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표현, 자유는 어떻게 해악이 되는가?
제러미 월드론 지음, 홍성수.이소영 옮김 / 이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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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적으로 쓰여진 학술서라고 했는데.. 어떤 수식어가 붙든 학술서는 어렵다. 여튼 결론적으로 누구나 개인의 존엄성을 위협받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혐오표현은 '사상'의 자유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집단적 명예훼손의 '행위'로 봐야 된다는데 깊이 동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베에 대해서도 적절한 제재가 가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혐오표현을 소수자에 대한 것으로 한정 짓지만, 개인적으로는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메갈처럼 온라인의 익명성을 바탕으로 근거 없는 비방이나 사회적 갈등과 분란을 조장했던 행위도 비록 그 대상이 사회적으로 소수자가 아닌 남성 일반에 대한 것이지만 "부정적이고 차별적인 관념"에 기반한 "차별적 발언을 하거나 모욕, 조롱, 위협하거나 차별, 적대, 폭력을 고취, 선동"하는 내용의 온라인 게시물을 통해 "외부로 표출된 표현"하는 행위에 해당된다고 생각된다.

 

 일베나 메갈과 같은 집단들이 한국사회의 다양성이 증가하면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부작용이길 바라며, 앞으로 개인 한 명, 한 명의 삶이 더욱 더 표준화된 틀 속에 갇히지 않고 자유성과 다양성이 더 풍부해지는 한국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아래는 책을 읽으면서 공감갔던 부분 인용 ㅎㅎ!!

 

 

혐오표현금지법 옹호자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고 싶었겠지만, 문제는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이 아니다. 문제는 공표이며 개인과 집단에 끼치는 해악이다. 그 해악은 공동체의 아마도 다수자인 한 집단이, 다른 집단 구성원들은 평등한 시민권을 가질 자격이 없다는 취지로 눈에 보이는, 공개된 반영구적인 의견을 개진함에 따라 우리의 사회적 환경이 손상된다는 점이다. 혐오적인 생각이나 혐오적인 대화와는 반대되는 집단 명예훼손이라는 오래된 생각은 이 점을 명확하게 한다.  p.48

 

혐오표현에 대한 제한은 생각에 대한 제한이 아니다. 그 보다는 손에 잡히는 형태의 메시지에 대한 젷나이다. 문제는 공표다. 그리고 한 사회 주류집단이 보기에 다른 어떤 집단의 구성원ㄷ르은 동등한 시민권을 누릴 자격이 없다는 취지의 가시적이고 공적이며 반영구적 언술 행위가 우리의 사회적 환경을 망가뜨림으로써 가해지는 개인과 집단에 대한 해악이 문제다. p.56

 

존엄은 지위의 문제이며, 존엄 자체는 많은 점에서 규범적이다. 다시 말해 존엄은 다른 사람과 국가로부터 존중받기를 요구하는 한 인간에 대한 문제다. 더욱이 우리는 주어진 일련의 권한을 가졌을 때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다뤄지는가에 관한 기본이 될 때 그러한 권리와 권한의 인정이 특정 지위를 보유하게 된다는 점을 안다. 이러한 기초 하에서 다뤄지게 될 확신의 구성요소는 존엄이 요구하는 본질적인 부분이다. pp.111-112

 

혐오표현이 단지 자율적인 자기표현이 아니라는 점이다. 혐오표현은 단순히 인종차별주의잗르이 자신의 견해를 발산하는 행위가 아니다. 편견을 드러내는 행위는 취약한 소수자 구성원들이 의존하는 확신의 사회적 의미를 특별히 목표로 삼는다. 핵심은 취약한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사회가 제공하는 암시적 확신, 다시 말해 그들은 당연하게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회에서 정상적 지위를 가진 구성원으로 인정된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이다. 인종차별주의잗르은 이러한 확신을 약화시키고, 이의를 제기하고, 혐오, 배제, 경멸을 가시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손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p.115

 

혐오표현금지법이 단순히 혐오를 숨게 만들 뿐이라는 점이 종종 반대 이유로 제시된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바로 그점이 중욯다. 다시 말해 우리는 혐오주의자들에게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원칙들의 이름으로 제공되는 확신을 파괴하는 일을 위해 서로서로 접촉하고 조직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편견주의자들이 고립되고 적의를 가진 개인들이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다. p.123

 

이것은 단지 사람들을 산발적인 모욕, 불쾌감, 상처를 주는 말에 맞서 보호하자는 문제가 아니다. 체계적인 방법으로 사회적 평화와 시민적 질서의 특정한 측면이 정의의 지배를 받는 것을 보장하는 문제이다. 다시 말해 포용의 존엄성과 정의의 기초에 관한 상호 확신의 공공선 말이다. 어떤 공동체에서든 이것을 보장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정당하고 질서정연한 사회가 되려는 열망을 가진 우리와 같은 역사의 부담을 짊어진 공동체에서 특히 중요하다. p.133

 

정치에서 모든 이들이 때때로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사회 안에는 수만 가지의 상이한 의견들이 존재하고 이따금씩 공론에서든 투표에서든 나의 의견과는 다른 견해가 지배적인 상황도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이해관계는 종종 서로 다른 방향들로 향해 있으며, 공공 정책이 나의 이익보다는 당신의 잉기을 선호하거나, 혹은 나의 이익을 무시하거나 뒤로 제쳐 둘 때도 있을 수 있다.  ... 패배를 받아들이고 너그러이 물러설 줄 아는 것은 우리네 통상적인 민주정치 규율 가운데 일부다. p.166


타협할 수 없는 권리목록이 부담스러우리만치 과도할 경우, 대안적인 결정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되어 결국 정치는 교착 상태에 봉착할 것이다. 우리는 근대 정체성 정치의 무책임함을 바로 이렇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내가 취한 특정한 입장과 나라는 인간을 동일시한다고 말할 때 요컨대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분이라고 말할 때 나는 통상적인 정치의 스크럼 너머 기본적 권들에 있어 허용된 보호 영역으로까지 그 입장을 끌어올려 밀어 넣는 셈이 된다. ... 정체성은 문제시되는 특정한 입장을 당사자가 고집할 권리가 있고 다른 이들로서는 마땅히 인정해야만 하는 특수한 보호구역이라는 식의 발상에 밀착되어 있다. pp.167-168

 

 

*해제

 

모든 이들은 평등한 인간이고, 인간성의 존엄을 가지며, 모든 이들은 정의에 관한 기초적인 권한을 가지며, 모든 이들은 폭력, 배제, 모욕, 종속의 가장 지독한 형태로부터 보호받을 자격이 있음에 관한 확신은 정의의 중요한 기초이며, 이 기초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혐오표현에 대한 강제적인 금지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모욕, 불쾌감, 상처를 주는 말로부터 사람ㄷ르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포용의 공공선과 정의의 기초에 관한 상호확신의 공공선을 지키는데 있으며 일르 통해 각 개인의 존엄과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다. 월드론은 생각이나 사상은 처벌할 수 없다는 자유주의의 반격에 맞서 혐오표현은 표현자체로 행위이며 실질적인 해악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pp.299-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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