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터 허블청소년 1
이희영 지음 / 허블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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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세상을 움직이는 건 첨단 과학기술도, 의학의 발전도 아닐 것이다. 작은 희생조차 막아서려는 누군가의 연약한 두 팔인지도.

 

 

이 이야기는 전설로부터 시작한다.

수신(獸神)으로 불리는 오방새는 꼬리에서 빛이 나는 새로 동굴에 산다.

동굴에 사는 이 수신은 인간의 발길을 원치 않았다. 그 동굴에 침입한 인간은 벌을 받았다.

원인 모를 병으로 죽어가는 인간들. 그래서 인간들은 그 동굴을 막아버리기로 결정했다.

어린아이를 수신에게 바치고 그들은 동굴을 막았다. 그렇게 오방새는 전설로 사라져 지구상에서 멸종되었다.

 

레인보우 버드는 오방새를 과학의 기술로 되살린 새의 이름이다.

관광용으로 하나의 이벤트로 멸종된 동물들을 복원하는 게 유행이 되어버린 미래의 지구.

그 지구의 도로엔 자율주행차들이 달리고 그 지구의 하늘엔 드론이 새들처럼 날아다닌다.

 

호박에서 공룡 DNA를 뽑아서 멸종된 공룡을 부활시킨 쥬라기 공원을 보며 저런 기술은 발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적응하지 못해 멸종된 생물을 다시 불러온다는 건 단순한 유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테스터>에서는 신비의 오방새를 복원시켰다.

마치 그것을 벌하듯이 그 복원을 추진한 사람에게 수신은 벌을 내린다.

손에 상처를 입혔을 뿐이었는데 사소한 상처에 극강의 바이러스를 주입시켰다.

 

그렇게 부모의 죄로 태어난 아이 마오는 RB 바이러스의 희생자가 되었다.

마술 같은 아이라는 이름의 마오는 눈동자만 빼고 모두 하얗다.

태양 아래 설 수 없는 아이.

조금만 흥분해도 터지는 기침 앞에서 숨 고르는 아이.

낮에는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아이.

메이드 봇과 둘이서만 살아가는 아이.

스스로를 흡혈귀라 부르는 아이.

알비노 마오.

 

마오의 할아버지는 달에 호텔을 가지고 있을 정도의 재력을 가진 사람이다.

마오를 위해 바이러스를 무력화 시킬 신약을 연구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RB 바이러스의 출현을 비밀로 하고, 마오를 살리기 위해 치료제를 찾기에 힘쓴다.

 

사춘기에 접어든 마오는 점점 혼자 갇혀 지내는 것을 힘들어한다.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는 게 두렵기도 하지만 빨리 치료제가 완성되어 보통 사람처럼 살기를 원할 뿐이다.

그러다 RB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느 날 마오를 찾아온 하라.

두 사람은 같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지만 증상이 달랐다.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하라는 색을 구별하지 못한다.

 

온몸의 색이 빠져나간 알비노 마오.

온 세상의 색을 알아보지 못하는 색맹 하라.

이 두 사람의 치료제는 과연 완성될까?

 

낡은 메이드봇만이 폐기처분의 대상일까? AI와 로봇들에 의해 쓸모가 사라지고 있는 쪽은 오히려 인간이었다. 수리도 업데이트도 쉽지 않은 인간의 끝이 어딜지는 알 수 없었다.

 

 

이희영 작가의 글은 처음이다.

독특한 소재의 이야기 안에 우리가 그리는 미래의 참상이 담겼다.

그래서 읽는 내내 두려워졌다. 저런 세상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인간의 장기와 피부를 대체하기 위해 인공장기와 인공피부를 가진 동물을 만들어 내고

멸종된 동물을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것들만 골라 복원시키고

달에 정착하기 위한 이민자들을 모집하는 세상.

 

그러나 그 새로운 것들을 위해 필요한 게 바로 <테스터>다.

인공장기와 인공피부의 부작용을 위해, 달에서도 인간이 잘 살아갈 수 있는지를 위해 필요한 <테스터>

하라와 마오는 누구를 위한 <테스터>일까?

 

 




과학기술의 발전과 진화가 불러올 부작용을 걱정하면서도, 그 편리함에 취해 사는 게 인간이었다.

 

 

<테스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미래가 오기 전에 미리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갈 미래에 우리가 얻게 되는 과학기술의 진화가 정말 인간에서 유용하기만 한 걸까?

좀 더 가진자를 위해, 좀 더 배운자를 위해, 좀 더 특별함을 지닌 자들을 위해 그렇지 못하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이 <테스터>로 희생되는 것은 옳은 걸까?

 

 

"회장님 말이 맞았어. 인간은 언제든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만 세상을 보곤 한다고. 그 시점에서 보이는 것만이 정의라 믿는다던데, 그 말이 뭔지 이제야 알겠네. 어쩔 수 없었다? 되게 편리한 말이잖아."

 

누군가의 희생으로 세상이 더 좋아진다면, 당연히 그럴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게 인간이다. 그 누군가가 자신이 아니어야 한다는 절대적 조건하에서 말이다.

 

 

 

왜 이 소설이 청소년 소설일까? 의아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청소년 소설이어야 할 이유를..

미래를 사는 건 바로 그 아이들이니까. 그들이 살아야 하는 세상의 문제점을 미리 알고,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이 이야기의 마지막에 대해서 감히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없을 거 같다.

내가 그라면 어떤 결론으로 향했을까?

 

<테스터>는 수많은 이야기에서 다뤘던 문제들에 대해 더 고심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테스터>가 그리는 세상이 지금 현실에서도 가능한 이야기니까.

어딘가에서 수많은 <테스터>들이 자신이 <테스터>인 줄 모르고 살아갈 테니 말이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의 <테스터>라면?

어쩜 우리는 서로의 <테스터>일지 모른다...

 

표지의 두 아이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는 환상적인 판타지로 보였다.

이제 두 아이의 모습은 '슬픔'으로 보인다.

지켜주고 싶었지만 지켜주지 못했던 서로의 모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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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 저택의 비밀 클래식 추리소설의 잃어버린 보석, 잊혀진 미스터리 작가 시리즈 2
해리에트 애쉬브룩 지음, 최호정 옮김 / 키멜리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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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친구들은 나를 스파이크라고 부르지만, 당신의 후견인과는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되기 어렵겠죠. 출생증명서와 여권, 그리고 경찰 사건 기록부에 있는 이름은 필립 트레이시랍니다."

"예전에 악명 놓은 두 건의 살인 사건에 휘말린 적이 있었답니다."

 

 

차가 퍼지는 바람에 도움을 구하기 위한 남자의 눈에 '젠장'이라는 욕을 입에 달고 있는 여자가 보인다.

기차를 놓쳐 버린 여자.

욕이라고는 '젠장' 밖에 하지 못하는 여자는 스파이크를 자신이 살고 있는 저택으로 데려간다.

저택에 사는 사람들에게 경멸과 적의를 드러내는 그녀의 소개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게 만든다.

아무래도 저 저택은 평범해 보이지 않다. 아니. 저 저택의 사람들이 평범해 보이지 않다!

 

스파이크 트레이시.

7편의 시리즈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다.

해리에트 애쉬브룩은 처음 알게 된 작가다.

시대를 앞선 추리소설로 사후에 인정받은 작가로 고전 클래식 추리소설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스파이크는 어딘지 모르게 형사나 탐정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한량처럼 느껴지는데 그도 사건을 끌어들이는 능력이 있는 거 같다.

샤론 저택에서도 그가 있는 동안 살인 사건이 발생하니까.

 

"난 살고 싶을 뿐이에요. 하지만 그 사람은 나를 질식시키고 굶겨 죽일 거예요... 나도 ... 마찬가지로 살 권리가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나를 죽이려고 한다고요. 이건 그냥 명백한 살인이에요."

 

 

샤론 저택의 샤론 박사가 그날 저녁 살해된다.

그리고 그 마을에 하나뿐인 보안관이 사건을 맡게 된다.

스파이크는 보안관을 도와 사건을 추리해가는데...

과연 이 살인 사건의 범인은 명백하게 범인처럼 보이는 그녀일까?

아니면 또 다른 살인자가 숨어 있는 것일까?

 

1930년대의 추리 소설임에도 캐릭터들의 모습이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주인공 스파이크만 해도 탐정이나 형사와는 전혀 관련 없는 한량스러움이 몸에 배어있지만 시시때때로 날카로운 추리력을 발휘해서 놀래키는 재주가 있다.

마을의 보안관 실콕스는 추리소설을 즐겨 읽지만 살인 사건을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상반된 쌍둥이 메리와 질.

병약하고 차분하고 상냥한 메리와 그와 반대로 열정적이지만 어딘지 사악한 느낌을 가진 질은 대번에 살인자로 낙인찍힌다.

그 외 이웃이지만 식구 같은 페더스톤과 그림자 같은 미스 윌슨, 만능 해결사 헨리, 그의 아내이자 요리사, 질에게 푹 빠진 보안관의 아들 이들 중 대체 살인자는 누구일까?

 

그녀에게는 뭔가 어찌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때로는 너무 쾌활하고, 즐겁고, 상냥했다가 다음 순간 너무나 매섭고, 반항적이고, 뭔가가 - 그건 증오였을까?- 넘쳐났다.

 

 

고전 추리소설답게 초반부는 뭔가 엉켜 있는 기분으로 읽힌다.

밀실 살인사건처럼 샤론 저택에서 밤중에 일어난 사건은 저택에 있는 모두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렇게 모두를 한 명씩 의심하다 의외의 범인으로 결론 나는 묘미가 있는 <샤론 저택의 비밀>

 




단서들, 그럴듯한 추리

의심스러워 보이는 사람들.

그래서 간단해 보이는 이야기.

그런데 뒤통수치는 반전.

 

고전 반열에 이른다고 지루하고 재미없을 거라 생각한다면 NO~

독자들이 섣부르게 범할 법한 추리를 완벽하게 비껴 나가는 추리의 묘미!

이런 작가가 있었다는 걸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내친김에 스파이크 트레이시 시리즈 다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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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 - 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다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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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년간 죽 나와 함께 있었다. 내가 짊어지고 있는 내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종종 버겁기도 했지만, 그리하여 나는 나를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데리고 다닌 1년이었다.

 

 

1년간 회사에 나가지 않고 해외에서 살아보는 꿈은 누구나 생각해 보는 꿈일 것이다.

나는 가끔 나를 아는, 내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아 보고 싶었다.

그렇게 새로운 곳에서 내가 아닌 '나'로 살아 보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을 읽으며 그것이 나의 꿈으로 끝난 것에 일종의 안도감이 들었다.

어쩜 내가 그만큼 도전을 두려워하는 나이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1년간 뉴욕으로 연수를 떠난 곽아람 기자의 뉴욕 생활은 낭만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는 뉴욕이라서 모든 게 가능하고, 뉴욕이라서 모든 것이 불편한 곳이었다.

영화에서 보던 뉴욕의 풍경이 세련되고, 자유로워 보였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안전과는 거리가 먼 곳이라는 것도 안다.





곽아람 기자의 글에서 느껴지는 뉴욕은 어떨 땐 새롭고, 어떨 땐 두렵고, 어떨 땐 생각지 못한 변수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미술'이 담겨 있다.

풍경, 그림, 배경, 자연, 건물, 사람, 공간 등에서 느끼고 깨달은 마흔을 앞둔 뉴욕의 이방인의 모습은 그만큼 쓸쓸하면서도 그만큼 당차 보인다.

 

저자의 뉴욕 생활에서 가장 부러웠던 건 미술관이었다.

미술관에서 보는 그림들, 우리에겐 무슨 전시회나 개최되어야 겨우 만날 수 있는 작가들의 그림을 볼 수 있는 환경이 부러웠다.

저자의 많은 사유들이 바로 그 미술관의 그림 앞에서 일어났으니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청강한 알브레이히트 뒤러의 수업 풍경이 너무 부러웠다.

노년의 나이에도 끊임없이 배우려는 그들의 모습이, 나이 불문하고 서로의 생각을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이 누군가의 돈이 가치있게 쓰이는 현장을 보며 우리도 저런 문화를 본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춤은 완벽하게 춰야 하는 게 아니라 즐기는 거라는 걸 알려준 댄스 선생님.

서울에서는 추지 못하는 춤을 뉴욕에서 자유롭게 출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런 환경과 사람들 때문이라는 걸 또 느꼈다.

저자의 뉴욕 생활 곳곳에서 느껴지는 우리와는 다른 방식, 방법들..

우리 사회가 경쟁 일색으로 물들어 있는 시점에서 경쟁의 구도 자체를 다르게 보는 발상은 배우고 싶었다.

 

그녀가 1년간 누렸던 음악회와 발레, 오페라들은 한국에서라면 몇 년이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바쁜 일상과 남의 눈이 걸려서 하지 못했던 것들을 1년간 채우고 온 시간이었다.

더불어 한국에서라면 당하지 않았을 일들도,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도,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이 앞으로 저자의 삶에 어떤 자양분으로 공급될지 모를 일이다.

 

인생을 살면서

전혀 알지 못하는 곳에서의 삶을 살아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 같다.

그곳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 사람들은 어디에서든 살아갈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그런 뜻일 게다.

회복력과 흡수력이 빠른 시기에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나아가라는 뜻.

 

책에 담긴 그림들과 사진들로 눈이 즐거웠다.

나에게도 이런 경험이 주어진다면 나는 어떤 게 살게 될까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1년간 뉴욕 생활이 내게 가져다준 가장 큰 선물은 세상에 다른 방식의 삶이 있으며, 굳이 이 삶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라고. 이 방식의 삶이 잘 풀리지 않는다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다른 방식의 삶을 찾아 떠나면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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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여자들
메리 쿠비카 지음, 신솔잎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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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갇혀 있는 데는 빛이 하나도 없었어. 아주 작은 빛도 없었어. 아무것도 보지 못할 때는 다른 것들을 발휘해 어떻게든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돼." 그렇게 살아남은 거였다. 몸의 다른 감각들과 본능에 의지해 생존하는 법을 배웠다.

 

 

거의 마지막 부분까지 범인을 알 수 없었다.

아주 흉악한 범죄자가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거나 여자와 아이들만 노리는 집단이 납치극을 벌인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읽었다.

그러나 메리 쿠비카는 그렇게 빤한 결과를 독자에게 안겨주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더 소름 끼치고 살벌한 상황을 남겨 주었다.

 

중산층이 모여 사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

그곳에서 11년 전 연속적으로 두 여자 셸비와 메러디스 그리고 한 아이 딜라일라가 실종된다.

그리고 현재의 시간엔 자신의 나이가 얼마인지도 모르는 소녀가 지하실에 감금되어 있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암흑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소녀. 딜라일라.

 

11년 전 사건과 현재의 딜라일라의 상황이 번갈아가며 나온다.

이야기의 시점도 이웃 주민 케이트와 실종자 메러디스 그리고 달라일라와 레오의 시점으로 번갈아 나오기에 집중력을 요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필력이 좋은 작가라 읽기 시작하면 집중력을 흐트러트릴 일이 없다.

 

서로 상관없어 보였던 실종 사건에 접점이 생기는 순간 나는 이 이야기에 대한 생각 자체가 달라졌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선량함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

겉보기에 착하고 선량한 사람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일까?

셀 수 없는 질문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차라리 마구 욕을 해도 아깝지 않은 그런 범죄자를 설정했다면 이렇게 마음이 무겁지 않을 것이다.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면서 독자가 알게 되는 충격은 그 잔상이 오래갈 거 같다.

 

메리 쿠비카는 <디 아더 미세스> 이후 두 번째다.

신선한 플롯 덕에 평범함과 선량함에 대해 생각해 본 시간이었다.

 

나에게도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끊임없이 생각해 보게 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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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욘더
김장환 지음 / 비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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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세상에 나온 이야기지만 지금에서야 온전히 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인 거 같다.

10년 동안 세상은 좀 더 욘더와 가까워지는 시간이었으니까.

 

아내가 죽고 2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겨우 현실로 돌아온 나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아내에게서 이메일을 받는다.

 

여보, 나를 만나려면 이 주소로 들어와.

 

인터뷰어 김홀.

아내 이후가 죽은 이후 아내에게 받은 이메일을 통해 바이앤바이라는 곳을 찾게 된다.

그곳엔 아내 이후의 아바타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아내의 기억을 다운로드 받은 아바타. 처음엔 거부 반응을 보였던 홀이지만 점차 이후의 아바타에 적응해가고 어딘가 아내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던 중 피치라는 아이를 통해 바이앤바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알게 된다.

그들 모두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상실이다.'

죽은 사람을 잊지 못하는 그들에게 바이앤바이는 그 슬픔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는 듯 보였다.

 

현실에선 자살자가 늘어나는 이상한 현상이 계속되고, 홀은 바이앤바이의 이후를 찾아가는 일이 뜸해지던 중 피치가 찾아와 자살할 암시를 준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거기에 가면 누구나 영원히 생을 유지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 그런 건가요?"

 

<굿바이, 욘더>

불사의 세계를 그린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이런 사이버틱한 불사의 세계는 신선함과 동시에 두려움을 준다.

죽음이 온전하지 않은 세계.

기억으로 존재하는 세계.

늙지도, 죽지도, 고통도 없고, 오직 행복만 있는 세계.

인간이 꿈꾸는 세계 같지만 인간이 진정 행복만을 원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이 행복만 있는 곳에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건 왤까?

이후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천국이 되는데 방해가 되는 지나친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면 뭐든지 만족도 쉽게 되죠. 그게 이 욘더에 적용되는 유일한 룰이에요.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만큼 도전도 즐기는 동물이다.

불멸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살다가 불멸의 세상에 들어서면 잠시만 행복할 뿐이다.

영원히 지속되는 행복이란 없다.

행복은 끝없이 그것이 '행복'이었음을 깨닫게 만들어 주는 슬픔과 고통이 존재해야만 빛을 발하는 감정이니까.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곳 욘더.

그러나 무감각한 행복에 질식될 수 있는 곳도 역시 욘더다.

그것을 깨달은 이후와 홀의 선택은 앞으로 이런 세상이 올 때 인간이 어떤 생각을 해봐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거 같다.

 

하긴 여긴 욘더지. 내가 무슨 이야기를 끝까지 쓰든 쓰지 못하든 문제될 게 없다. 굳이 무엇을 성취해야 할 필요가 없으니까. 나는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욘더에서의 일의 의미는 그것을 하면ㅅ 보내는 시간 속에 있었으니까.

 

 

흐름이 멈춘 시간 속에 갇히는 것이 불멸이라면 나는 그런 곳에 가고 싶지 않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서 불멸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욘더를 향해 떠난다.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면서 찾아가는 욘더의 세상.

 

인가의 어리석음을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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