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트레버 - 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5
윌리엄 트레버 지음, 이선혜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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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시면 책 제목을 <윌리엄 트레버>라고 달았다. 원래 제목은 2015년에 간행한 <SELECTION OF STORIES by William Trevor>, 즉 <윌리엄 트레버 단편선>. 현대문학에서 찍은 세계문학단편선 시리즈의 15번째 책이다. 단편소설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이 시리즈를 주목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눈에 들어오는 작가들만 보더라도 헤밍웨이, 포크너, 만, 해밋, 트레버, 멜빌, 겐자부로, 챈들러, 그린 등이 눈에 띈다. 흠. 외국 단편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포크너와 그레이엄 그린의 단편집이라니. 생각 좀 해봐야겠다.
 같은 사람의 단편집을 두 권 연달아 읽는 일. 바로 전에 트레버의 열두 단편을 엮은 <비온 뒤>를 읽고, 곧바로 스물세 편이 실린 <윌리엄 트레버>를 마쳤다. 같은 사람이 쓴 작품이란 것은 물론 단박에 알 수 있다. 트레버의 문체와 서술방식과 이야기를 끌고 가는 성향과, 주인공들의 행동방식과 주제 같은 것에 공통적인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 이것, 즉 작품 속에 일관하게 이어지는 특징 때문에 어떤 작가들(사실상 많고 많은 소설가들)의 단편집을 읽는 일이 지겨워질 수도 있다. 그러나 트레버는 아니다. 연달아 서른다섯 편의 단편 소설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새로운 흥미를 이끌어내곤 한다. 아무나 이렇게 쓸 수 있는 거 아니다.
 소설을 읽어보면 대부분 많은 세월을 살아낸 다음에야 얻을 수 있는 세계관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작품 속 시간은 쉽사리 과거에서 현재로 수십 년을 건너뛰고, 과거에는 많이 중요한 것들이 이젠 하잘 것 없는 일이 되기도 하며, 어려서는 모든 아이들의 놀림감이었던 소년이 오늘, 검은 연미복을 차려입은 위험한 중년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노인과 몇몇 약자는, 대중과 상대적으로, 권력이 됐건 육체적인 힘이 됐건 간에 힘 있는 타인에 의하여, 비록 그것이 악의로 무장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선의와 천진에 의거한,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세계. 작가가 1928년생으로 대개 1920년대 중후반쯤에 출생한 인물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은 건 인지상정이라 여길 수 있으며, 간혹 그들의 (조)부모나 자녀들의 시선으로 작품을 보기도 한다.
 그런데 윌리엄 트레버의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쓰는 독후감을 이리 건조하게 서술해도 되는 걸까? 문학과 관련한 강좌 한 번 들어보지 못했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해도 괜찮은지 모르지만, (내가 읽은)트레버의 단편집들, <비온 뒤>와 <윌리엄 트레버>에 실린 작품들 하나하나를 보면서, 만일 단편소설 교과서가 있다면 바로 이것들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현대 우리나라 작가들의 감각적인 단편들과는 많이 차이가 나기는 한다. 그리하여 내가 느낀 교과서 운운은 정말로 단편소설을 쓰는 사람들, 소설 공부를 하는 이들이 보면 코웃음을 칠만하겠다. 그러나 대상을 관찰하고, 취재해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진행과정이 어디 하나 넘치는 곳도 없고 모자란 곳도 없이 꽉 짜여 있으면서도 전체를 관통하며 흐르는 ‘이야기의 쓸쓸함’이 매혹적이었다. 책 속에서 무수히 등장하는, 뭔가 하나가 결핍된 인물들의 이야기. 그건 바로 당신일 수도 있다.
 대단히 위대했던 여름이 드디어 갔다. 아직은 남은 태양의 여열에 숨이 막힐지언정 누가 뭐라 해도 이제는 가을이다. 만일 이 누추한 독후감을 보고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을 선택하시려 하면, 한 달쯤 더 흘러 가을이 깊어갈 때 더욱 어울릴 수 있을 거란 힌트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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