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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
히토쓰바시대학교 사회학부 가토 게이키 세미나 지음, 김혜영 옮김, 가토 게이키 감수 / 해피북스투유 / 2024년 3월
평점 :
까끌까끌한 찜찜함, 나에 대한 실망 그리고 흔들리는 정체성, 과거에 저지른 일은 분명 폭력적이고 잔혹한 지배였는데, 어째서 나는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정당화'했을까. 어째서 똑바로 보지 못했던 것일까. 알면 알수록 발밑이 기우뚱거렸다. 그래도, 그렇기에, 더 알고 싶었다.
이 책은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일본 대학생들이 자신의 최애를 마음껏 드러내지 못하고 몰래 좋아하면서 '반한 감정'에 대해 생각하다가 역사에 대해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한일 관계에 드리워진 왜곡된 역사의 그늘을 찾아가며 쓴 책입니다.
각자의 에세이와 서로 토론하는 부분과 그들이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역사의 진실을 찾아 알리는 글들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일본에 대해 알기도 전인 아주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반일감정에 세뇌되었습니다.
누구라도 안 그러겠어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은 일본에 대한 이유 없는 '미움'이 존재합니다.
증조부와 부모 세대로부터 자연스럽게 물려받은 것입니다.
그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처음 배우는 것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찬탈하고, 우리의 국모를 시해하고, 우리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끌고 간 그 나라에 대한 울분이 가득한 세대였죠.
얼마 전 모 프로에서 지금 MZ 세대들은 문화적으로 우리의 문화가 'K' 마크를 달고 전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고 있기에 문화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일본 문화에 대해서 적대적이지 않다는 말을 들었어요.
제 맘에 도사리고 있는 '반일' 감정은 이 말에 대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라며 무시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한 편으로 그 말에 수긍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내가 어릴 때와 지금 일본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음을 몸소 체험하고 있거든요.
일본 문화가 우리보다 선진문화였던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이제 우리 문화가 전 세계를 물들이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젊은 세대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문화적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이 책을 쓴 일본 대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제가 어릴 때 가지고 있었던 마음을 지니고 있는 듯합니다.
학창 시절 제가 일본 노래를 몰래 들었듯이 그들은 K-pop을 몰래 듣고 있죠.
주변인들에게 눈치를 보며 좋아해야 하는 문화.
그것이 일본의 한류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도 역사 공부를 새롭게 정비한 느낌이 들어요.
우리가 배운 우리 시각의 역사만 알고 있다가 그들이 정리한 한일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빤하지만 빤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 강제징용문제, 일본이 2차대전 때 아시아에서 벌인 잔혹한 행위들에 대해 이제야 알게 된 그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반한'이든 '친한'이든 일본인이 한국인과 역사 인식이 같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공통된 역사 인식을 공유하지 않는 한, 한국인과 일본인이 허물없는 사이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아닐까. 역사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물으면 '친한'이었던 사람도 갑자기 '반한'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한국인 유학생은 그 틈새에 있다.
이 책을 만든 사람들 중에는 우리나라 유학생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들이 일본 내에서 체험하는 '반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눕니다.
남북분단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 지배한 역사에서 파생된 것이고, 한국의 군사독재도 '친일파' 계통의 색채가 짙다. 즉, 일본은 한국의 현대사에서 인권을 유린한 독재정권과 공범으로 책임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일본인은 결코 한국의 현대사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봐서는 안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배우지 못한 우리나라 현대사의 요약본을 보았습니다.
'학생' 이라서 할 수 있는 조사와 그것에 대한 편견 없는 이야기를 읽었고요.
그래서 역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네요.
나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주입되었던 일본에 대한 감정들처럼 이 책을 만든 학생들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한국에 대한 사회적 감정을 고대로 답습하고 주입했겠죠.
아직도 나는 일본에 대해서는 피해자 입장이 강하고 이유 없이 반대하고 싶지만
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다르게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풍요롭고 자랑스러운 시대에 태어나서 자란 세대들이죠.
그러기에 꼬인 게 없고, 피해의식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디서나 당당하죠.
그들과 지금 이렇게 한 켠에서 자신들의 역사를 알아가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만난다면
과거와는 다른 관계를 만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늘 없는 세대끼리야말로 과거를 올바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어른들이 못한 감정 풀이를
젊은 세대들이 해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며 들었습니다.
더불어 <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 라는 제목이 정말 마음에 스며드는 문장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