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공의 체면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8
원팡이 지음, 장희재 옮김 / 연극과인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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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공? 여기서 공은 귀족의 계급 공公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공작公爵인데, 1940년대 중국에서 장 공이면 딱 한 명, 바로 장제스蔣介石를 일컫는 말. 그러니까 장개석의 체면이란 뜻인데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장개석 당시 우파 군부독재자의 체면이 69년이 지나서 사회주의 국가 중국의 스물두 살 젊은 극작가로 하여금 이런 제목으로 희곡을 쓰게 했을까. 이 희곡은 2012년에 발표했고, 무대는 1943년 겨울의 중경重慶과 1967년 여름의 남경南京이다.
 1943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남경을 점령하자 장개석은 수도를 중경으로 옮겼다. 이때 남경에 있던 당시 중국의 최고 명문대학인 국립중앙대학 역시 중경으로 이사를 했는데, 장개석의 국민당군은 일본과 맞서 싸우는 대신 중국 공산당과의 전투에 더 열을 올려 비열한 방법으로 공산당군 3,000명을 학살하고 3,600명이 포로로 잡히거나 행방불명 된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을 본 중국 국민들은 이것을 계기로 결정적으로 국민당에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1년 후 임시수도 중경의 중앙대학. 교수 세 명이 교묘하게 뇌를 쓰고 있다. 장개석이 다른 곳도 아니고 중앙대 총장으로 부임할 계획이고 부임하기 전에 (특히 중문과)교수들에게 저녁을 한 턱 내기로 작정을 해서 초청장을 보냈는데, 문제는 교수들이 독재자 장 공의 초대를 그리 흔쾌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고 초대에 응하지 않기도 쉽지 않은 것 역시 당연하다. 만찬에 참석하지 않으면 장 공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 될 터이고, 어쨌든 실권자에게 당장 밉보이는 일이 생길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하니까.
 그리고 24년 후의 남경. 마오저뚱의 문화대혁명을 시작한지 1년이 지난 후. 벌써 74세와 69세의 노년이 된 세 명의 전직 대학교수들은 인텔리에게 유달리 혹독했던 홍위병들의 발톱을 피하지 못해 남경대학의 한 건물에 반동분자의 낙인이 찍혀 갇혀있는 처지로 떨어졌다. 장개석 정부에 가장 완고하게 반대했던 시임도 전 교수가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모를 반성문을 쓰고 있을 때 하소산 전 교수가 이이에게 들른다. 정상 상태면 반동분자끼리 만나는 일은 불가능할 터. 마침 홍위병 두 파벌간의 싸움이 벌어져 아무도 반동분자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바람에 만남이 이루어졌던 것. 이어서 이들보다 다섯 살 아래인 변종주 전 교수까지 합세해 24년 만에 중경이 아닌 남경에서 다시 한 자리에 만나게 된다. 문제는 24년 전 장 공의 초대 만찬에 누가 참석을 했느냐 하는 일. 교수 하나가 다른 교수가 장개석의 만찬에 참석했다고 고발을 했고, 그 교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기가 거기 참석한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 혹은 참석은 했지만 가뜩이나 반동분자로 몰려 고생이 자심한데 그걸 피하려 고발자의 기억을 흐리게 만들 목적인지도 모르고.
 이렇게 세 명의 인텔리가 24년의 터울을 두고 극우(장개석 정권)과 극좌(문화혁명의 홍위병) 정권에 의한 갈등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발언하는지를 드라마로 만들었다. 스물두 살의 젊은 극작가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갈등의 시절’에 지식인들의 의견 충돌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으며, 특히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보면 지식인 속물인 것처럼 보이고, 어떻게 보면 속물 그 자체가 틀림없게 묘사를 하는데 읽는 사람에 따라 이들 가운데 ‘가장 진정한 속물’이 누군가는 달리 생각할 여지를 두었다. 이거 재미있지 않은가. 그렇다. 세상 누구나 다 자신이 완전하게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러니 조금씩은 속물 기운을 가지고 있는 바, 그걸 어떻게 묘사할까, 하는 거, 그리고 판정은 관객이나 독자에게 맡기는 솜씨를 겨우 스물두 살의 아가씨가 가지고 있었다는 점도 놀랍다. 내 경우엔 희곡 속에 두보를 비롯한 당시 몇 귀절이 나와 잠깐이나마 구절을 해석하며 우리말로 바꾼 것이 옳은지 그른지 알아보는 잔재미도 주었다.
 이것으로 출판사 “연극과 인간”에서 나온 중국현대희곡총서 여덟 권을 모두 읽었다. 이 중국현대희곡총서를 읽은 영향으로 우리나라 희곡집을 두꺼운 책으로 세 권 장만했다. 새삼스레 불민한 나로 하여금 우리나라 희곡에 관심을 갖게 했으니 그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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