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잎사귀처럼 - <사이보그 선언문>의 저자 다나 J. 해러웨이의 지적 탐험, 다알로고스총서 2
사이어자 니콜스 구디브.다나 J. 해러웨이 지음, 민경숙 옮김 / 갈무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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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적 진실'로 '과학'에 다가가기,  

한장의 잎사귀처럼.....         


자연이라는 본체의 일부인 영장류의 몸은 권력의 지도로 읽혀질 수 있다. 생물학과 영장류학은 본래 정치담론으로, 그 주요 지식대상들은(예를 들어 유기체론과 생태계는) 문화사 전체및 문화정치를 집약하여 보여주는 기호들(요약들)이다.

땅이 평평하다는 게 절대 변할 수 없는 진리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어느날 '니가 지금 서있는 곳은 둥그런 공이고, 거기다 그 공은 빙글빙글 돌고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내가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었을 때 들었던 느낌이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게 온다, 사고의 전환은 어느날 갑자기 존재자체를 거꾸로 매다는 느낌으로.

왜 이 얘기를 하냐고? '과학'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태클걸기는 페미니즘의 주요 작업 중 하나이고, 나에게 <과학혁명의 구조>와 더불어 절대적 진리자로 '믿음'아니면 '죽음'이라 목을 조르던 자연과학 담론을 확 바닥에 패대기치는 아주 유쾌한 경험을 하게 했기 때문이다.

2012년, 지금 여기에서도 '과학'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말씀'은 절대적이다. 종교보다 더 큰 기적을 보여주는 '과학'앞에서 나같은 무지렁이가 할 일은 그저 두려움으로 머리를 조아리는 것 뿐인것 같다. 하지만 "생물학은 담론이지, 세계 그 자체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해러웨이와 같은 페미니스트가 있어 'DNA'도 정치적 이론과 실천이 꼬여있는 구성체라고 감히 사고하게 된다.

해러웨이는 '생물학'을 전공했고, 그것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작업은 실험실의 고립된 과학자로서가 아니라 생물정치학이라는 주제로 "편시야적이고 외골수적인 단-문장식 진실들로 환원되지 않는 관계성의 상상력을 주장"한다. 그래서 "결론이 단 하나의 진술이 되는 걸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생명공학은 현대의 새로운 성경이 되고 있다. '게놈 프로젝트', '유전자 지도' 등 인간이라는 '우주'의 신비를 낱낱이 파헤지고 있는 중이다. 헤러웨이는 생물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공학이 동시대의 사업 및 자본투자의 주요분야로 유전학 기술에 깊이 의존하게 되면서 유전자들을 '물체'로 사고하고, 이것이 연구와 투자를 계속 후원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에 대해 염려한다. 현대의 과학자들이 "나에게 유전자통제권과 충분한 시간을 준다면 당신의 꿈을 살과 피로 암호화하리라"라고 광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헤러웨이는 이것을 투쟁의 문제라고 한다. "나는 우리 삶의 역사적 구조가 지배를 최소화할 때 생명과학이 어떻게 될지 알 지 못한다. 나는 기본지식이 과거의 세계를 유지하는 데 참여한 것처럼, 생물학의 역사가 새로운 세계를 반영하고 번식시킬 것이라고 나를 설득하고 있음을 안다."고 고백하면서 "이 포스트모던 몸, 이 언제나 취약하고 우연한 개체성의 구성물이 반드시 자동화된 별들의 전쟁터이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구디브와의 대담으로 이루어진 책 <한장의 잎사귀처럼>은 해러웨이의 전반적인 이론작업과 삶을 아울러 일별할 수 있게 해준다. 본문 중 구디브는 "낭만적으로 생각하지 않기가 어렵다"고 해러웨이에게 말하는데 해러웨이의 관계맺기 방식은 다른 어떤 그녀의 이론보다 더 실천적으로 보인다. (궁금하면 책을 보시라)

해러웨이의 책 중 '겸손한 목격자'라는 제목이 있다. 나를 사라지게 만드는 종류의 겸손, 신뢰성을 증진시키는 종류의 겸손이 있는데 남성의 겸손이 후자인 반면 여성의 겸손은 비켜서 있는 것에 관한 것이었기에 '겸손'이란 말의 비유작업은 아직 진행중이지만 해러웨이는 자신을 '페미니즘적 겸손'을 가지고, "물질적-기호적"인 실제 세계에서 차이를 만들려는 목표를 가진 채, 인종․계층․젠더․성에 관한 문제들을 힘들게 교차시키도록 요구하는 기술과학 세계 속에 억류되어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의미에서 겸손은 자신의 영향력, 권력, 한계들 등을 인식하는 것으로 "겸손한 목격자는 상황적 지식에 몰두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해러웨이는 '겸손한 목격자'로서 나에게 말한다. "제가 진정으로 요구하는 건 영속적인 정열과 아이러니라는 겁니다. 즉 정열이 아이러니만큼 중요하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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