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종종 자각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기습해 온다.
지난 주말,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살아있는 우리신화'를 읽다가
곁가지로 살짝, 그야말로 살짝 언급된 아르테미스의 분노 앞에서처럼.

아르테미스의 분노와 꿈 속 나의 분노.
처음 접하는 얘기도 아니었건만
심심찮게 반복되곤 하던 꿈이었지만
아무런 상관관계도 인식치 못했던 별개의 사건들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음을 그제야 알아본 것이다.

한때, 꿈과 무의식을 천대했었고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을 포함한 몇몇 책들을 통해 내 안의 나를 탐구하고픈 맘이 동했었고
'H'라는 영화를 본 이후에는 타인이 나의 무의식에 접근하게 허용한다는 것이 위험천만한 일로 여겨졌었다.
그리고 <사람풍경>은 까치발로 갸웃거리던 정신분석학이라는 세계를 고맙게도 내 눈높이에 맞춰준다.

사람풍경, 무의식에서 출발하여 자기실현의 장에 이르기까지, 매 챕터는 대단히 흥미롭다.

각각의 챕터에 차용된 에피소드들은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배우가 차지하는 비중 그 이상이다. 아주 냉정한 시각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찬찬히 뜯어보게끔 만드는 배우들이 있는가 하면, 최고조의 감정이입으로 때론 헐떡이게, 때론  숨죽이게 만드는 배우들이 있다. 일테면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완벽에 가깝게 바보 엄마 영자씨로 분했던 고두심처럼. 그녀가 앞가슴에 빨간 약을 잔뜩 처바른채 돌아본다. '내가 가슴이 너무 아파서... 이걸 바르면...' 순식간에 온 몸에 전율이 흘렀었다.

사람풍경의 에피소드들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카타콤의 비유나 빼어난 예술작품들을 마주한 감동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간접체험의 한계가 너무나 여실히 드러나지만..

오클랜드의 아이들에게선 예전의 내가 보여 마음이 짠해지고
일찌김치 '착하게'를 거부하고, '독하게, 냉정하게'를 추구해 온 내가 일견 대견스럽고
내 남은 생에 더이상의 '불안과 공포'만은 깃들지 않기를 바란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욕심이었는지를 이제 알겠다.

그리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변덕이란 챕터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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