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변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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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무언가가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분명히 예전의 내가 아니다.

지금의 나는 대체 누구인가?




준은 소심하고, 나서지 않는 조용한 성격의 평범한 직장인이다.

부동산 중개사무소에 집을 알아보러 갔다가 강도를 만나 어린 여자아이를 구하려다 머리에 총을 맞는다.

병원에서 깨어난 준은 점점 회복되어 가는 와중에 자신이 뇌 이식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된다.


죽을 목숨을 극비리에 진행된 뇌 이식으로 살려낸 도겐 박사와 다치바나와 와카오 두 조수가 그를 보살핀다.

회복이 잘 되어 일상으로 돌아온 준.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과격해진 자신의 성격으로 회사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메구미에게도 예전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내 마음은 변하고 있다. 이건 분명하다.

메구미, 너를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져간다...



자신이 변하고 있다고 느낀 준은 뇌 이식을 할 때 자신에게 뇌를 기증해준 기증자의 아버지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곳에서 알게 된 기증자의 성격은 예전의 준과 거의 비슷한 성격이었다.

도대체 이 알 수 없는 성격변화와 과격한 공격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뇌 이식.

간이나 심장과 같이 뇌도 이식할 수 있다면 과연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뇌를 이식받은 사람?

뇌를 기증한 사람?


다른 사람의 뇌를 기증받아 목숨은 살았지만 점점 기증자의 성격과 행동을 갖게 되는 준.

점점 자신을 잃어버리는 준은 자신이 다중인격을 지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회사에서도 동료들의 무능함을 비웃고, 싸움이라도 나면 죽일 듯이 덤비고, 사소한 시비에서 살의를 느끼는 자신을 점점 제어하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운 준은 메구미의 사랑마저도 거절한다.


이 뇌 이식에는 보이지 않는 검은 손들이 있다.

준의 존재를 감추고 그를 실험실의 도구로 생각하는 그들은 준의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받고 그를 죽이려 한다.

실패한 실험용 쥐는 살처분하는 게 그들에겐 당연한 이야기다.


자신이 변하고 있다고 말해도 믿지 않는 도겐 박사.

그의 변화를 눈치채고 떠난 메구미.

그를 도와주는 척 접근해서 그에게서 정보를 빼가려는 다치바나.

준은 결국 자신에게 뇌를 기증해준 사람의 정체를 파악하게 되고, 자신을 지배하려는 그와 담판을 짓기로 한다.


획기적인 기술의 성공은 좋았지만, 그에 걸맞은 윤리의식과 사후 방비가 없었던 것에서 참극이 일어난다.

뇌는 생각을 관장하는 곳이다.

우리 몸 여기저기에 이러이러해라라고 명령을 내리는 곳이다.

그래서 단순 기능만 하는 콩팥이나 간과는 다르다.


도겐 박사는 자신의 욕심을 위해 가장 중요시해야 할 일을 등한시했다.

그로 인해 준의 목숨은 살렸지만 결과적으로 더 많은 목숨을 잃게 만들었다.

의학이 점점 발달하면서 이 뇌 이식 이야기는 어쩜 조만간 이루어질 근미래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이미 어딘가에서는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도 모른다.


근데 도겐처럼 생각하는 의사 때문에 준과 같은 희생자가 생긴다면 이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기증자의 뇌가 이식자의 뇌를 지배할 수 있다는 이 이야기는 섬뜩하다.

하이드와 헐크처럼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면 본래의 자신은 사라지고 기증자의 살의만 남는 준.

자신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준은 살인자의 인격과 마지막 싸움을 벌인다.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노화와 죽음을 지연시킬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단지 젊게 오래 살기 위해서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학의 발전이라는 명분하에.


도겐 박사가 저지른 일은 분명 그런 문제의식 없이 자신의 연구성과만을 생각하며 일처리를 했기에 벌어진 참상이었다.

이야기처럼 뇌 이식도 가능한 날이 올지도 모른다.

과연. 뇌라는 복잡한 기능을 가진 조직을 그렇게 떼어서 이어 붙여도 되는 걸까?

인간의 모든 기능을 담당하는 뇌가 다른 뇌와 접합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이 이야기처럼 더 강하고 더 과격한 성질을 가진 뇌가 득세한다면 한 사람 안에 두 사람이 존재할 수도 있는 걸까?


생각할수록 섬뜩한 소재다.

준의 선택만이 답이라면 뇌 이식에 관한 연구가 발전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생긴다.

1991년에 발표한 작품이라니 게이고의 앞서가는 상상력이 더 돋보인다.


노화를 막고

생명을 연장시키는 일이 결코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지는 않는 거 같다.

자연 그대로. 그렇게 살고 싶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결국 비참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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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웨이 다운
제이슨 레이놀즈 지음, 황석희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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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은 모든 사람의

귀와 눈을 멀게 한다.

특히 누군가를

죽게 했을 땐.

 

 

 

 

형이 살해당했다.

나는 울지 않는다.

우는 건 룰에 맞지 않으니까.

대신 나는 형이 숨겨둔 총을 꺼내 베개 밑에 넣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받은 대로 갚아주는 것이 이 동네의 룰이다.

나는 누가 형을 죽였는지 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익숙지 않은 상황에 당황했다.

완벽한 스릴러이거나 범죄소설을 기대했던 나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분명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소설처럼 보이지 않는다.

시처럼, 음악처럼, 광고 카피처럼 보였다.

 

 

이게 무슨 형식이지?라고 되뇌며 읽어가는 동안 점점 가슴이 묵직해진다.

최소한의 서사와 최소한의 글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그만큼 강렬하고, 그만큼 애절하다.

 

 

형이 숨겨둔 총을 허리춤에 감추고 윌은 엘리베이터를 탄다.

엘리베이터가 L 층에 닿을 때까지의 시간은 60초.

그 60초 동안 한 층 한 층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한 명씩 사람을 태운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사라져간 사람들이 윌에게 말을 건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 거리.

그 거리에서 사라져간 사람들이 층층이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 한 사람 한 사람씩 탄다.

어릴 적 친구, 동네 형, 삼촌, 아빠. 그리고... 숀.

윌의 형 숀.

어제 총에 맞은 숀.

가슴이 뻥 뚫린 숀은 윌을 보고 운다.

 

 

그들은 내리 그렇게 살아왔다.

서로의 가슴에 구멍을 내며.

때로는 잘 못된 구멍이 새로운 복수를 낳기도 했다.

경찰도 법도 그들의 방식이 아니다.

그들에겐 그들만의 방식이 있을 뿐.

 

 

윌도 그 길을 가려 한다.

내 형을 쏜 자는 형의 친구였다.

그저 갱단에 들어가기 위해 자기 친구를 쏘았다.

형은 단지 비누를 사러 갔을 뿐이었다.

가려움에 긁어대서 짓물러진 엄마의 손에 그 비누가 약이었기 때문에.

 

 

사소한 일들이 운명을 갈라 놓는다.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들은 윌에게 모두 무언가를 보여준다.

윌이 지금 가고자 하는 길을 그들은 이미 지나갔다.

 

 

"안 와?"

 

 

친숙한 이 말이 가슴을 친다.

내가 생각하는 그게 아니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윌이 윌의 길을 갔기를.

윌이 가슴에 구멍 난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기를.

 

 

하지만

끝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짐작할 뿐이다.

 

 

작가는 우리가 생각하게 내버려 두었다.

스.스.로. 생각이라는 걸 하도록 두었다.

 

 

누군가는 비난을 감수하며 연결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일생을 꼬리처럼 따라다니는 손가락질이라도 분명 정의롭지 못한 것이니 이겨내야 한다.

악순환의 고리는 용기 있는 자만이 끊어낼 수 있다.

 

 

윌에게 그 용기가 생겼기를 바란다.

 

 

강렬함이 내 안으로 쏟아진다.

시로 쓴 소설은 더 많은 감정을 가지게 했다.

 

 

이 새로움을 새해에 알리고 싶었다.

앉은 자리에서 30분도 안되는 시간에 읽어 버릴 이야기지만.

절대 그렇게 읽고 끝내지지 않는 이야기다.

 

 

어두운 거리의 희망은 스스로 가져와야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은 선택의 이야기다.

나에게 주어진 길에서 빤한 길을 갈 것인지, 다른 길을 갈 것인지.

어린 소년도 선택해야 하는 길이 있다.

 

 

어려운 고비에 설 때마다

이 이야기를 떠올릴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같이 있었지만 같이 있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해

그들의 무고한 죽음에 대해

그리고 같은 길을 갈 거라 믿었던 어린 소년의 선택에 대해.

 

 

아픈 영화 한 편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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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 - 상처 입은 뇌가 세상을 보는 법
엘리에저 J. 스턴버그 지음, 조성숙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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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시각은 뇌가 바깥세상을 고도로 가공하여 처리한 '표현'이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시각을 통해 보는 모든 것들을 비디오카메라처럼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 설계된 시각계는 숨어있는 표시까지도 보게 만든다.

우리의 뇌가 가진 무궁무진함에 대해 들어봤다.

우리가 일생 동안 사용하는 뇌는 전체의 기능을 100분의 1도 쓰지 못한다고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뇌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익숙한 길을 운전할 때는 거의 좀비가 되어 운전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른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무의식은 사물을 볼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머릿속으로 근육을 연습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잘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예전에 읽었던 시크릿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그 책의 요지는 무언가 원하면 우주의 좋은 기운을 끌어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고 했다.

어쩜 그것은 우리의 뇌를 평범한 사람 보다 조금 더 활용한 생각이 아니었을까?

 

저자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이기도 하다.

이 책에 예를 들어 언급된 환자들의 이야기는 마치 환상특급이라는 드라마를 보는 거 같다.

보이지 않지만 장애물을 피해 가는 사람도 있고, 시력을 잃었음에도 시력을 잃었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외계인에게 당한 적이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한쪽 눈을 실명했음에도 무의식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뇌가 편집하는 기억은 과연 온전한 것일까?

같은 일을 저마다 다르게 기억하는 것도 각자의 뇌가 각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니 기억이라는 것도 믿을 수가 없는 거 같다.

 

읽을수록 뇌에 대해 알아가면서 우리가 우리의 뇌를 100프로 사용하게 된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하게 될까?라는 질문이 계속된다.

초능력이나 영적인 능력도 결국 뇌의 어느 부분을 잘 사용했기 때문이거나, 어쩜 어느 부분의 기능을 상실했기에 생긴 현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과 움직임은 뇌에서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있다. 그러므로 심상 훈련은 단순한 상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한 연습 시뮬레이션이 될 수 있다.

 

심상 훈련으로 다이어트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눈 꼭 감고 집중해서 열심히 달리는 내 모습을 매일 꾸준히 그려본다.

몸에서 열기가 퍼지고, 땀이 흐르고, 심장이 무섭게 뛴다.

나도 모르게 헉헉거리며 마라톤을 뛰는 선수들 틈에 끼어서 같이 뛴다고 상상한다.

나의 이 심상 다이어트 훈련은 효과를 볼 것인가!

 

굉장히 어려울 거 같은 느낌을 받은 책이었는데 마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었을 때의 기분과 같다.

유익했고, 신기했으며, 주인 잘 못 만나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자꾸 퇴화해 가는 나의 뇌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적어도 뇌가 어떻게 돌아간다는 걸 조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좋았던 책이다.

사례들을 읽으며 주위에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는 분들이 있다면 어쩌면 뇌에 관련된 질환일 수 있거나 시각과 관계된 뇌의 회로에 문제가 생긴 걸 수도 있음으로 병원으로 모셔야겠다는 다짐도 들었다.

물론 책 한 권으로 섣부른 판단은 금해야겠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잘 알아채지 못했을 상황들에 대해 배운 느낌이 들어서 내겐 유익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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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동화전집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11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한스 테그너 그림,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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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지성에서 안데르센의 원작 동화 168편을 국내 최초 완역본으로 출간하였다.

 

내가 기억하는 동화와 이 책에 실린 동화 사이에는 많은 다른 점이 있었다.

어린이를 위해 각색된 동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슬픔과 고통과 고뇌와 좌절.

그러나 그것을 극복해가면서 깨닫게 되는 인간사의 경이로움이 짤막하게도 길게도 담겨있다.

 

 

내 기억 속 인어공주의 최후가 허무하게 끝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단지 사랑에만 초점을 맞춘 이야기가 난무했지만 인간이 되고자 했던 인어 공주의 소망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사랑을 받는 착한 아이를 찾아낼 때마다 우리의 시험 기간이 줄어들지. 삼백 년 중에 1년이 줄어든단다.

하지만 나쁜 아이를 보게 되면 우리는 슬픔의 눈물을 흘려야 하고 그때마다 시험기간이 하루씩 늘어나게 되지.

 

 

이 대목을 읽으며 물방울이 된 인어공주가 착한 아이들을 많이 만나기를 기원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도 이렇게 원작을 대하고 나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이 책의 첫 번째 이야기가 부싯깃 통인데 내용은 거의 기억이 안 났지만 커다란 눈을 부라리던 그림 속 개들의 모습이 뇌리에 남아있었다.

 

꺼꾸리와 장다리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장다리 클라우스와 꺼꾸리 클라우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누가 더 나쁜 건지 알 수 없었다.

남이 잘 되는 걸 배 아파했던 장다리인지 운이 좋았던 꺼꾸리였는지 읽고 나서 꺼꾸리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동정심과 애정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어른이 되면 옳고 그름에 대한 명확성이 사라지는가 보다.

그저 중간에 걸터 앉아서 장단점을 재단해 보며 비등하게 맞춰가는 시선을 가지게 된 나를 알아낸 느낌이었다.

 

 

 

 

아름다운 삽화들이 페이지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세련된 그림들이 동화를 좀 더 업그레이드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죽은 사람은 절대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해를 끼치는 사람은 오히려 살아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다가다 만나게 되는 뼈 때리는 문장들 앞에서 숙연해지기도 한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으며 때로는 사소한 실수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 때가 있는 법이다. 게르다는 비로소 꽃밭에 장미꽃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 깨달음으로 인해 게르다는 시간을 축내고 있었던 마녀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리의 인생도 가끔 이런 사소함이 계기가 되어 좋아지거나 나빠지기 시작한다.

 

은퇴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낡은 가로등의 모습은 은퇴자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엿본 느낌이 든다.

오랫동안 해왔던 일에서 은퇴했지만 그래도 쓸모가 있는 무언가가 되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화려하게 부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져서 쌉싸름한 마음이 들었다.

 

 

천 년 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참으로 운이 좋아. 백 년 전에 태어난 사람들도 나보다는 운이 좋지. 그때만 해도 쓸 만한 것이 남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쓸만한 것은 모두 다 쓰여져 버렸으니 마땅한 소재가 없는 것이 당연하지.

 

 

글로 밥벌이를 하고 싶은 청년의 이 푸념 앞에서 지혜로운 할머니는 자신의 지혜를 조금 나누어 준다.

하지만 상상력이 빈곤한 청년에겐 무용지물이다.

남다르게 보고, 남다르게 느끼고, 남다르게 생각하는 힘을 기르라는 안데르센의 가르침이 담겨있는 글이다.

세상엔 무궁무진하게 만들 수 있는 이야기들이 널려있다.

다만 그것을 그저 흘려보내 버리고 그저 자극만 찾아다니느라 소중한 이야기를 놓치는 사람들이 많을 뿐이다.

이 동화전집에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있다.

우리가 흘려 버리고 만 소소한 것들이 안데르센의 손끝에서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그것을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일깨워주고 있다.

꾸며 낼 수 있는 것.

이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가 사실은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을 부여해 주고 있었다.

 

 

2019년 12월 31일 마지막 날에 나는 안데르센을 통해서 앞으로의 날들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를 배웠다.

상상력 있는 인간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아야겠다.

인생을 즐기며 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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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록은 내 이름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하워드 제이컵슨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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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 투데이에서 함께 읽는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두 번째는 샤일록은 내 이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하워드 제이컵슨이 다시 썼다.

하워드 제이컵슨은 2010년 영국 남자의 문제로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유머러스한 소설이 맨부커상을 받은 건 처음이란다.

이 작가는 영국에서 블랙 유머로 인기가 있는가 보다.

이 샤일록은 내 이름에서도 그의 진가가 발휘되었다고 칭찬이 자자했지만.

영국식 유머를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 책을 읽는데 아주 힘이 들었다.


기승전결 유대인!


정말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유대인의 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예술품을 수집하는 박애주의자인 사이먼 스트롤로비치에겐 뇌중풍에 걸린 아내와 유대인이 아닌 남자와 바람나 집을 나가버린 딸 비아트리스가 있다.

어머니의 기일을 맞아 무덤을 찾은 그의 눈에 샤일록이 보인다.

그는 아내의 무덤 앞에서 아내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싶었던 스트롤로비치는 샤일록을 집으로 초대한다.

거절하지 않고 방문한 샤일록과 스트롤로비치의 이야기는 유대인을 위한, 유대인에 대한, 유대인적인 이야기였다.

영국식 유머와 유대인에 대한 걸 모르고서는 이 대화의 참 의미를 알 수 없으리.


특히 유대인 근성은 집 안에 숙식하는 정신착란이면서 동시에 평판 나쁜 기숙자처럼 그들의 평온한 가정생활을 뒤흔들어 놓았다.



샤일록의 딸 제시카도 엄마의 유품인 반지를 훔쳐 달아났다.

상당히 비슷한 상황에 놓인 두 유대인 남자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끝이 없다.


이웃에 사는 플루러벨은 자살한 아버지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는다.

그곳에서 그녀는 TV 쇼를 하면서 자유분방하게 살아간다.

그녀의 친구이자 게이인 당통은 그곳에 비아트리스를 데려온다.

행위예술가로 소개된 비아트리스는 그곳에서 축구선수 그래턴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스트롤로비치는 그래턴에게 자기 딸과 결혼하려면 할례를 하라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들은 도망친다.

두 연인의 사랑의 도피처가 되어준 플루러벨과 당통은 그랜턴이 비스트리스가 미성년일 때 그녀와 잠자리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걸로 스트롤로비치는 그들을 협박하고 당통은 두 사람을 돌아오게 하지 못하면 자신이 할례를 받겠다고 다짐한다.


그들은 문화적 암시를 파악하지 못할 거야. 기억해 둬. 너의 지능은 5,000년 된 거지만 그들은 겨우 어제 태어났어. 그들은 한 번에 한 가지밖에 생각하지 못해. 너는 열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할 수 있어.



버지에게 지겹도록 들은 얘기지만 알 수 없었던 그 차이를 비아트리스는 도망가서 알게 된다.

게다가 그는 비아트 리스보다 2배나 많은 나이였다.

베네치아에서 두 연인의 사이는 시간이 갈수록 삐그덕 거린다.

무엇 하나 공통점이 없었다. 두 사람은.


베니스의 상인을 꽤 오래전에 읽어서 내용이 잘 생각이 안 났는데 다행히 뒤쪽에 요약본이 있어서 책을 읽기 전에 읽었다.

그것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고 말해둔다.

모든 설정이 다르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심장 근처의 살을 1파운드 도려낸다는 원본의 설정이 유대인의 할례의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원작의 생각지도 못한 반전은 이곳에서도 일어난다.

그럼에도 그다지 깊은 감명은 받지 못했다.

같은 속임수라도 조금 비열하달까?

베니스의 상인이 훨씬 깔끔한 반전을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자비의 특징은 강요된 게 아니라네.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부드러운 빗방울처럼 내려오는 거라네...



샤일록이 이렇게 말하다니 믿어지는가?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괴롭혔다.

영국식 유머와 유대인에 대해 잘 아는 누군가의 설명이 필요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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