.”
 대장 로봇의 지시로 애초부터 진짜 사람보다 더 강하고, 영리하며, 인간보다 더 잔인하게 인간을 죽일 수 있는 로봇들은 인간 말살 작업을 시작한다. 총으로 쏘고, 칼로 찌르고, 베고, 절단한다.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어린이도, 아기들도, 태아도.
 그러나 수명이 20년에 불과한 로봇. 로봇 공장에 무리지어 쳐들어가 살아 있는 인간을 몽땅 죽였을 즈음해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들이 다른 로봇을 만들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는 거다. 레시피가 적혀있는 낡은 리포트는 이미 불탄 재로 사라졌고. 딱 한 명의 인간을 살려주었는데 로봇들은 이 늙은 건축가에게 로봇을 만드는 유기체 제조 레시피를 요구하고 심지어 살아 있는 로봇을 생체실험에 쓰라고 강요까지 하면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나는 언제나처럼,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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