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아이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2
외된 폰 호르바트 지음, 조경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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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작가 호르바트한테 가장 부러운 거. 젊어서 우화적 죽음을 맞았다는 것. 독일에서 퇴폐문학으로 낙인이 찍혀 이이의 작품은 전부 공연 불가, 출판 불가 판정을 받아 오스트리아로 갔지만, 사실 독일의 속국이었던 당시 오스트리아에서도 이하동문이라 그때부터 유럽 경향 각지로 방랑생활을 했고, 이 책을 비롯해 자신의 후기(그래봤자 30대) 작품을 안타깝게 네덜란드에서 출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한 시절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걷다가 때마침 뇌성벽력이 치고, 벼락을 맞은 나무가 부러지면서 외된 폰 호르바트를 덮쳤는데, 이때 큰 가지에 머리를 맞아 뇌진탕으로 서른일곱의 아까운 나이에 그만 숟가락 놨다.
 흠. 갑자기 생각나는 독일 소설가 한 명. 토마스 브루시히. 이이의 책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에서 남태평양의 휴양지 야자나무 아래에서 낮잠을 자다 때마침 떨어진 코코넛열매에 맞아 뇌출혈로 죽고 싶다는 말이 나오는데 (얼마나 감개무량한 죽음이든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혹시 브루시히가 이 호르바트의 죽음에 힌트를 받아 그렇게 썼던 거 아냐?
 로자 룩셈부르크가 죽고 사흘 만에 독일에선 총선거가 치러진다. 이때 거대정당이었던 사회민주당과 지잡당인 민주당과 중앙당이 뭉쳐 연립내각을 형성하고 소위 바이마르 헌법을 제창하면서 성립한 바이마르 공화국. 그러나 이 민주공화국은, ① 1차 세계대전 패전의 치욕을 힘겹게 견디며 ② 아직도 아리안족의 우수성에 대한 믿음이 넘치지만, ③ 여전히 열등한 민족들인 승전국의 과다한 핍박에 지친, 자국민들을 효과적으로 다독이지 못해, 1933년 히틀러가 이끄는 국가사회주의란 파시즘, 즉 나치에 의하여 괴멸된다. 1917년에 태어나 나치 치하에서 청년기를 맞은 주인공 ‘나’는 학교 졸업 후 근 5년을 실업자, 양아치, 노숙인, 좀도둑으로 살며 하마터면 경찰에 잡혀 호적에 붉은 줄 갈 뻔하기도 몇 번이었다. 아버지는 원래 잘 나가는 호텔의 웨이터로 괜찮게 살았지만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한 쪽 다리를 절게 되면서 이젠 변두리 선술집의 웨이터를 하며 손님들이 던져주는 팁으로만 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로 떨어져 입만 뗐다 하면 정부와 국가에 대해 불만만 잔뜩 털어놓는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그때가 좋은 시절이었지!”
 딱 이 시점에 나는 군에 입대하기로 결정한다. 앞으로 있을 전쟁은 지난날의 세계대전과는 전혀 딴판일 것인데, 훨씬 규모가 크고, 거대하고, 가혹할 것이며, 여하간에 섬멸전이 되리라는 기대를 안고. 게르만 민족으로서 주변 잡다하고 열등하고 야만적인 언어를 쓰는 국가를 통합해 게르만의 영토를 확장하고, 세계의 평화와 질서를 위해 게르만 민족을 우두머리로 하는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 일. 그걸 독일의 군대가 수행한다는 믿음으로. 국가가 지향하는 원대한 목표를 위하여 국민 개인의 희생은 반드시 필요로 하며, 희생된 개인의 영광은 천세를 넘어 영웅적 행위를 기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피 끓는 청춘이기도 한 화자. 놀이동산에 놀러갔다가 마법의 성이란 구조물에서 표를 파는 아가씨한테 넋이 나가기도 하고, 그녀를 (그녀의 눈에 띄지 않고)조금이라도 오래 바라보기 위해 맞은편의 가판대에서 진짜 맛없는 아이스크림을 두 개나 사먹으면서 턱을 떨어뜨리기도 하는 젊은이. 하지만 국가가 원해 화자의 애끓는 짝사랑에도 불구하고 아무 예고 없이 내전 중에 있는 작은 나라에 의용군으로 참전해 ‘청소하듯’ 원주민들을 쓸어버린다. 유럽의 질서를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 것처럼 마음에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현지인들을 학살한다. 와중에, 저항하는 농민군들을 향해 자살하듯 권총 한 자루만 들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존경하는 대위를 구출하기 위해 몸을 날렸으나 대위는 기어이 고꾸라지고 ‘나’도 팔에 기관총 한 방을 맞아 팔뼈가 박살이 나고 만다.
 독후감이란 것. 예전처럼 ‘독서록’이란 이름의 노트에 나 혼자 볼 요량으로 쓴다면 나는 절대로 이렇게 쓰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곧바로 결론으로 들어가 퇴폐문학분자였던 호르바트의 글이 어떻게 그런 분류를 거쳐 분서갱유의 참담을 당했는지를 쓸 거 같다. 하지만 책을 사기 전에 누구나 읽어볼 수 있는 공개 서재에서 독후감을 쓸 때 그런 의견을 피력한다면, 이 독후감을 읽는 분은 책의 내용 전반을 짐작할 수밖에 없다. 혹시 퇴폐문학이 아니라 퇴폐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경우엔 줄거리 말고 음악 고유의 것들이 추가되니 좀 덜 낭패할 텐데, 스토리가 절대 위주인 소설엔 이쯤에서 끝내는 것이 맞을 거 같다. 이것만 얘기하며 마감하자.
 개인과 국가의 문제를 다룬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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