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
히토쓰바시대학교 사회학부 가토 게이키 세미나 지음, 김혜영 옮김, 가토 게이키 감수 / 해피북스투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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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끌까끌한 찜찜함, 나에 대한 실망 그리고 흔들리는 정체성, 과거에 저지른 일은 분명 폭력적이고 잔혹한 지배였는데, 어째서 나는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정당화'했을까. 어째서 똑바로 보지 못했던 것일까. 알면 알수록 발밑이 기우뚱거렸다. 그래도, 그렇기에, 더 알고 싶었다.



이 책은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일본 대학생들이 자신의 최애를 마음껏 드러내지 못하고 몰래 좋아하면서 '반한 감정'에 대해 생각하다가 역사에 대해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한일 관계에 드리워진 왜곡된 역사의 그늘을 찾아가며 쓴 책입니다.

각자의 에세이와 서로 토론하는 부분과 그들이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역사의 진실을 찾아 알리는 글들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일본에 대해 알기도 전인 아주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반일감정에 세뇌되었습니다.

누구라도 안 그러겠어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은 일본에 대한 이유 없는 '미움'이 존재합니다.

증조부와 부모 세대로부터 자연스럽게 물려받은 것입니다.

그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처음 배우는 것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찬탈하고, 우리의 국모를 시해하고, 우리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끌고 간 그 나라에 대한 울분이 가득한 세대였죠.

얼마 전 모 프로에서 지금 MZ 세대들은 문화적으로 우리의 문화가 'K' 마크를 달고 전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고 있기에 문화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일본 문화에 대해서 적대적이지 않다는 말을 들었어요.

제 맘에 도사리고 있는 '반일' 감정은 이 말에 대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라며 무시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한 편으로 그 말에 수긍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내가 어릴 때와 지금 일본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음을 몸소 체험하고 있거든요.

일본 문화가 우리보다 선진문화였던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이제 우리 문화가 전 세계를 물들이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젊은 세대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문화적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이 책을 쓴 일본 대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제가 어릴 때 가지고 있었던 마음을 지니고 있는 듯합니다.

학창 시절 제가 일본 노래를 몰래 들었듯이 그들은 K-pop을 몰래 듣고 있죠.

주변인들에게 눈치를 보며 좋아해야 하는 문화.

그것이 일본의 한류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도 역사 공부를 새롭게 정비한 느낌이 들어요.

우리가 배운 우리 시각의 역사만 알고 있다가 그들이 정리한 한일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빤하지만 빤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 강제징용문제, 일본이 2차대전 때 아시아에서 벌인 잔혹한 행위들에 대해 이제야 알게 된 그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반한'이든 '친한'이든 일본인이 한국인과 역사 인식이 같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공통된 역사 인식을 공유하지 않는 한, 한국인과 일본인이 허물없는 사이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아닐까. 역사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물으면 '친한'이었던 사람도 갑자기 '반한'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한국인 유학생은 그 틈새에 있다.



이 책을 만든 사람들 중에는 우리나라 유학생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들이 일본 내에서 체험하는 '반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눕니다.

남북분단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 지배한 역사에서 파생된 것이고, 한국의 군사독재도 '친일파' 계통의 색채가 짙다. 즉, 일본은 한국의 현대사에서 인권을 유린한 독재정권과 공범으로 책임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일본인은 결코 한국의 현대사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봐서는 안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배우지 못한 우리나라 현대사의 요약본을 보았습니다.

'학생' 이라서 할 수 있는 조사와 그것에 대한 편견 없는 이야기를 읽었고요.

그래서 역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네요.

나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주입되었던 일본에 대한 감정들처럼 이 책을 만든 학생들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한국에 대한 사회적 감정을 고대로 답습하고 주입했겠죠.

아직도 나는 일본에 대해서는 피해자 입장이 강하고 이유 없이 반대하고 싶지만

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다르게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풍요롭고 자랑스러운 시대에 태어나서 자란 세대들이죠.

그러기에 꼬인 게 없고, 피해의식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디서나 당당하죠.

그들과 지금 이렇게 한 켠에서 자신들의 역사를 알아가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만난다면

과거와는 다른 관계를 만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늘 없는 세대끼리야말로 과거를 올바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어른들이 못한 감정 풀이를

젊은 세대들이 해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며 들었습니다.

더불어 <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 라는 제목이 정말 마음에 스며드는 문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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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사이의 별빛
글렌디 밴더라 지음, 노진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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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상처를 입으면 상처 주위의 세포들이 변화해 부패를 방지하는 방어벽을 만들어. 그러면 방어벽 주위의 세포들이 변화해 또 다른 방어벽을 만들지. 놀랍게도 나무는 그렇게 세 개, 네 개까지 방어벽을 만들어가며 오래도록 생존을 이어가는 거야."

<나뭇잎 사이의 별빛>은 제목 때문에 에세이처럼 느껴지는데 참 많은 상처와 트라우마 빠져 방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주 따뜻하게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책을 읽는 내내 숲이 주는 내음과 새들의 소리와 마음에서 울리는 소리 없는 비명들이 들렸던 소설이었다...





이제 나는 반쪽짜리 인간이 아니라 반쪽짜리 엘리스야.

11만 평에 달하는 마마의 사유지에서 마마와 둘이서만 자란 레이븐.

레이븐에겐 출생의 비밀이 있다. 레이븐은 마마가 숲의 정령들에게 아기를 갖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어 생긴 아이였다.

세상 사람들은 절대 믿지 않을 땅이 보내준 정령의 아이. 레이븐.

그렇게 세상과 단절되어 자란 레이븐에겐 가끔 찾아오는 손드라 이모가 있다.

이모는 올 때마다 의사를 데려와 예방접종과 건강을 체크하지만 최근 들어 이모는 레이븐을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자연의 치유력을 믿고, 숲의 정령들에게 소원 비는 법을 알고, 홈스쿨링을 하는 레이븐은 어느 날 개울가에서 남자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또래 아이들을 처음 만난 레이븐은 자신이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마마에게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마마는 레이븐에게 학교에 가는 대신 재키네 집에는 발도 들이지 말고, 학교 외에서는 만나지도 말라는 약속을 받아낸다.

그렇게 레이븐은 또 다른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함께 있을 수 있어. 각자의 가슴속에서."

엘리스는 약과 술에 절어 있는 엄마와 함께 트레일러에 살았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엘리스에게 아버지와 같았던 제인 아저씨도 엄마를 못 견디고 떠났다. 인사도 없이...

결혼 한 엘리스는 쌍둥이 아들과 딸 비올라가 있다.

어느 날 남편의 바람을 목격하고 돌아오던 엘리스는 비올라를 주차장에 놓고 온 사실을 떠올리고 되돌아갔지만 몇 분 사이에 비올라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엘리스는 딸을 잃고, 자신을 잃고, 남은 가족을 뒤로하고 산과 숲으로 향한다.

어릴 때 그녀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와일드 우드에서처럼 약과 술에 찌들어갔던 엄마처럼 되지 않기 위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을 살던 중 숲에서 두 남자에게 공격을 당한다...

몇 년 전 인상 깊게 읽었던 <숲과 별이 만날 때>의 작가 글랜디 밴더라.

그 작품을 통해 또 다른 '어린 왕자'를 만났었다면 <나뭇잎 사이의 별빛>을 통해서는 좀 더 자란 어린 왕자를 만난 느낌이다.

비록 유괴되었지만 마마 나름대로의 사랑을 받고 자란 레이븐.

세상과 단절되어 숲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한 레이븐의 어린 시절은 엄마 엘리스의 어린 시절과 닮았다.

그러고 보면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상처를 안고 산다.

리버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으로 자신을 팽개치는 삶을 살아가고

리스는 술에 중독된 엄마를 보살피며 어린 나이에도 강단 있게 산다.

오드리는 평안하게 죽고 싶어 했던 엄마의 소원을 묵살한 아버지와 언니로부터 벗어나 세상과 단절하면서 엄마처럼 자연을 벗 삼아 살았다. 그러나 외로웠던 그녀는 아이를 갖고 싶었고 엄마의 무덤에 다녀오던 중에 버려진 아이를 발견했다.

조나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았지만 부모를 거역할 수 없어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없었다.


"내가 세운 방어벽이 좋다거나 나쁘다는 말이 아니야. 그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이었다는 뜻이야. 어쩌면 우리 가족들 모두가 그런 식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오늘까지 왔는지도 모르지."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읽으면서도 감이 안 왔다.

그러나 너무 자연스럽게 풀어지는 과거사들이 현재와 맞물리면서 그 안에서 편안함을 찾게 되는 과정이 참 아름답게 그려졌다.

메리와 손드라를 통해 보여주는 냉정한 세상

엘리스와 레이븐을 통해 보여주는 치유의 세상

이 두 세상의 공존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삶의 목표가 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외로움이 된다.

상처와 트라우마로 가득한 사람들의 영혼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기막힌 이야기의 반전이 참 매력 있었다.

사람 냄새가 숲이 머금고 있는 싱그러운 향과 뜨거운 대지가 품고 있는 습한 공기에 가려진 듯 하지만 결국 그 향과 공기엔 사람의 내음이 담뿍 담겨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랑과 용서는 숲과 땅의 치유력과 같다.

긴 호흡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시간 순삭을 경험하게 된다.

중간중간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너무나 어른스러운 레이븐의 강단 앞에서 자꾸만 어른인 척하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내가 레이븐이라면 과연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마지막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 속을 떠돌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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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오브 뷰티 -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나다
미하엘라 노로크 지음, 권루시안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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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속 여성 소나는 힌두교의 색채 축제인 홀리를 즐기로 있다.




한 나라 안에 그렇게 많은 아름다움과 다양성이 존재한다면, 세계의 다른 곳에서는 과연 어떨까?



저자 미하엘라 노로크는 어릴 때 아빠에게 받은 낡은 중고 카메라에 취미를 가지기 시작합니다.

엄마와 여동생을 찍기 시작하면서 그녀에게는 자신도 모를 영감이 생겼던 거 같습니다.

에티오피아를 여행하면서 잊었던 사진에 대한 열정을 찾은 작가는 휴가 때 찍은 사진들을 SNS에 올리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100여 개의 나라에서 만난 여성들의 사진을 찍은 사진집을 내놓습니다.

세상 곳곳에 있는 모두 다른 여성들의 얼굴이 한가득 들어 있는 이 사진집을 펼쳐 보는데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납니다.

이유는 저도 모르겠어요...








그녀들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녀들의 표정과 눈빛에 담긴 수만 가지 이야기가 사진을 뚫고 내 마음에 닿습니다...

결국 모든 여성은 자신이 드러내는 모습을 자유롭게 결정하고 외부 세계의 압박 없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해요.

우리 사이에 성별과 민족, 피부색, 성적 취향, 종교 등을 가지고 장벽을 쌓을 것이 아니라, 모두가 협력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야 해요.

조상 대대로 살아온 그대로 살아가는 부족 여성들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하고 있는 여성

두 번이나 암과 싸워 이겨낸 여성

자신의 딸을 '내 비스킷'이라 부르는 열다섯의 어린 엄마

엄마와 딸들, 자매들, 주름이 자글거리는 얼굴로 환하게 웃는 할머니

소방관, 경찰, 댄스 강사, 종교적 자유가 허락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서는 여자들

세계 속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는 시간이 왜 이렇게 뿌듯하고 기운이 나면서도 자꾸 눈물이 나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살아야 하는 여성들.

고지대에 살아서 항상 볼이 빨간 여성.

커밍아웃한 여성

딸이 자신의 삶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여성.

자신들의 나라에서 여성들이 더 많은 자유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여성들...

이 많은 사연들이 한 장의 사진에 담겨 그녀들의 표정과 눈빛으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래서 그런가 봅니다. 자꾸 울컥하는 마음은...

북한의 여성들을 찍은 사진도 있습니다.

지금 이 책에는 우리나라 여성은 없습니다.

후속편도 나올 거 같은데 거기에 있을까요?

어떤 모습의 여성의 담길지 자꾸 궁금해집니다.

이유는 우리도 자유롭지만 자유롭지 못한 사회에서 살아가기에 어떤 모습이 담길지 궁금했어요.

사회와 미디어가 요구하는 여성의 모습.

그 속에서 숨을 못 쉬고 살아가는 여성들의 그늘을 걷어내는 작업을 이 책이 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본인 스스로에게 있다는걸.

나 자신의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은 남이 아닌 내가 가장 잘 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

보통 말고

진짜가 되어 봐요.

보통 사람들이 평하는 그런 보통스러운 사람이 아닌

누구도 따라 하지 못할 개성을 가진 나를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성형 천국 대한민국에서의 미의 기준은 '절대 없음'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모두가 똑같은 얼굴로 치장을 하고 똑같은 몸매와 똑같은 옷과 똑같은 신발을 신는 것처럼 재미없는 모양새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진집 속 여성들의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제 피로했던 눈을 정화시켜 주는 거 같아요.

한순간을 박제한 사진 속에 그녀들의 진실한 모습이 저장된 느낌이거든요.

예뻐 보이려 찍은 게 아니라

정직한 모습을 찍힌 사진 속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습니다.

나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정말 자신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꾸미는 시간과 돈을 그냥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쓰라고...

"저는 여성은 그저 편견 없는 아름다운 소통에 너무나 목말라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서로를 끌어내리고 자기 자신을 끌어내릴 게 아니라, 서로에게 좋은 자매가 되도록 도울 수 있어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많이 들으며 자랐습니다.

아이슬란드에서 만난 토룬의 이야기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서로를 끌어내리고 자기 자신을 끌어내릴 게 아니라 좋은 자매라 되도록 돕자는 말이 번개처럼 뇌리에 박힙니다.

사진 속 여성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모습을 지녔습니다.

남편이 종교적 이유로 처형당한 모습을 보게 된 여성도

자신의 동네가 너무 위험해서 산속에 있는 게 더 편하다는 여성도

난민촌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여성도

일흔여섯에 달리기를 하는 여성도

히잡을 쓰고도 열렬한 축구 팬인 여성도

가진 거 없어도 존중과 배려를 품고 사는 여성도

아프리카로 돌아가 자신이 배운 걸 아프리카의 실정에 맞춰 보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여성도

수많은 여성들이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있는 줄도 몰랐던 어떤 굴레가 벗겨져 나가는 느낌이 듭니다.

글이 별로 없는 사진집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것들을 흡수할 수 있어서 신기했어요.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보면서 그네들의 삶을 상상해 보는 시간도 좋았습니다.

다양한 모습들 속에서 비슷한 연결점이 보이는 건 색다른 느낌이었고요.

어쩜 우리는 서로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있지만 서로가 그렇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도 좋은 영감이 될 책입니다.

여성 캐릭터들을 구현해낼 때 이 사진 속 여성들의 이야기가 떠오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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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아나로 가는 길
로버트 바이런 지음, 민태혜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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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을 떠나려 하다니, 분명 실수하는 거예요."




옥시아나가 어딜까?

책을 읽기 전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지만 책에 대한 자료만 많지 옥시아나가 어딘지에 관해서는 이 책을 홍보하는 기사에서 한 문장으로 언급될 뿐이다.

아프카니스탄 북경 국경지대를 흐르는 아무다리야강 주변 지역을 옥시아나라고 한다.

유럽을 떠나 중앙아시아로 여행을 떠나는 그에게 다이앤이 한 말은 그를 울적하게 했지만 그의 여행기를 읽는 나는 평소에 궁금했던 곳에 대한 기록이었기에 즐거웠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역사책에서 잠깐 언급된 것 외에는 거의 알지 못하고, 이후에도 여러 분쟁으로 그저 골치 아픈 곳, 내지는 우리와는 상관없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편협한 세계사는 유럽과 미국만을 다루고 있었기에 중앙아시아에 대한 짧은 앎은 나이가 들수록, 책을 읽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갈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곳을 1930년대에 여행하고 여행기를 낸 로버트 바이런.


"책을 쓰십니까?" 세관원이 과세할 음란물 작가를 찾아내려 추궁하듯 물었다. 나는 바이런 경이 아니니 하던 일이나 마저 하라고 그에게 대답했다.



바이런이라는 이름만 듣고 흔히들 떠올린 그 바이런 경을 생각했었는데 그 시대에도 바이런 경과 혼동했던 사람들이 있었나 보다. ㅎㅎ







예술은 정치적 안정, 적어도 시민의 안정 없이는 번성할 수 없다.


건축 비평가이자 역사학자이며 여행가였던 로버트 바이런의 여행기는 소설처럼 읽힌다.

여행기라기 보다 일기 형식을 빌려 쓴 로드무비 같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기다림이 기다리고 있고, 정치적 상황에 따라 급변하는 상황 때문에 여행길이 편하지 않다.

그럼에도 그의 성격이 참 무난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그가 쓴 글이라서 자신에 대해 엄격한(?) 검열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인내심 강한 여행자이고 날카롭지만 세련된 비평가이자 있는 그대로의 풍광을 잘 설명할 줄 아는 필력의 소유자였다.

여행지마다 그의 해박한 역사 지식과 건축물에 대한 설명을 읽고 있자면 베테랑 가이드의 안내를 받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의 여왕인 엘리자베스와 빅토리아를 떠올리게 된다. 이런 여성은 이슬람 연대기에서는 보기 드물다.

나는 그의 여행지에서 만났던 많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헤라트 여행기에 나온 고하르 샤드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녀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지만 역사학자답게 바이런은 고하르 샤드의 행적을 이야기해 준다.

80이 넘도록 살면서 왕권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이루지 못한 고하르 샤드의 이야기는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여성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음을 말해주는 거 같아서 신선했다.

10개월에 걸친 긴 여행길은 다사다난했지만 그는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다.

그러나 2차대전 당시 36세였던 그는 서아프리카로 가던 중 독일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요절했다.

유해는 찾지 못했다.

어쩜 그는 우리가 갈 수 없는 바닷속으로 여행을 떠난 게 아닐까...

그가 그때 죽지 않았다면 서아프리카에 대해서 어떤 여행기를 남겼을지 궁금하다.

아프리카 역시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곳들 중 하나이기에 바이런이 본 아프리카의 모습이 어땠을지 아쉽기만 하다.

제법 두께를 자랑하는 여행기지만, 이슬람 문화권에 대해 별 지식이 없는 나였지만, 그래서 더 신선했다.

알지 못하고, 가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들이 그 지역에 대해 막연히 가지고 있었던 나의 관념을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편견 없이 여행기를 쓴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바이런이 그 일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이 잘 읽히는 거 같다.

매일매일의 기록이 그의 성실함을 말해주니 이 여행기는 믿고 읽어도 되는 여행기다.

여행을 다녀와서 기억에 의존해 쓴 글이 아니라 그날 그날 보고, 듣고, 느낀 것의 기록이기에 1933~1934년 동안 로버트 바이런이 걸어갔던 그 길에 대한 생생한 날것의 기록이다.

나는 그 점이 <옥시아나로 가는 길>을 가장 빛나게 하는 요소인 거 같다.

두께에 겁먹지 마시길.

익히 아는 세상이 아닌 잘 몰랐던 세상에 대한 이야기.

영국인이 아닌 세계인으로서 쓴 여행기로 점수를 팍팍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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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잔혹사 - 약탈, 살인, 고문으로 얼룩진 과학과 의학의 역사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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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분야에도 책임져야 할 죄들이 있다.

<걸리버 여행기>, <로빈슨 크루소>에 영감을 주고 찰스 다윈이 제자로 자처한 사람은 윌리엄 댐피어다.

그는 탁월한 기록가였지만 해적질을 일삼으며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것들을 수집하고 기록했다.

그는 <새로운 세계 일주 항해> 여행기를 썼다. 박식하고 세심한 동시에 머리털을 곤두서게 하는 요소까지 갖춘 그의 글은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었지만 그의 해적질은 용서받지 못했다.

그의 글 솜씨로 최초로 토네이도에 대해 묘사했지만 자신의 잘못에 대한 기록은 없다.



과학을 더 나은 인생을 가져다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로 여겼던 흰개미집 연구자 헨리 스미스먼은 그로 인해 노예 무역을 이용했다.

유럽의 박물학자들은 노예 무역을 활용해 낯선 나라로 채집을 가거나 노예 무역상들에게 채집을 부탁했다. 노예 무역선은 노예만 들여온 게 아니었다. 그 나라에만 있는 특정한 것들을 채집해서 본국의 박물학자들에게 넘겼다.

그로 인해 분류학의 아버지인 칼 폰 린네가 <자연의 체계>라는 책을 쓸 수 있었다.

과학이 신사가 될 수 있는 확실한 길이었기에 헨리 스미스먼 같은 사람들도 많았으리라..




과학과 의학의 눈부신 발전이 모두 공정한 연구에 의해서 이루어졌을까?

저체온증의 치료를 위해 참고할 자료가 나치의 생체실험이라면?

위대한 과학자 에디슨이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해 했던 전기 실험으로 개 44마리, 송아지 6마리, 말 2마리를 죽였다면?

군인들 사이에 만연한 성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험자에게 매독균을 주사한 공중보건국 존 커틀러는 무엇을 위해 이런 일을 벌였을까? 개인을 위해, 아니면 국가를 위해?

클레오파트라는 정말 아기의 성별을 구분하기 위해 시종의 배를 갈랐을까?

자신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 백질 절단술이라는 수술법을 발명한 모니스가 정신병원 환자들을 상대로 벌인 뇌를 휘젖는 일은 용서받을 수 있을까?


샘 킨은 과학과 의학계에서 벌어진 놀라운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읽고 있는 내 눈이 의심스러운 일들이 실제로 벌어졌던 일들이라니 두렵다.

그들은 왜 그런 일들을 했을까?

우리는 이제껏 그러한 희생과 있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사람들로 인해 발견된 것들을 은연중에 미화 시키고 있지는 않을까?

불과 3년 전 코로나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 맞았던 백신 주사는 정말 안전한 걸까?

우리 모두가 미래인들을 위한 마루타가 되었던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에 담긴 끔찍한 사실들은 누군가의 묵인하에 이루어졌다.

그 누군가는 무지한 대중일 수도 있고, 자신의 영광을 위한 연구원일 수도 있고, 과학과 의학의 발전이라는 이름하에 이뤄졌던 은근한 압력일 수도 있다.

최근에 '삼체'라는 드라마가 방영 중인데 그 이야기에서 한 과학자의 욕망이 외계인을 지구로 불러들인다.

그 과학자 역시 한순간 자신이 옳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에 그 뒤에 올 결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외계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 책에 언급된 과학과 의학에 종사했던 사람들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살아있는 동물에게,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들에게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 방식을 강행했다.

그리고 그 일에는 명암이 존재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이 떠오른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과학의 잔혹사>를 읽고 나니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 당시에도 논란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강력한 제지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용인과 묵인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쉬웠을 것이다. 인류의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하지만 지금 어딘가에서도 남모르게자행되고 있을 '어떤 욕망'이 미래의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학 잔혹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생각거리를 준다.

과학과 의학에서 윤리를 더 강화해야 할지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문제 제기를 해야 할 때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가 마지막에 던진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미래가 과거 보다 더 잔혹하다는 사실이 걱정스럽다.

어디선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도 뭔가 비윤리적인 행동을 저질렀을 것이다. 이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경계 태세이다.

과학의 어두운 역사를 말해서인지 과학 스릴러를 한 편을 읽은 기분이다.

지어낸 이야기 보다 현실의 이야기가 더 잔혹하다는 걸 한 번 더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 <과학 잔혹사>

샘 킨의 다른 저서들도 덩달아 궁금해지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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