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사이의 별빛
글렌디 밴더라 지음, 노진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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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상처를 입으면 상처 주위의 세포들이 변화해 부패를 방지하는 방어벽을 만들어. 그러면 방어벽 주위의 세포들이 변화해 또 다른 방어벽을 만들지. 놀랍게도 나무는 그렇게 세 개, 네 개까지 방어벽을 만들어가며 오래도록 생존을 이어가는 거야."

<나뭇잎 사이의 별빛>은 제목 때문에 에세이처럼 느껴지는데 참 많은 상처와 트라우마 빠져 방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주 따뜻하게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책을 읽는 내내 숲이 주는 내음과 새들의 소리와 마음에서 울리는 소리 없는 비명들이 들렸던 소설이었다...





이제 나는 반쪽짜리 인간이 아니라 반쪽짜리 엘리스야.

11만 평에 달하는 마마의 사유지에서 마마와 둘이서만 자란 레이븐.

레이븐에겐 출생의 비밀이 있다. 레이븐은 마마가 숲의 정령들에게 아기를 갖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어 생긴 아이였다.

세상 사람들은 절대 믿지 않을 땅이 보내준 정령의 아이. 레이븐.

그렇게 세상과 단절되어 자란 레이븐에겐 가끔 찾아오는 손드라 이모가 있다.

이모는 올 때마다 의사를 데려와 예방접종과 건강을 체크하지만 최근 들어 이모는 레이븐을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자연의 치유력을 믿고, 숲의 정령들에게 소원 비는 법을 알고, 홈스쿨링을 하는 레이븐은 어느 날 개울가에서 남자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또래 아이들을 처음 만난 레이븐은 자신이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마마에게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마마는 레이븐에게 학교에 가는 대신 재키네 집에는 발도 들이지 말고, 학교 외에서는 만나지도 말라는 약속을 받아낸다.

그렇게 레이븐은 또 다른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함께 있을 수 있어. 각자의 가슴속에서."

엘리스는 약과 술에 절어 있는 엄마와 함께 트레일러에 살았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엘리스에게 아버지와 같았던 제인 아저씨도 엄마를 못 견디고 떠났다. 인사도 없이...

결혼 한 엘리스는 쌍둥이 아들과 딸 비올라가 있다.

어느 날 남편의 바람을 목격하고 돌아오던 엘리스는 비올라를 주차장에 놓고 온 사실을 떠올리고 되돌아갔지만 몇 분 사이에 비올라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엘리스는 딸을 잃고, 자신을 잃고, 남은 가족을 뒤로하고 산과 숲으로 향한다.

어릴 때 그녀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와일드 우드에서처럼 약과 술에 찌들어갔던 엄마처럼 되지 않기 위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을 살던 중 숲에서 두 남자에게 공격을 당한다...

몇 년 전 인상 깊게 읽었던 <숲과 별이 만날 때>의 작가 글랜디 밴더라.

그 작품을 통해 또 다른 '어린 왕자'를 만났었다면 <나뭇잎 사이의 별빛>을 통해서는 좀 더 자란 어린 왕자를 만난 느낌이다.

비록 유괴되었지만 마마 나름대로의 사랑을 받고 자란 레이븐.

세상과 단절되어 숲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한 레이븐의 어린 시절은 엄마 엘리스의 어린 시절과 닮았다.

그러고 보면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상처를 안고 산다.

리버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으로 자신을 팽개치는 삶을 살아가고

리스는 술에 중독된 엄마를 보살피며 어린 나이에도 강단 있게 산다.

오드리는 평안하게 죽고 싶어 했던 엄마의 소원을 묵살한 아버지와 언니로부터 벗어나 세상과 단절하면서 엄마처럼 자연을 벗 삼아 살았다. 그러나 외로웠던 그녀는 아이를 갖고 싶었고 엄마의 무덤에 다녀오던 중에 버려진 아이를 발견했다.

조나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았지만 부모를 거역할 수 없어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없었다.


"내가 세운 방어벽이 좋다거나 나쁘다는 말이 아니야. 그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이었다는 뜻이야. 어쩌면 우리 가족들 모두가 그런 식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오늘까지 왔는지도 모르지."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읽으면서도 감이 안 왔다.

그러나 너무 자연스럽게 풀어지는 과거사들이 현재와 맞물리면서 그 안에서 편안함을 찾게 되는 과정이 참 아름답게 그려졌다.

메리와 손드라를 통해 보여주는 냉정한 세상

엘리스와 레이븐을 통해 보여주는 치유의 세상

이 두 세상의 공존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삶의 목표가 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외로움이 된다.

상처와 트라우마로 가득한 사람들의 영혼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기막힌 이야기의 반전이 참 매력 있었다.

사람 냄새가 숲이 머금고 있는 싱그러운 향과 뜨거운 대지가 품고 있는 습한 공기에 가려진 듯 하지만 결국 그 향과 공기엔 사람의 내음이 담뿍 담겨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랑과 용서는 숲과 땅의 치유력과 같다.

긴 호흡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시간 순삭을 경험하게 된다.

중간중간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너무나 어른스러운 레이븐의 강단 앞에서 자꾸만 어른인 척하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내가 레이븐이라면 과연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마지막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 속을 떠돌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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