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조차도 민음사 모던 클래식 56
존 맥그리거 지음, 이수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맥그리거. 전에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을 재미있게 읽고 다른 작품을 검색해보았다. <너무나 많은 시작>과 <개들조차도> 두 권이 있었지만 둘 다 “절판”. 품절도 아니고 판을 끊어버린 상태. 전에 <기적을....>은 내가 구입하자마자 곧바로 “품절” 딱지가 붙어 속으로 은근히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암만해도 민음사가 “모던 클래식” 시리즈는 그만 두기로 작정을 한 거 같다. (작년에 노벨문학상 받아먹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들만 빼고. 이시구로의 책은 돈이 되잖여? 그래서 좋잖여?) 그래 맥그리거의 다른 책은 포기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운이 닿아 알라딘 중고책방에 하나 있는 거, 건져 읽었다.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에 좋은 책들 많은데 왜 절판이 많을까? 나, 전부터 민음사 되게 좋아했다. <사람의 아들> <달궁> <김수영 전집> <숲속의 방> 시절부터. 근데 2010년대 들어와 애정 접었다. 책의 기본인 교정, 교열도 개판.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책이 아무리 좋아도 팔리지 않으면 곧바로 절판. 실험적 소설의 모험출판도 전무. 제발 출판사 이름이나 좀 바꿨으면 좋겠다. 민음(民音)은 너무 크다.
 흠. 괜히 열 올리지 말자. 나만 손해다.
 <개들조차도>. 좀 난감. 첫 문장부터 강력 내공이 솟구쳐 오름.


 “12월 말에 그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시체를 밖으로 옮겼다.

 공기는 악랄하게 차갑고, 새파란 하늘이 냉혹히 꿰뚫어 보며, 얼어붙은 태양 아래 나무들은 백골빛으로 바래 있다. 우리는 잠긴 문 옆에 모여 있다.”


 죽은 시체. 이름이 로버트. 전처 이본과의 사이에 딸 로라가 있다. 로버트는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죽은 상태를 유지하고, 소설은 130쪽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인물들, 즉 로버트의 친구인 마이크, 헤더, 대니, 벤, 스티브, 앤트와 딸 로라, 이렇게 일곱 명의 뽕쟁이, 약쟁이들의 시선으로 만들어진다. 정체불명의 화자. 로라를 제외한 여섯 명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고, 작가는 아닌 누군가의 시점일 수도 있다. 왜 작가의 시점이 아니냐하면, 문장이 제대로 된 것이 별로 없다. 10쪽 아래쪽에 작은 글씨로 일러두기라고 있는데 이렇다.
 “어법에 맞지 않거나 불완전한 문장 사용, 문장부호의 생략 등은 원전을 따른 것이다.”
 글을 써서 밥 먹고 사는 작가의 시점이라면 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어법에 맞지 않을 수도 없고, 주구장창 불완전한 문장을 험악한 욕설과 함께 섞어 쓸 수도 없고, 문장부호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웠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내 의견을 굳이 말하자면 작품의 시점은 죽은 로버트의 여섯 친구들 공통의 시점으로 씌어졌다. 이런 불완전한 원문을 효과적이고 심지어 음악적으로 읽히게, 그것도 뜻이 거의 완벽하게 절단될 수 있도록 번역한 역자의 노고에 어찌 찬사 한 마디가 없어야 되겠는가.
 1960년대 아주 초반 태생의 영국 남자들. 세상은 전에 없이 태평성세에 곳곳에서 함포고복이 드높을 줄 알았었다. 그러나 영국 젊은이들은 그들의 사납고 욕심 많은 조국에 의하여 세상 곳곳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전해야 했던 모양이다.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을 필두로 아프가니스탄 파병에 이르기까지. 청년들은 세상 구석구석, 평소엔 그런 곳이 있었는지 관심도 없었던 곳에 떨어져 다리가 잘리고, 파편에 맞아 뇌 속에 50 펜스짜리 동전만 한 금속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야 하고, 떠들썩하고 약간은 난폭한 젊음을 소비하다가 간혹 로버트 같은 이들은 결혼이란 걸 해서 딸도 낳고, 그러나 새로이 발견한 행복의 평원, 알코올 중독으로 가족은 산산이 해체되고, 나머지 젊은 청춘들은 심심풀이로 시작해 이젠 구제할 수 없는 마약 중독자의 길로 접어들어 자신들의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 이 나약하고 불행한 영국시민들의 삶과 죽음을, 바로 그들의 시선으로 적어 놓았다.
 약물 중독자들의 글을 빌었기 때문에 문장은 완전히 끝나지 못하고 중간에서 뚝 끊어지고, 상스런 욕설들이 즐비하다. 그러면서 약물을 좇는, 좇아야 하는 이들의 간절함, 동시에 이젠 더 이상 중독 상태를 계속할 수 없다는 자각과 숱한 결심과 금단현상 등, 21세기 진짜 루저들의 모습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다. 죽은 지 약 7일 만에 발견된 로버트의 시체. 당국은 그의 시신을 완강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캐비닛에 보관하다가, 친지(딸 로라)를 발견할 수 없어 친구 몇 명이 보는 가운데 해부를 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원인을 밝힌 다음, 다시 봉합해 장례를 치루는 과정까지를 그리고 있다.
 알콜 의존 정도의 마지막 단계를 넘어선 남편 로버트에 질려 어린 딸 로라를 데리고 집을 나가버린 이본. 이본과 로라가 다시 자기에게 돌아올 가망이 없다는 걸 확인 또는 확신한 로버트. 자신에게 남은 가장 확실하고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었던 이본과 로라의 부재를 영원한 상실로 단정하고 이제 스스로 사형을 선고한 그는 하루에 약 3~5 리터의 사과술을 자신의 몸에 투입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한 가족의 구성원이 아닌 로버트의 주위에는 언제나 친구들이 모여들었고, 스스럼없이 자신들의 혈관을 찾아 주사바늘을 꼽았으며, 더 이상 바늘을 찌를 혈관이 남지 않은 앙상한 팔과 다리만 남은 친구들의 목 혈관에 조심스레 헤로인, 코카인, 필로폰을 투입해준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조금만 다른 곳에 찔렀다간 그길로 그냥 진짜 천국으로 가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한 실패한 인간이 죽음에 이르고, 시취를 느낀 이웃의 신고로 경찰에 의하여 시신을 발견하고, 상세한 부검과정이 나오고, 장례에 이르기까지 사나운 장면들이 등장한다. 거기다가 마약 중독자들의 비루하기 이를 데 없는 행위들까지 읽어야 하는 독자의 심정이 좋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도 사람 사는 이야기. 이런 것도 예상외로 가슴이 아릴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 전쟁과 전쟁에서의 부상, 그 후에 갑자기 등장하는 여전한 젊음과 젊음의 멀미 같은 것 때문에 모든 영국의 젊은이들이 이렇게 망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책에 나오는 것과 같은 소수 실패자들의 삶이 전혀 의미가 없는 것 역시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