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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않을 용기 - 알리스 슈바르처의
알리스 슈바르처 지음, 모명숙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인간폭탄이 되고플 때 안전핀의 위치를 잊어버리길, 살고싶으니까!
뭔소리냐고, 그냥 이런저런 세상의 부조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부조리한 상황까지 오버랩되면서 꼭지가 확~~돌아버리고 그럴땐 온 몸을 폭탄으로 두르고 가장 부적절한 상황을 만드는 곳에 가서 산화하고 싶어지잖아. 실제 실천을 한다기보다 감정적 상태가 그렇게 된다고, 나만 그런가?! 이런 부조리한 상황 앞에서 내가 너무 나약하고 무기력해서 짜증이 나는거지. 그럴때 그냥 팍 부서져 버리고 싶은거지. 처음부터 너무 격하다. 요즘 쫌 격하게 만드는 일들이 줄줄이 이어지다보니 말이야, 중앙일보개념없는컬럼․천안함․검찰과스폰서․낙태․한명숙사건 등등. 그런데다 거기 달리는 댓글 읽다보면 호흡이 힘들어져.
감정적으로 추스르기 힘든 시기에 <사랑받지 않을 용기>를 읽는다. 원 제목이 <대답>이었다는 슈바르쳐의 책은 일관되고 명쾌하게 '여성운동'이 가고 있는 길을 보게 한다. 그리고 그녀의 '용기'에 위안을 받는다. 내 안에서 타협하려 하거나, 가끔씩 위축되곤 하는 모습을 보고 슬쩍 비웃음을 날리게도 만든다. 결국은 나로 돌아오는 '운동'의 방향을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만나며 나는 내 몸의 안전핀을 확인한다. 나를 부수어버리려는 분노는 결국은 '포기'와 '절망'에서 나온다는 걸 알면서도 수시로 때때로 서둘러 끝장을 내버리려는 '자살폭탄테러리스트'가 되고픈 서글픈 욕망을 품는 부실한 영혼인 나, 슬프다.
<사랑받지 않을 용기>에는 "지금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화두로 11가지의 주제로 현재 여성운동의 지점과 방향을 보여준다. 당장 가장 관심이 가는 '낙태는 살인이야'와 '성매매는 영원할거야'도 아주 실질적 대답이 되어 주었지만 꼭 모두가 읽었으면 하는 부분은 '예언자의 이름으로'와 '그때가 좋았지'이다.
'예언자의 이름으로'는 이슬람 여성들의 희잡을 통해 문화적 상대주의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폭력적 상황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동향 여성들이 죽음의 위협속에서 두건 착용을 강요당하는 동안 독일의 아프가니스탄 여성은 이슬람 여교사들이 두건을 쓰고 수업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싸운다는 현실은 여성의 가혹한 삶을 드러내주는 일례에 불과하다.
'그때가 좋았지'는 해체된 가족을 그리워하는 망상을 여지없이 까발려 준다. 따스한 보금자리에 대한 갈망은 당연하지만 "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싶다면 가정을 만드세요"라는 이제까지의 가부장적 가족에 대한 현실인식 위에서 변화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매매와 성폭력, 가정폭력에서 가해자의 특성이 얼마나 유사한지 섬뜩할 지경인데 "가해자는 겉으로 눈에 띄지 않는다. 심지어는 특별히 상냥할 때도 있다. 이런 태도가 피해자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현실감각을 더욱 성실하게 만든다. 가해자가 쓰는 방법은 제멋대로 하는 전횡과 종잡을 수 없는 예측불능이다. 그 방법이 피해자가 당하는 무자비한 통제, 사회적 고립과 결합된다. 왜냐하면 이 간수는 자기를 증오하는 포로가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는 포로를 원하기 때문이다....이와 같은 방법을 쓰면 여성들은 복종하게 된다. 매춘이든 포르노든 집에서든 말이다."
슈바르쳐와 함께 겹쳐 떠오르는 한국의 여성운동선배들, 나는 그들이 이루어놓은 것 위에 슬쩍 발하나를 걸치고서는 힘들다고 징징거리고 있다. 지금도 이리 갑갑할 때가 많은데 도무지 그 시절을 어떻게 살아냈을까, 우리의 선배들은?
"여성들은 드디어 자신들의 삶과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되었는데, 실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마오쩌둥 이전의 중국에서 전족한 발에나 어울렸을 법한 위험천만하게 굽이 높은 신발을 신은 채, 굶어서 아픈 몸을 이끌고 작은 세계를 총총걸음으로 돌아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