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나무벌 이야기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2
천쯔두.주샤오핑 지음, 양졘 각색, 김우석 옮김 / 연극과인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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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희곡은 주샤오핑이 쓴 <뽕나무벌 이야기>, <상원>, <복림과 그의 아내> 세 편의 소설을 바탕으로 천쯔두, 양졘이 가세해 희곡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중국의 현대사를 산 이들이 대개 그렇듯이 1950년대 초반 출생인 이들 역시 문화혁명을 거쳐야했으며, 지식인들의 필수과목이었던 하향下鄕, 즉 시골에서의 현장체험을 겪어야 했기 때문에 서른 즈음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집필활동을 할 수 있었으리라. 문화혁명과 벽촌에서 살아야 했던 경험은 이들에게 반어적으로 문학의 자양분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 주샤오핑 또한 하향 기간에 자신이 체험한 황토고원 마을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었다고, 역자의 해설에 쓰여 있다. 작품의 무대가 되는 곳이 장안, 지금 이름으로 서안을 성도省都로 하는 섬서성 북부의 황토고원. TV 다큐멘터리를 유심히 보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곳 사람들 가운데 일부 주민들은 황토 언덕에 굴을 파 굴 속에서 기거하기도 한다. EBS든가 내셔널지오그래픽이든가에서 본 기억이 난다. 중국의 7대 주석 시진핑도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하방을 간 곳. 그곳과 거기 사람들이 무대와 등장인물. 거대한 황토고원은 수천 년 동안 침식하면서 황하를 통해 서해에 건강한 미네랄을 제공해 풍성한 어족을 보유하게 만들었으며, 진짜 선조, 원조 중국인들이 만든 황하문명의 발상지란다. 그리하여 이들은 노래하기를,


 중화가 황토의 대지 위에 강생하여
 용의 후손이 이 땅 위에 퍼졌네.
 우(禹) 임금의 발자취가 여기에 가득하고
 무왕의 전차가 이 땅 위를 내달렸네.


 우 임금은 요순시대 가운데 한 명인 순 임금의 명을 받잡고 황하의 치수 사업에 큰 공을 세워, 순 임금의 대를 잇는 왕의 위에 올라 나라 이름을 하夏라 칭한 사람이다. 무왕은 은殷나라의 마지막 임금 주紂왕을 죽이고 최초의 봉건왕국 주周나라를 세운 인물. 즉 진정한 중국의 정통성이 바로 자기들의 땅에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희곡 작가들은 이 드라마에 독특한 장치를 만들었으니 바로, 코러스의 사용. 연극에서 코러스라 함은 다수의 등장인물이 무대에 집단으로 등장해서 분위기에 맞게 대사나 필요하다면 ‘코러스’란 뜻 그대로 합창도 하며, 심지어 집단 속에서 특정한 몇 명이 실제로 역할을 맡아 작은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을 담당하기도 한다. 현대적 연출이라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소포클레스에서 내가 본 코러스.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혼인해 세 명의 자식을 낳았다는 걸 알고 무릎을 꿇고 앉아 브로치 핀으로 자신의 눈알을 찔러 피를 흘리는 장면에서조차 검은 옷을 입은 코러스들은 무대 위에서 그대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스 고전 작품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 코러스를, 누천년이 지나 20세기 후반에, 황하문명의 발상지를 무대로 하는 중국인의 작품에 차용했다는 것이 의미심장했다.
 작품의 프롤로그도 무척 재미있다.
 하늘에 비구름이 잔뜩 몰려왔나보다. 마을 촌장이 시끄럽게 징을 치며 등장해 동네사람들을 불러 모아 징, 북, 심지어 세숫대야 등의 가재도구를 두드리며 하늘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친다.
 “검은 용아, 검은 용아, 그냥 지나가려무나.
 남쪽에나 가서 내리거라.“
 용은 비를 부르는 영물. 비를 내리려면 여기서 내리지 말고 남쪽 아웃마을에 가서 내리라는 뜻. 남쪽의 이웃마을 사람들 역시 징, 북, 가재도구를 두드리며 뽕나무벌 사람들의 심보가 고약하다고 욕하면서 소리소리를 지른다.
 “검은 용아, 검은 용아, 그냥 거기 멈추려마.
 북쪽 거기에 멈춰 서서 내리거라.“
 큰 소리를 내면서 비를 물리치는 재미있는 인류학적 장면. 시끄럽게 난리를 치면 구름, 즉 검은 용이 적어도 이 땅 위에선 오줌을 누지 않을 거란 희망사항.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자면, 중국판 님비. 다 좋은데, 우리 집 뒷마당에선 안 된다는 거. 실제로 뽕나무벌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웃, 주민들만 보호하고, 권력 없는 외부인, 힘 못 쓰는 삯일꾼, 다른 곳에서 팔려 시집 온 젊은 여자 같은 이들을 핍박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외부인 가운데서도 지구 혁명위원회의 윗대가리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높은 권력자의 (하향 내려온)아들은 예외다. 역시 권력이 제일 중요한 것. 이들은 자신과 뽕나무벌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상위 권력자들에게 아첨과 뇌물공여와 굽실거리기를 멈추지 않지만, 자신들보다 열등한 외부인한테는 결코 자비롭지 못하다. 그러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공산주의 혁명이 완수되고 공평한 노동과 분배가 이루어지지만 여전히 봉건적 관습이 퍼렇게 살아있는 중국의 벽촌. 당연히 해피 엔드는 아니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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