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신문 가난한 독자
손석춘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는 정치적 영역에 국한시켜 봤을 때 민주화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조야한 반공이데올로기에 기반하여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구축했던 이승만에 대한 4.19학생혁명, 개발독재패러다임을 통하여 유신체제를 구축했던 박정희에 대한 부마항쟁, 그리고 80년 광주를 피로 물들였던 전두환에 대한 87년 6월 항쟁 등 해방 이후의 한국사는 권위적인 국가와 민주화 세력간의 끊임없는 투쟁의 장이었다.


어떤 이는 권위주의세력을 타파하고 민주화 세력이 결국 한국의 민주화를 이루어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민주화는 종료된 프로젝트인가? 나는 한국사회에서 아직도 민주화는 유효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분명 87년 6월의 함성으로 제한적인 절차적 민주주의를 수립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마저 구체제 기득권세력의 저항에 부딪치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저항의 중심에는 조·중·동으로 불리는 한국의 메이저 신문사들이 존재하고 있다.


저자는 이 부자신문들의 추잡한 과거를 밝히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를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이야기하는 동아일보사가 그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내팽겨 친 사실과 같은 친일언론으로서 그들이 저지른 만행을 보여준다. 혹자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냐고 반문하며 부자신문을 옹호한다. 물론 그런 강압의 시기에 그들의 그러한 논조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영향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부자신문들이 그 과거를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을 민족지라고 주장하는 그런 뻔뻔함이다. 반성을 모르는 이런 뻔뻔함이 결국 그들을 오만한 독선자로 만든 것이다.


부자신문들은 해방 이후부터 대부분의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그러했듯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의 탈을 쓴 반공주의로 자신들을 무장하였다. 그들이 일제에 영합하여 얻을 수 있었던 기득권에 대한 불만의 소리는 모두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공산주의적 발언이었고, 이는 처단의 대상이었다. 애초부터 정당성을 가지지 못했던 이들은 타협의 공간을 가질 수 없었으며, 정당성이 부재한 만큼 더욱더 공격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사회 기득권세력으로서 부자신문들은 권위주의정권들의 시녀로서 국민들을 우민화하고 권위주의정권에 저항하는 세력들을 공산주의세력으로 매도함으로써 반공이데올로기가 한국사회에 만연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민주적 논점을 가지고 있던 언론들은 권위주의정권의 폭력 앞에 하나 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고, 권위주의정권에 기생함으로써 살아남은 부자신문들은 더욱더 친권위주의적인 논조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것은 비단 부자신문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텔레비전 방송국의 경우 땡전뉴스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독재정권의 대변인으로서 역할을 하였고, 이러한 방송은 80년 광주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내 광주시민군들이 방송국에 불을 지르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부터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하여 권위주의정권에 빌붙어 그들의 대변인 노릇을 했던 부자신문들은 87년 이후 혼란기를 겪게 된다. 반세기 동안 그들의 이익을 보호해주었던 권위주의 정치체제의 몰락은 그들이 오랜 시간 향유했던 그 많은 기득권들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로 그들에게 작용하였다. 이러한 공포 속에서 부자신문들은 이제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대기업 즉 자본의 대변인으로서 모습을 바꿔나갔다. 그들의 기존 논조였던 반공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유지하며, 거기에 시장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결합시켜 나갔다. 해방 이후 오랜 시간 권위주의정권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들은 폐지시켰고, 그 덕에 높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던 부자신문들은 대한민국의 헌법이 적시하고 있는 사회적 시장경제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에게 공산주의=친북=반미라는 꼬리표를 만들어 이데올로기적 공격을 감행하였으며, 사회적 의제를 그들의 이익에 맞는 방향으로 쟁점화 시킴으로써 그들의 이익을 지켜가도록 하였다.


민주화 이후 권위주의정권에 집중되어 있던 권력이 분산되었고, 의회의 힘은 더욱더 강력해졌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수립이 이루어짐으로써 많은 국민들은 정치가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희망이 되기를 바라였으나 부자신문들에게 그것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앗아가는 위험한 일이었다. 의회 내에서 노동자·서민의 정당이 탄생하여 그들이 정권을 창출한다는 것은 곧 한국사회의 질적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며 부자신문은 이를 막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정치권과 함께 지역주의 감정을 부추기는 행동에 함께 나섰다. 정치권과 부자신문들의 이러한 행동은 결국 한국의 민주주의가 87년의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부자신문들의 횡포는 지금도 너무나 강력하다. 합리적인 의사소통과 그를 통한 대안의 모색은 민주주의사회에서는 가장 기본적이고 또한 필수적인 장임에도 불구하고 부자신문들은 친북과 반미라는 무기를 통하여 소통의 장을 짓밟고 있다. 손호철 교수가 지적하였듯이 국가보안법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87년의 민주주의 즉 절차적 민주주의 조차 한국사회에서는 아직 제한적이며 국가보안법을 옹호하고, 소통의 장을 왜곡시키는 부자신문들이 지금의 힘을 가지는 한 한국 민주주의의 질적 진보는 너무나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편집권의 독립이라든지 점유율의 제한 등도 필요하다며 고려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직접적인 제한은 심한 갈등을 불러올 것이고,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종이신문의 영향력을 고려해 봤을 때 진보세력의 대안언론을 만들려는 노력이 선행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예컨대 부자신문들의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막는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진보세력이 창출하지 못한다면 그것의 효과는 극대화되지 못할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은 부자신문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한 오마이뉴스를 한국에서 6번째로 영향력 있는 매체로 만들 수 있었다. 인터넷이나 다른 매체에 대한 노력 그리고 새로운 컨텐츠를 개발해야 하는 것이 한국 진보세력의 의무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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