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서점
이비 우즈 지음, 이영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에게나 과거가 있고, 감옥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그 과거 때문에 우리는 진정으로 되고 싶은 인간이 못 되는 거잖아요.



<오펄린>

가짜 이름에 남모르는 임신, 그리고 에밀린 브론테의 발굴된 원고를 가진 1920년대의 그녀.

<마서>

책을 읽듯 사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현실은 남편의 폭력에 길들여 살다 도망친 그녀.

<헨리>

알콜중독자인 아버지의 학대에 시달린 기억을 품고 현재는 에밀리 브론테의 두 번째 원고를 찾아 희귀본 서적계에 이름을 알리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오펄린의 서점을 찾아 헤매는 남자.

세 사람의 시선으로 엮어가는 이 신비한 이야기 속에 빠져 있다 보니 무더위쯤은 쉬이 잊어버렸다.

과거와 현재가 오가며 촘촘하게 엮이는 사람들의 인연.

오펄린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여자들에 대한 인식과 그들의 운명을 쥐고 흔드는 남자들의 횡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분노 게이지를 높인다.

그리고 현재에도 폭력으로 상대의 심신을 망가뜨리는 사람들에게 발목을 잡혀 사는 사람들이 교차되면서 그들의 그늘진 과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겹게 나아가는 사람들의 희망찬 이야기가 마음을 가득 채우는 <사라진 서점>.


처음 읽는 작가 이비 우즈의 <사라진 서점>엔 로맨스와 판타지와 책들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아름다운 하모니를 들려준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는 실존했던 서점과 그곳을 운영했던 실존 인물 실비아를 등장시킴으로써 오펄린의 존재는 현실과 환상 속에 섞여있다. 그래서 오펄린의 운명이 그 시대 여성들의 삶을 대변하는 거 같다.

씨줄과 날줄을 잘 엮어서 상상해 본 적 없는 이야기가 환상인 듯 현실인 듯 독자의 마음을 휘어잡는다.

<길 잃은 곳>을 쓴 사람은, 삶의 모든 시련이 더 큰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열쇠이며, 그 열쇠로 미래를 여느냐 아니면 문에 빗장을 지르느냐는 본인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또 그만큼 특별한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저 깊은 마음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 동안 좋은 일이 생길 거 같은 예감이 들었고 그 예감이 현실이 되는 상황을 겪었다.

마서와 헨리 그리고 오펄린의 인연이 내게도 닿은 것만 같았다.

<사라진 서점>은 이 세계에서 숨어지내는 곳이다.

간절한 누군가가 찾아주기를 바라는 장소.

그 장소를 지키고 가꾸어 나갈 줄 아는 사람과의 인연을 기다리는 장소다.

이 현실에도 그런 장소가 있을 거 같다.

사라진 게 아닌 숨어있는 그 장소가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나에게도 그런 장소가 존재할 것만 같아서 설렘이 생겼다.

무더운 여름

잠 못 드는 나날이 계속되는 이 시기에

잠시 환상과 로맨스와 내가 좋아하는 책들로 가득한 공간이 주는 평온함을 함께 느꼈던 이야기였다.

나만의 <사라진 서점>을 찾는 여정을 계속해야겠다.

언젠가 내가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곳'을 찾게 되는 날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있을 테니...

"누구한테 인정받으려고? 남들이 만들어놓은 인생에 갇혀 사는 인간들? 그 인간들은 자네도 자기들처럼 갇혀버렸으면 싶은 거야. 자기들만 공허감에 사무치면 억울하거든. 조심해 마서, 계속 부르주아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간 자네만의 가치를 못 보고 말 테니까."

보든 부인의 준엄한 말이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말 같다.

나만의 가치를 알아내는 것이 바로 '삶'이자 '인생의 진실'이 아닐까.

지금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걷는 망자, ‘괴민연’에서의 기록과 추리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포, 호러 하면 피 터지는 이야기와 잔혹한 이야기가 기본으로 장착된다.

<걷는 망자>엔 그런 대목이 한 부분 있다. <배를 가르는 호귀와 작아지는 두꺼비집>

소제목에 나와있듯이 곰을 잡으려고 설치해 놓은 철창에 아이의 배가 갈린 채 발견되는 밀실 살인이 가장 잔인하다고 해야겠다.

그나마도 이 이야기가 페로 동화와 그림 동화에서 비롯되었다는 해석 때문에 잔혹함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 씻기는 기분이 들었다.



미쓰다 신조를 각인한 작품은 <검은 얼굴의 여우>였다.

역사물 같은 민속학적인 호러의 이야기가 참 진중해서 미쓰다 신조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미쓰다 신조는 다양한 필력을 가졌는데 바로 <걷는 망자>에 담긴 사소한 듯 보이는 이야기들을 사소하지 않게 만드는 솜씨가 있다.

관에서 기어 나온 시신

망자가 다니는 길에서 본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를 사람

번듯해 보이는데 가까이 가서 보면 모든 게 작게 지어진 집

여러 해가 지나서 더 작아진 집

그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마치 조커처럼 입이 찢어진 귀신 쿠치바온나

머리 없이 다가오는 여자

자시키 할멈

다섯 편에 담긴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풀이를 하려는 덴큐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다.

잔뜩 호기심에 읽은 괴이한 이야기를 현실 트릭처럼 쳐내는 덴큐의 추리는 그래서 이 이야기를 괴이 하지 않게 만든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미쓰다 신조를 만나는 첫 독자가 읽기에 가장 좋은 책이라고 했나 보다.

도조 겐야로 인해 무묘대학에 괴이 민속학 연구실이 생기고

그곳 지박령 같은 덴큐 마히토에게 도조 겐야가 보낸 편지를 배달하면서 괴이한 이야기를 같이 접하는 도쇼 아이.

아이는 걷는 망자를 직접 목격한 목격자이기도 하다.

아이와 덴큐의 티키타카도 재밌고 마지막에 그들의 미래를 언급한 작가의 의도도 즐겁다.

일본엔 괴담이 참 많은데 작년 여름에 미미여사의 괴담집을 읽으며 접해서인지 이제는 좀 익숙해졌다.

미쓰다 신조의 <우중 괴담>과 <괴담의 집>을 짬짬이 읽는 중인데 그 책들과는 묘하게 결이 달라서 <걷는 망자>는 다른 사람이 쓴 느낌도 든다.

다양한 색을 지닌 미쓰다 신조.

그가 풀어내는 괴이한 이야기와 그 이야기의 진실을 추리하는 또 다른 미쓰다 신조의 트릭이 즐거운 작품이다.

괴담도 덴큐처럼 해석하면 무섭지 않구나를 생각하면서도 괴담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파괴하는 거 같아서 덴큐의 추리가 빗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다.

괴담을 무서워하면서도 괴담을 수집하는 묘한 인물 덴큐와 겐야.

두 사람 같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어설픈 추리도 해봤는데 아니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체온증 에를렌뒤르 형사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 지음, 김이선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를렌뒤르는 왜 이 여자가, 그녀의 아버지 또한 차가운 최후를 맞이한 호숫가에서 잔인하고 외로운 운명을 맞이해야 했는지 까닭을 알고 싶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한 사람의 운명을, 그들의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두 문장이 <저체온증>을 관통하는 문장이라 생각한다.

마리아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마리아와 엄마의 돈독한 관계를 표현하며 모녀가 빠져있던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과 두 사람의 결속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을 묶어놓고 있는 과거의 사건.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던 사람의 죽음이 두 모녀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고, 어머니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한 마리아는 아버지의 죽음이 깃든 별장에서 목을 맨다.

자살로 마무리될 사건이지만 마리아의 친구의 제보로 에를렌뒤르는 이 자살 사건에 묘한 의문을 품게 되고, 동료들에게 말하지 않은 채 혼자서 사건을 수사한다.

<저체온증>엔 사고사, 자살, 실종자가 나온다. 그들은 모두 얼음과 관계가 있다.

마리아의 이야기와 에를렌뒤르의 과거가 맞물리면서 얼음 아래에 숨어있던 이야기들이 삐져나온다.

삼십 년 가까이 실종 상태였던 두 사람.

사고사로 묻힌 타살.

눈 폭풍이 몰아치던 날 어린 동생의 손을 놓쳐버렸던 형의 오래 묵은 자책감들이 모여 촘촘한 이야기를 엮어간다.



"자살 역시 실종 사건이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에를렌뒤르가 멋있다.

누가 뭐래도 의심이 풀리기까지 최선을 다하는 그의 끈기와 인내가 존경스럽다.

그의 묵묵함이

그의 치밀함이

그의 인내가 돋보이는 작품 <저체온증>

이 이야기에서는 해묵은 과거들이 발목 잡고 있는 현재를 보여준다.

마리아도 에를렌뒤르도 실종된 자식을 품고 사는 부모들도 모두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다.

에를렌뒤르처럼 그의 딸 역시 아버지가 없었던 과거를 되돌려 보려 애쓰고 있다.

차가운 얼음 아래 묻혔던 과거들이 스멀스멀 녹아내리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렇게 스멀스멀 과거의 상처들도 녹아내리는 이야기였다.

범죄소설이자 스릴러인 에를렌뒤르 시리즈는 그냥 범죄소설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아까운 시리즈다.

아이슬란드의 독특함이 양념처럼 뿌려진 이 시리즈는 다른 형사물에서 느껴보지 못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에를렌뒤르는 마르틴 베크와 발란데르를 합쳐놓은 캐릭터 같다.

베크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사건을 수사하다 한순간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찾아내고

발란데르처럼 가정사가 어렵지만 묵묵하게 자기 일에서 벗어나지 않는 일중독자이기도 하다.



우연은 의심 없는 개개인의 삶 속에 교묘하게 심길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명칭이야 여러 가지 붙을 수 있겠지만, 에를렌뒤르가 몸담은 곳에서 그런 우연을 칭하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범죄.




하나의 사건을 파고파고 또 파내어 몇 십년전의 목격자를 만나게 되고 그로인해 두 가지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는 <저체온증>

화려한 액션이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스릴과 반전이 없어도 이 이야기는 자체로 아주 훌륭한 문학작품 같다.

형사물과 범죄물에 철학이 있다면

그건 바로 에를렌뒤르 그 자체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덤의 침묵 에를렌뒤르 형사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 지음, 고정아 옮김 / 엘릭시르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그런 사람들이 멋대로 행동하며 살 수 있는 거죠? 어쩌다가 그런 사람이 태어나는 건가요? 뭐가 그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거죠? 왜 그 사람은 그렇게 많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짐승처럼 행동하나요? 아이들을 때리고 욕하고, 죽고 싶을 만큼 나를 두드려 패고...."



생일파티에 동생을 데리러 간 의대생은 그 집 아기가 입에 물고 있는 것이 장난감이 아니라 사람의 뼈라는 걸 알아본다.

생일을 맞은 아이가 근처 공사장에서 돌인 줄 알고 주워온 건 사람의 뼈였다.

에를렌뒤르가 현장에 출동하고, 휴가를 간 법의학자 대신 고고학자가 혹시 유물일지도 모를 뼈를 발굴한다.

점점 윤곽을 드러내는 뼈는 한 쪽 손을 위로 치켜든 모습었다.

70~80년 되어 보이는 유골이 왜 거기 묻혀있는지, 사인이 뭔지, 유골은 과연 누구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과거를 추적하는 형사들.

에를렌뒤르 형사는 백골로 발견된 유골이 생매장 당한 거라는 걸 직감으로 느낀다.

그래서 그 사건을 해결하고 싶고, 부하들은 오래된 사건이니 유골을 발굴하는 걸로 사건을 종결하고 싶어 한다.

그 와중에 임신 중이었던 딸에게 '살려달라'는 전화가 오고 딸을 찾아 나선 에를렌뒤르는 조산원 근처에서 피에 젖은 딸을 찾지만 아기는 죽고 딸은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 복잡한 현재의 이야기와 함께 과거 1940년대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된다.

과거의 이야기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한 가족이 등장한다.

처음엔 그 한 번의 폭력이 실수였을 거라 생각하는 여자가 있다.

남편이 홧김에 그런 거라고.. 분명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거라고.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폭력의 수위는 점점 심화되어 가고, 커가는 아들은 엄마를 지키고 싶어 하고, 몸이 불편한 딸은 말 한마디 못하고 오직 의붓아버지의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버지가 없을 때는 단란한 가정이지만 아버지만 등장하면 모두가 불행했던 한 가족의 폭력의 역사가 읽는 내내 나를 괴롭힌다.

"가정 폭력이란 영혼 살해에 붙는 편리한 이름이죠. 그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순화시킨 용어예요. 평생토록 끝없는 공포 속에 사는 느낌을 아시나요?"



<무덤의 침묵>은 2차 대전이 한창이던 시절의 이야기와 현재 에를렌뒤르에게 닥친 시련과 과거 에를렌뒤르가 잊지 못하는 동생의 죽음까지 그동안 에를렌뒤르의 감춰졌던 고통들이 유골 발굴처럼 천천히 고통스럽게 밝혀진다.

폭력과 욕설이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그려지고, 과거를 파헤치는 형사들의 끈질김과 에를렌뒤르의 과거사와 현재까지가 촘촘하게 맞물려 이어진다.

인드리다손의 작품을 3번째 읽는 중인데 이 작가의 이야기를 꾸려가는 솜씨가 너무 단단하고 촘촘해서 정말 푹 빠져서 읽게 된다.

책으로 읽었지만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다.

아이슬란드와 우리도 가정사에 관해서는 대하는 시선이 비슷하구나.

가정 폭력은 영혼 살해라는 미켈리나의 말이 마음에 깊이 박힌다.

'구타는 결국 사디즘으로 변한다'는 말도 마음에 박힌다.

그 모든 고통의 끝이 예상치를 넘는 결말이기에 어떤 작가가 이야기를 이렇게 잔혹하면서도 모든 인물들이 다 안쓰럽게 느껴지게 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범죄 수사물이지만 가볍지 않고, 액션이 하나도 없지만 긴장되고, 이야기를 읽어갈수록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기분을 느끼게 되는 인드리다손의 작품들이 모두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무덤의 침묵>은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엔 영림카디널에서 출간되었다 절판되고 엘릭시르에서 재출간되었다.

이 두 출판사가 인드리다손의 에를렌뒤르 형사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는데 인물들과 작가의 이름이 약씩이 다르게 표기되어서 아쉽니다.

출판사가 다르고 번역자가 다르더라도 인물들과 작가의 이름은 통일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영림카디널에서 개정판으로 나온 <저주받은 피>와 <목소리>를 읽었는데 <무덤의 침묵>은 두 작품 사이에 낀 작품이다.

현재 출간된 책 중에 <저체온증> 한 권이 남아있다.

북유럽 스릴러를 좋아하는데 그 북유럽 작품들 보다 한층 깊은 어둠을 담고 있는 아이슬란드의 인드리다손 작가의 작품들은 아주 인상적이다.

뒤늦게 만났지만 인생의 가장 깊고, 고통스럽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들 앞에서 인간의 깊은 민낯을 만난 기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 활자중독자 김미옥의 읽기, 쓰기의 감각
김미옥 지음 / 파람북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책을 읽었지만, 문체나 가독성에 치중해서 정작 작가를 읽지 못했다. 작가가 작품에 몰입했던 것처럼 독자에게도 인내심이 필요했다. 작가가 간절하게 말하려 하는 목소리를 찾아내는 것도 독자의 몫이다.

나는 독자도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긴 지 6년째다.

요즘 들어 예전의 감각을 자꾸 잃어 가는 거 같아서 스스로 반성하는 중에 이 책을 만났다.

책을 읽고 그 책에서 느낀 것들을 잡아내어 나만의 감각으로 그것을 설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계속 되풀이되는 것은 매너리즘에 빠지는 지름길이다.

내가 쓴 서평들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고, 이쯤에서 어떤 변화가 필요했다.

이만큼 썼으면 나만의 '무엇'이 있어야 했는데 그게 사라지고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그만해야 하나를 고심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가끔 첫 문장은 첫사랑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첫사랑이 각인되듯 첫 문장은 소설을 지배한다.

누군가에게 평생 잊히지 않는 사람도 괜찮은 생을 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저자 김미옥은 평생 책을 읽은 분이다.

작가가 되기를 꿈꾸었지만 누군가의 작품을 읽고 그것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신선했다.

책에 대한 언급 없이 책을 얘기하는 방식이.

책을 언급하면서 책이 아닌 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그녀가 책에서 찾아내는 낯선 감각이 내게 닿는 느낌이 좋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기>라는 책의 서평을 읽으며 이 책을 읽어 보지 못한 나는 그래도 그녀가 느끼는 감정이 이해가 되었다.

그녀의 설명엔 군더더기가 없고, 젠체하지 않으며 간결한 맛이 있다.

책을 통해 또 다른 책으로 이어지면서 독자의 시점에서 하나의 관문을 더 넓힌 기분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는 이미 나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바로

충분히 음미하지 못했다. 이다.

책을 읽고, 음미하고, 정리가 된 다음 글을 써야 하는데 그 중간 과정을 삭제하고 바로 리뷰를 썼으니 책에 대한 정리가 이루어질 리 만무했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는 것은 남들이 알아낸 거 외에 나만이 느낀 것을 다듬어 내놔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잊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김미옥 선생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김미옥 선생만의 그 무엇이 담긴 서평은 책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책에 담긴 김미옥 선생의 이야기는 또 다른 책들을 내 앞에 가져다 놨지만 그것이 어렵게 느껴지는 숙제가 아님을 안다.

다양한 읽기를 통해서 써 내려간 글은 그래서 잡학 상식 같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저자의 글이 늙어가는 뇌에 자꾸 주름을 만들어 주는 거 같아서 무더위에도 기운이 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