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김형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가끔씩 맨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본다.

그래봐야 겨우 몇 십 분, 길어야 한 두 시간

이런 저런 생각의 편린을 좇거나 달콤한 낮잠을 즐기기에 적합한.


단단하고 차가운 바닥에서 올라온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뇌 속 깊숙히 닿을 즈음이면

난 명료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곤 발딱 일어나 청소를 하거나

하다못해 화분에 물이라도 주면서 몸을 움직인다.


<외출>을 읽던 날도 그랬었다.

맨바닥에 누웠다.

서늘했다.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연민으로 시작되는 사랑을 경계해 왔다.


힘든 시기에 연애를 시작하는 친구들을 보면 답답했고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무슨 연애냐 싶었다.

왜 그 사람과 결혼을 하느냔 물음에

'그 사람이 날 많이 좋아해‘라고 밖에 대답하지 못하는 한 선배를 보면서는 헛웃음만 났다.

그리곤 내가 보태지 않아도 충분히 힘들었을 그들에게 잘난 척하고 생채기를 냈다.

어린 것이 참 많이 모질고, 못됐었다.


인수와 서영, 그들의 사랑도 그 시작은 연민이다.


동질, 동량의 상처를 가진 두 사람

처음엔 서로의 상실과 분노를 되비추는 거울이었을 그들이

연민을 느끼고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사랑에 빠져든다.


서로에게서 자신을 보고

자신들의 사랑을 통해 배우자들의 사랑 또한 가늠해 본다.

'그들도 이렇게 애틋하게 아프게 사랑을 했겠구나'

 

배려는 세심한 관찰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반복적인 일상의 부딪힘과 관찰, 배려가 적절히 버무려지면

사랑이란 어쩌면 자연스런 귀결일런지도 모르겠다.

인수와 서영처럼.


그들의 사랑은 그들이 거닐었던 겨울바다 만큼이나 쓸쓸하고 쓸쓸하다.

산뜻하고 걸림이 없는 사랑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어쩌랴.


눈 내리는 4월

서영은 심야고속버스에 올랐을까?


그 이후에야 또 어찌되든

350년 된 회화나무가 있는 공원에서든

매일매일 거닐던 강둑에서든 둘의 해후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소설을 읽으면서 영상의 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다.

짧은 예고편에서 본 몇몇 씬들이 전부였건만

마치 영상소설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수시로 들었다.


소설을 읽기 전엔 그냥 허진호의 영화가 보고 싶었는데

소설 <외출>을 통해 이젠 영화 속 인수와 서영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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