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 문학과지성 시인선 373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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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이 나온 것이 2010년. 시인의 나이 마흔세 살. 사십대 초반에 쓴 시들을 모아놓은 것이리라. 한 마디로 잘 읽었다. 내 마음에 딱 드는 시들이 많다. 근데 그토록 많은 문학 지망생들이 왜 시인이 되려 할까. 시집의 초판 1쇄가 2010년 2월. 내 책은 초판 8쇄, 2013년 7월. 이 정도면 시집으로는 많이 찍은 편일 텐데 쇄 당 인세로 얼마나 받을까. 56편의 시를 생산하기 위해 몇 달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러려면 한 달에 몇 편의 시를 써야할까. 시인으로 생활하기 위해서, 암만 생각해도, “생활”하기 위해서는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수돗물처럼 시를 써내야 할 거 같다. 아, 방법이 있다. 돈 많은 부모를 만나거나, 돈 많은 배우자를 만나거나, 그것도 아니면 적어도 생활비는 벌어올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면 된다.




 시인은 국경에 산다



 시인의 집에 들러 저녁 때가 되었다


 일 마치고 들어온 시인의 아내는
 하루 종일 집에 있던 시인과
 시인의 손님을 위해 밥을 지어 차려주었고
 나는 밥을 먹고 일어나 시인의 방에 들어가 서성인다


 무심코 책 한 권 뽑아들었는데
 책장 저 안쪽에 보이는 반 병의 말간 소주병


 밥을 다 먹고 따라 들어온 시인은
 도로 나가 먹다 남은 반찬과 술잔 하나를 챙겨들고 와
 방문을 닫아걸었다
 숨겨놓은 술병을 열었다


 벌어진 문 틈새로 설거지 소리 굉장히 들리고
 밥 짓는 냄새 격하게 문틈으로 쳐들어왔다
 다시 아무도 살지 않는 집처럼 바깥은 조용했다
 갑작스런 바깥의 고요를 물으니
 이른 출근을 위해 아내는 잠을 자는 중일 거란다


 짠물을 다 나눠 마시고
 더 이상 쓸쓸할 일 없는 작은 판을 치운다


 대문을 잠글 줄 모르지만
 방문은 잠글 줄 아는 시인의 집을 나오는데
 시인의 운명을 수군대는 달빛 참 의뭉하게 가깝다 (전문. 52쪽)



 최하 이 정도는 돼야 시를 쓸 수 있다. 21세기에는. 착하고 부지런한 아내 또는 남편을 얻어 밥을 벌어오게 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귀가한 아내/남편더러 밥을 챙겨달라고 해서 먹고, 아내(또는 남편)가 눈치 채지 못하게 몰래 소주병을 숨겨가며 조금씩 홀짝이면서, 나 죽기 전에 불멸의 시 한 수를 써내겠노라, 허튼 구름 속을 헤맬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삶을 바라보는 이병률의 시들을 두고 시집의 앞날개에서 이렇게 말한다. “처연하고 오롯하다”고. 어느 형용사가 있어서 시인의 작업을 두고 딱 그렇다고 표현을 할 수 있을까. 그의 시들은 조금쯤 궁상맞고,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서늘하고, 조금은 저린다.
 시를 읽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동감. 시를 읽으며, 맞아 나도 그랬어, 라는 감정이 생길 때의 우연이라니. 이 시집 속에서 하나 발견했다.




 굴레방 다리까지 갑시다



 버스를 타고 처음으로 그곳을 지날 적에
 그곳은 어떤 곳일까 생각하였습니다


 굴레방 다리 앞


 의문이 들 적마다 몇 번 굴레방 다리 앞에 내려서도
 물 저장소가 있을까
 또르르 길게 말린 터널 같은 곳일까
 거적을 뒤집어쓰고 살 만한 안온한 곳일까 궁금하였습니다


 그곳을 맥없이 혹은 격하게 그리워하는 사이
 굴레방 굴레방 중얼거리면
 거슬러 받는 기분이 되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니 어느 날엔가는 무작정 택시를 잡아타고 말하는 것입니다
 굴레방 다리까지 갑시다


 굴레방 다리에 도착해서도
 체한 것 같은 기분이 나아지기는커녕
 굴레방 다리는 이곳이 아닌 것만 같은 것입니다


 마음이 정한 굴레방 다리는
 내가 터를 잡은 곳으로부터 북쪽에 있어야 하고
 아무리 맘속을 헤집어도 찾을 길 없어야 하고
 선뜩선뜩 무슨 일이 일어날 듯이 바람 부는 곳입니다


 무진히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곳 하나
 유리 조각처럼 가슴팍을 찔러본다는 것은
 어찌어찌 터지는 끝을 막아보자는 것입니다 (84쪽, 전문)



 독자도 시인처럼, 아니, 시인도 독자처럼 굴레방 다리를 모종의 이유로 “맥없이 혹은 격하게 그리워”하는 모양이다. 될 수 있으면 굴레방 다리를 지나치지 않으려 하지만 신촌에서 이대 앞을 지나 광화문 육교 옆 레코드 가게 ‘슈바빙’에 가려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굴레방 다리, 그곳을 지날 때마다 컥, “체한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무진히” 흩어져 찾을 수 없는 심장 속의 유리 조각을 체험하는, 공감. 이런 것은 특정한 독자만 한 시인의 특정 시를 읽으며 느끼는 공명일 것이다. 공명共鳴. 같이 느끼는 공감을 넘어, 함께 울 수 있는 공명을 시 속에서 문득 찾아내는 일. 가히 오늘의 사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독자로서는.


 참 괜찮은 시집 <찬란>에서 가장 좋게 읽은 시를 소개한다.




 마음의 내과



 이 말이 그 말로 들릴 때 있지요 그 말도 이 말로 들리지요 그게 마음이지요 왜 아니겠어요 몸피는 하나인데 결이 여럿인 것처럼 이 사람을 귀신이라 믿어 세월을 이겨야 할 때도 있는 거지요 사람 참 마음대로지요 사람 맘 참 쉽지요 궤짝 속 없어지지 않는 비린내여서 가늠이 불가하지요 두 개의 달걀을 섞어놓고 섞어놓고 이게 내 맘이요 저것이 내 맘이요 두 세계가 구르며 다투는 형국이지요 길이가 맞지 않는 두 개의 자(杍)이기도, 새벽 두 시와 네 시 사이이기도 하지요 써먹을 데 없어 심연에도 못 데리고 가지요 가두고 단속해봤자 팽팽히 와글대는 흉부의 소란들이어서 그 무엇하고도 무촌(無寸)이지요



 한 그릇에 달걀 두 개를 깨뜨려 놓으면 흰자위와 노른자위가 서로 뭉글뭉글, 이게 정말 섞인 것인지 따로따로인지 애매한 그림을 보고 시인은 두 세계가 다투면서, 길이가 맞지 않는 자ruler라서 어디 써먹지도 못하고 만날 서로 팽팽하게 와글대기만 하는 무촌, 촌이 없는 사이, 즉 부부 비슷한 거란다. 그게 바로 내 맘이고 저것도 내 맘이며, 이것은 네 맘이면서도 저것 역시 네 맘인 것.
 이 시집 속의 시에 관해 맘먹고 떠들라고 하면 하루 종일 조잘거릴 자신 있다. 그러나 언제나 넘치면 하지 않으니 못한 법. 이쯤에서 독후감을 접자. 나한테는 오랜만에 만난 맞춤한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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