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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 - 저항의 문장가 윌리엄 해즐릿 에세이의 정수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10월
평점 :

"상대방의 진짜 속마음을 알고 싶다면 그의 얼굴을 보라. 말은 얼마든지 꾸밀 수 있지만, 표정은 쉽게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라는 책의 리뷰들이 좋아서 이 작가를 찜해두었다.
1800년대의 사람인데 그가 하는 말들이 모두 익숙해서 그의 생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는지를 알 거 같다.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다, 나모 모르게 찔리는 기분이었다가, 맞아! 맞아! 하며 무릎을 쳤다.
시대가 다르니 생각도 고루하고, 글도 장황할 거라는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시대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예리한 글들이 그야말로 수더분하게 펼쳐졌다.
그의 생각은 틀에 찍어 낸 석고상과 같다. 속은 텅 비고, 겉은 쉽게 부서진다. 그 생각은 깨지기 쉽지만 그것을 바꾸게 하기란 불가능하다.
말하는 시간은 많지만 생각할 의무는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방송에 정말 많이 나온다.
그래서 TV를 바보상자라고 하는가 보다.
특히나 정치 패널들의 무논리는 정말 귀가 따갑다.
비평가에 대한 그의 직설화법을 읽는 동안 통쾌했다.
내가 표현하지 못하고 생각만 하고 있던 것들을 정의 내려준다.
그러나 날이 서 있지 않다. 그래서 쉽게 받아들이고, 깊게 생각하게 된다.
쉬운 언어와 쉬운 예로 그는 답답한 이들의 마음을 통쾌함으로 시원하게 해준다.

온화함, 또는 흔히 그렇게 여겨지는 성품은 모든 덕목 가운데 가장 이기적인 것이다.
온화함의 색다른 정의 앞에서 쓰러질 거 같다.
여태 한 번도 온화한 사람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윌리엄 해즐릿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토록 높은 혜안을 가졌을까?
온화함에 대한 그의 생각을 반박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다.
그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에 그들은 온화하다.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떤 부정도, 어떤 더러운 거래도, 어떤 권력자의 행동 앞에서도 기꺼이 옹호하는 자들이 온화함의 가면을 쓰고 있다.
온화한 사람을 기품 있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제 나에게 온화함의 정의는 반대가 되었다.
온화한 성품의 왕이 위대한 폭군이 될 수 있다는 대목 앞에서 뿜을뻔했다.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두기에 혼자 잘 먹고 잘 자면 우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를 불편하게 만들 수 없다는 그 사실을 지난 3년간 목격했기에...

책은 기억을 되살리고, 감각을 정제하며,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한다.
그가 병상에서 쓴 에세이 <병상의 풍경>에서는 고통 속에서 정신이 들 때마다 책 속으로 스며들었던 그의 마지막이 그려진다.
책을 통해 잠시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었던 그에게 독서는 다른 세상과의 소통과 다름없다.
이 글을 쓴 다음 달에 그는 영원의 길을 떠났다.
그에게도 청춘이 있었고 그 청춘의 시간에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그의 사유를 읽으며 시들어 가는 청춘 끝자락에서 그의 글을 음미해 본다.
내 젊은 날의 치기가 그의 글 속에 있고, 그것을 떠올리는 지금의 나도 그의 글 속에 있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라는 노랫말처럼
우리는 청춘의 시대에 알지 못했던 걸 나이 들어가며 알게 된다.
그래서 그 청춘은 불덩어리 같고, 해일과도 같은 힘이 있다는 걸 이젠 안다.
다만 그 시절에 그것을 몰랐던 내가 안타깝다고 생각했었는데 윌리엄 해즐릿의 글을 읽으며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기 마련이니까...
명문장이란
쉽고, 간단한 말로 삶의 정의를 말해주는 문장이다.
윌리엄 해즐릿은 명문장을 잘 쓰는 작가였다.
그의 글을 일찍 접하고 느낀다면 인생을 좀 더 다르게 살펴볼지 모른다.
그래서 그의 글이 청소년 필독서가 되었으면 좋겠다.
시험지옥에 빠진 그들의 퍽퍽한 삶에 기름칠이 될 글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