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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동화전집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11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한스 테그너 그림,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12월
평점 :
현대지성에서 안데르센의 원작 동화 168편을 국내 최초 완역본으로 출간하였다.
내가 기억하는 동화와 이 책에 실린 동화 사이에는 많은 다른 점이 있었다.
어린이를 위해 각색된 동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슬픔과 고통과 고뇌와 좌절.
그러나 그것을 극복해가면서 깨닫게 되는 인간사의 경이로움이 짤막하게도 길게도 담겨있다.
내 기억 속 인어공주의 최후가 허무하게 끝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단지 사랑에만 초점을 맞춘 이야기가 난무했지만 인간이 되고자 했던 인어 공주의 소망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사랑을 받는 착한 아이를 찾아낼 때마다 우리의 시험 기간이 줄어들지. 삼백 년 중에 1년이 줄어든단다.
하지만 나쁜 아이를 보게 되면 우리는 슬픔의 눈물을 흘려야 하고 그때마다 시험기간이 하루씩 늘어나게 되지.
이 대목을 읽으며 물방울이 된 인어공주가 착한 아이들을 많이 만나기를 기원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도 이렇게 원작을 대하고 나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이 책의 첫 번째 이야기가 부싯깃 통인데 내용은 거의 기억이 안 났지만 커다란 눈을 부라리던 그림 속 개들의 모습이 뇌리에 남아있었다.
꺼꾸리와 장다리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장다리 클라우스와 꺼꾸리 클라우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누가 더 나쁜 건지 알 수 없었다.
남이 잘 되는 걸 배 아파했던 장다리인지 운이 좋았던 꺼꾸리였는지 읽고 나서 꺼꾸리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동정심과 애정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어른이 되면 옳고 그름에 대한 명확성이 사라지는가 보다.
그저 중간에 걸터 앉아서 장단점을 재단해 보며 비등하게 맞춰가는 시선을 가지게 된 나를 알아낸 느낌이었다.
아름다운 삽화들이 페이지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세련된 그림들이 동화를 좀 더 업그레이드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죽은 사람은 절대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해를 끼치는 사람은 오히려 살아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다가다 만나게 되는 뼈 때리는 문장들 앞에서 숙연해지기도 한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으며 때로는 사소한 실수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 때가 있는 법이다. 게르다는 비로소 꽃밭에 장미꽃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 깨달음으로 인해 게르다는 시간을 축내고 있었던 마녀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리의 인생도 가끔 이런 사소함이 계기가 되어 좋아지거나 나빠지기 시작한다.
은퇴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낡은 가로등의 모습은 은퇴자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엿본 느낌이 든다.
오랫동안 해왔던 일에서 은퇴했지만 그래도 쓸모가 있는 무언가가 되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화려하게 부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져서 쌉싸름한 마음이 들었다.
천 년 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참으로 운이 좋아. 백 년 전에 태어난 사람들도 나보다는 운이 좋지. 그때만 해도 쓸 만한 것이 남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쓸만한 것은 모두 다 쓰여져 버렸으니 마땅한 소재가 없는 것이 당연하지.
글로 밥벌이를 하고 싶은 청년의 이 푸념 앞에서 지혜로운 할머니는 자신의 지혜를 조금 나누어 준다.
하지만 상상력이 빈곤한 청년에겐 무용지물이다.
남다르게 보고, 남다르게 느끼고, 남다르게 생각하는 힘을 기르라는 안데르센의 가르침이 담겨있는 글이다.
세상엔 무궁무진하게 만들 수 있는 이야기들이 널려있다.
다만 그것을 그저 흘려보내 버리고 그저 자극만 찾아다니느라 소중한 이야기를 놓치는 사람들이 많을 뿐이다.
이 동화전집에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있다.
우리가 흘려 버리고 만 소소한 것들이 안데르센의 손끝에서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그것을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일깨워주고 있다.
꾸며 낼 수 있는 것.
이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가 사실은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을 부여해 주고 있었다.
2019년 12월 31일 마지막 날에 나는 안데르센을 통해서 앞으로의 날들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를 배웠다.
상상력 있는 인간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아야겠다.
인생을 즐기며 살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