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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 ㅣ 정호승 우화소설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5년 6월
평점 :

'그래도 난 제비가 날아오길 기다릴 거야. 내가 기다리고 있는 한, 언젠가는 제비가 다시 날아올 거야. 문제는 내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는 데 있어.'
정호승 시인의 우화집 두 번째 <조약돌>엔 사랑에 관한 모든 감정들이 담뿍 담겼다.
길지 않은 이야기에 담백하게 담긴 '사랑'에 뿌리내린 감정들...
그 감정들엔 아름다움만 존재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이 더 많이 존재한다.
그걸 뚫고 살아남은 감정이 바로 '진한 사랑'이겠지...
최적의 삶을 살면서도 그게 최적인 줄 몰랐던 조약돌의 바람은 결국 최악의 장소에 남겨졌다.
빈 들판에 홀로 서 있던 나무는 사랑하는 새를 찾아 들판을 떠나지만 뿌리를 드러낸 채 결국 새에 닿지 못했다.
거짓 사랑 고백에 진절머리가 난 모란의 심정도 이해가 되고,
부러워서 한 말에 잘난 척하는 옥구슬의 최후를 보면서 공존의 삶을 떠올린다.
제비꽃의 슬픈 사연을 읽다 보니 제비들 본 지가 너무 오래라는 생각에 오래전 우리 집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지지배배 울었던 제비 가족이 떠올랐다.
풍경이 제아무리 아름다운 소리를 내어도 바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지.
형제 봄눈이 남과 북으로 헤어져 내려서 눈사람이 되어 서로를 그리는 모습을 통해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을 가진 분들을 생각나게 했다. 이제는 거의 고인이 된 분들이 많을 테지.. 그분들이 없는 세상에서 남북의 관계는 예전과 같을까?
"비목어야, 사랑은 가만히 기다리는 게 아니야. 찾아 나서야 하는 거야."
비목어를 보며 <항아리>에서 만났던 비익조가 생각났다.
둥지를 떠나야만 내 삶을 살 수 있고, 가장 어렵고 고달플 때 내 곁에 머무는 사람이 바로 나의 반쪽이라는 사실이 서럽게 와닿았다..

사랑은 아름다운 단어지만 아름답지 않은 단어들 사이에서 빛나는 단어이기도 하다.
질투, 집착, 시기, 고독, 기다림, 냉정함, 거짓말, 의심, 계산...
이 단어들 사이를 유영하면서 얻고, 깨닫고, 이겨내야 비로소 내 것이 되는 '사랑'
시인의 언어는 화려하지 않아 좋다.
꾸미지 않은 담백한 글들이 마음속에 쏙쏙 박힌다.
폭발시키는 감정적 스트레스 없이도 그 감정의 폭풍들을 알아먹게 된다.
클라이맥스 없이도 '사랑'을 감싸고 있는 거친 언어들을 듣게 되고, 어지러운 감정들을 느끼게 된다.
이 어른들의 우화는
감정이 성숙한 사람들에게 더 진하게 울린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이들에겐 고요히 흐르는 강이다.
사랑은 공존이고 공생이다.
공존의 이유를 알지 못하면 사랑을 하고 있어도 사랑을 모른 게 된다.
나는 지금 사랑을 하고 있나?
나의 공존과 공생은 잘 이루어지고 있나?
소소한 이야기에서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