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제단 - 제6회 무명문학상 수상작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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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정말 아름답게 읽고 나서 이이의 작품을 검색해서 고른 책. 2002년에 쓴 <나의.....>가 데뷔작인데 그걸로 덜컥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만 서른 살에 잔치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수유를 하고, 아이가 거의 친정엄마 손에 자라는 동안 (내가 읽기로는)고통스럽게 쓴 작품이 2004년에 발표한 <달의 제단> 아닌가 싶다.
 전작에선 난독증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글씨를 읽지 못하는 한동구가 똑똑하고 매사 똑 부러지는 어린 동생 영주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사람을 울리는, 한겨울의 난로 같은 이야기였는데, <달의 제단>은 영남지방의 한 종갓집에서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뜨겁게 써놓았다.
 주인공 조상필은 서안 조 씨의 중시조 양정공 조춘억의 17대손으로, 대문간채 열 칸, 행랑채 열두 칸, 헛간채 열 칸, 안채 여덟 칸, 사랑채와 서고 열네 칸, 별채 여섯 칸에다가 부속으로 사당과 별묘, 연못과 정자까지 딸린 저택 ‘효계당’에서 산다. 이 큰 저택 효계당엔 딱 네 명, 조상필과 상필의 깐깐한 조부와, 부엌데기 달시룻댁과 80kg이 넘는 거구의 지체장애자 달시룻댁의 딸 정실이만 함께 산다. 그러니까 숱하게 많은 방들이 그냥 비어있으며, 일 년에 수십 번 되풀이되는 여러 형태의 문중제사나 되어야 한 번 열릴 뿐이다. 좀 이상하지? 이토록 큰 저택에 안주인이 없다. 상필의 칠칠한 조모는 일찍 돌아가고, 양정공의 16대손이자 부모로부터 못생긴 외모만 골고루 빼다 박은 상필의 아버지는 부친이 정해준 여인과 혼례를 올렸으나 옷고름 한 번 끌러주지 않고 서울로 내빼버렸다. 거기서 중등학교 미술교사와 혼인신고를 해서 상필을 낳고는 잘 사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 새 돈 많은 아버지와 자신의 법적 아내(상필 엄마)의 화끈한 거래로 인해 다시 효계당으로 잡혀오는데, 그녀가 날 버렸다는 자괴감이 들었는지 아니면 평소에 심한 우울증 증세가 있어서 그랬는지 콱 자살해버리고 말았다. 서안 조 씨 집안에선 상필의 부모가 혼인신고를 했건 말았건 어쨌든 가문에서 정해줘 혼례를 올린 바 있는 배필 ‘해월당’ 여인을 정실부인으로 인정하고 있었으니 우리의 주인공 조상필은 이른바 서얼. 즉, 집 밖에서 낳아 데리고 들어온 서자인 셈이지만, 16대 종손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할아버지로부터 17대 종손으로 인정받게 된 인물이다. 남자가 저고리 끈도 풀어준 적이 없는 숫처녀를 어머니라고 칭하며 자랐으니 이 여인의 길지 않은 평생도 참 냉랭했을 것이란 건 척 봐도 알 만하다.
 주로 우리나라 소설에서 보면, 실제 인간사에선 잘 모르겠지만, 주인공들이 종종 자신의 출생과 비슷한 장면을 만들어버린다. 이 책의 주인공 조상필 역시 마찬가지. 아주 못생긴 얼굴에 80킬로그램이 넘는 살덩어리, 선천적으로 발목이 유난히 약한 장애자이며 늘 열 손톱 아래가 새까맣게 더럽혀진 상태로 냄새를 풀풀 풍기는 정실. 어려서 어머니라고 불렀던 매정한 해월당 부인 대신 엄마처럼 잔정을 듬뿍 주며 상필을 키워준 ‘달실 웃댁’이란 뜻의 ‘달시룻댁’의 친딸, 동갑나기 정실을 덮쳐버린다. 이것 가지고는 소설의 소재로 한참 부족하다. 좀 모자란 여자라서 어려서부터 동네 아저씨나 심지어 친척 아저씨, 노인네들의 성적 노리개로 쓰이곤 했던지라 그냥 덮치기만 해가지고는 약하다. 스물세 살이 되도록 생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정실, 잠깐 왜 이 아가씨 이름을 ‘정실’이라고 지었을까? 정실부인 할 때의 ‘정실’의 의미는 없었을까? 하여간 그런 정실이 조상필과 맺은 숱한 관계를 통해 임신을 해버리고 마는 것.
 내용 소개는 여기까지.
 심윤경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참 여러분야로 공부를 했던 것이 분명하다. 이이는 애초 서울대 분자생물학과를 나온 이과 출신이다. 1972년생이면 국어시간에 고문古文을 배웠을까? 적어도 이과에선 배우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안 조 씨 문중의 산소를 옮기는 도중에 발굴한 몇 대 위 소산 할매가 언문으로 쓴 서찰을 당시 고어체 비슷하게 인용/사용하고 있다. 이 편지가 바로 서안 조 씨, 뼈대 있는 가문으로 근동에 명성이 자자한 명문가의 숨겨진 추악한 면, 주로 여성을 희생시키는 증거로 사용된다. 조상들에 의하여 벌어진 이런 추악한 행위가 현대에 이른 종갓집의 마지막 수행자인 조상필의 조부 조일우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아니, 조일우는 조상들의 행위를 어떻게 생각하고 싶었을까.
 심윤경은 고어체를 사용뿐만 아니라 각종 제사에 쓰이는 축문 같은 것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려 노력하다보니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법을 포기하고 지난 세기에 쓴 것 같은 글을 만들어냈다. 내가 읽기엔 책의 성격상 오히려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전적으로 읽는 사람 마음대로니까 이 의견과 다를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 읽는 도중에 혹시 이 소설이 이러저러한 종결부로 가는 건 아닐까, 하는 의혹이 생겼으며, 아니나 달라, 예상한대로 아주 정확하게 끝을 맺고 말았다. 무슨 뜻인가 하면, 작가 심윤경이 너무 쉽고 편한 결말을 선택한 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는 말씀. 해소 또는 파국의 결말보다는 이 책의 경우 결론을 독자에게 선택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확장해주는 편이 훨씬 좋았지 않나 싶은 건데, 사실 이런 의견은 내놓고 할 말은 아니다. 결말의 결정이야말로 작가의 고유 권리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독자가 읽기에 그랬다는 거만 참고하면 좋겠다. 심윤경의 다른 장편소설도 또 읽어봐야겠다. 재미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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