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식민지, 한미 FTA
이해영 지음 / 메이데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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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사회 최대의 화두를 뽑으라고 한다면 당연 ‘한미 FTA’일 것이다. 정부는 한미 FTA가 성사되지 않는다면 한국은 중국에게 따라잡힐 것이라며, 또 이 a사안을 반대하는 것은 19C말 일제에 점령당한 빌미를 제공했던 쇄국정책이라는 논리로 국민들을 협박하며 어떻게든 그것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진실인가? 그것은 일본이나 중국이 그리고 유럽의 국가들이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으려는 것만 보아도 너무나 자명한 거짓이다. 노무현 정부가 유일하게 자신들의 논거로 이용하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내놓은 CGE 모델이 결국 거짓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이에 대한 해명요구에 대해 국책연구기관이 지적재산권을 운운하며 자신들이 발표했던 내용을 공개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코미디는 어이상실을 넘어 분노를 불러오게 한다.(프레시안 참조)

미국과의 경제통합은 비단 경제영역의 통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에서 밝혔듯이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해방 60년의 한국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정치적으로는 반공이데올로기에 기반한 폭압적인 권위주의와 경제적으로는 권위주의적 관료와 재벌기업의 연대에 기반한 생산과정의 노동의 배제와 재벌중심적인 개발독재패러다임을 특징으로 한 61년체제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이런 61년체제는 계속하여 허물어져 왔다. 정치적으로는 87년 6월 시민 항쟁을 통해 정치적으로는 최소한의 제한적 절차적 민주주의의 수립이 이루어짐으로써 어느 정도의 극복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87년 민주화된 이후에도 61년체제의 경제적 패러다임 즉 정부와 재벌의 연대를 통한 대자본 위주의 경제정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이는 결국 97년 IMF 외환위기를 불러왔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 속에서 진보세력의 새로운 대안이 나오지 못하였고 이는 영·미식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한국사회에 반영되게 만들었는데, 이는 61년체제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과거 기업을 상위에서 지휘하는 역할이었다면, 이젠 자본의 이윤축적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것에 국한되게 만들었다. 즉 정부와 자본의 관계 변화 외에는 본질적으로 61년체제의 경제패러다임이 계속 유지되었다.


대자본 위주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결국 최장집 교수가 지적했듯이 비정규직, 사회적 양극화 등 각종 사회적 불평등을 양산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취약하게 만들었다. 시민사회의 균열을 정치사회에서 통합하여 국가가 정책으로 공동체를 이끌어나가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는 대자본 위주의 개발패러다임에 짓밟히고 말았다. 한국의 정치사회는 절차적 민주화를 이룩한 87년 이후에도 냉전적 보수세력과 개혁적 보수세력이 정치사회를  지속적으로 장악함으로써 어떤 정권이 집권하더라도 경제적으로는 보수적 경제정책만이 집행되었다. 이로 인하여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게 되고, 못 가진 사람은 더욱더 못 가지게 되는 양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게 되었고, 많은 국민들에게 민주주의 그리고 정치는 더 이상 희망의 언어가 아닌 냉소의 언어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취약한 사회경제적 기반 하에서 냉전적 보수세력과 개혁적 보수세력이 똘똘 뭉쳐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정판인 이번 한미 FTA가 성사는 곧 한국 민주주의의 사망선고임은 너무나도 자명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민족자본이라고 믿는 거대기업들의 실체는 초국적 자본이다. 한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 초국적 자본들은 결국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초국적 자본들의 입장과 결코 다를 바가 없다. 한미 FTA는 오직 이 초국적 자본들에 배를 불리는 ‘그들만의 파티’일 뿐이다. 한국과 미국의 노동자, 서민들에게 한미 FTA는 그들의 삶을 파괴하는 끔찍한 재앙일 따름이다. 이번 한미 FTA는 이해영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97년 외환위기 당시와 같은 충격을 시민사회에 다시금 안겨줄 것이며 이러한 충격 속에서 자본은 자신들의 이윤을 더욱더 추구할 수 있는 여러 조건들을 형성해 나가려 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초국적 자본의 이윤창출을 위한 수단으로서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서민들의 삶은 결국 나락으로 빠졌던 것처럼 다시금 수많은 서민들이 직장을 잃고 거리를 배회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탱할 최소한의 사회경제적 기반이 붕괴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통해 얻어낸 민주주의는 결국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슘페터가 이야기한 최소주의적 절차적 민주주의에 정체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국민들에게 정치는 냉소의 언어를 넘어 분노의 언어로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수언론은 세계화는 필연이며, 그것을 막으려는 행위는 역사의 반동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오직 초국적 자본의 이익만을 위한 세계화는 결국 근대국가의 민주주의를 해체하고, 사회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하락시킬 뿐이다. 대안이 없는 반대는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라고 그들은 주장하지만 모든 철학이 그러했듯이 언제나 새로운 패러다임은 그런 사회의 모순지점에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며, 이번 한미 FTA는 오히려 그것을 추진하려고 하는 정부의 논리가 더욱더 빈약하기 짝이 없다. 처음엔 NAFTA를 통해 멕시코가 성장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이제는 멕시코 국민들의 삶의 질 저하가 꼭 NAFTA 때문만은 아니라며, OECD 가입 국가들의 대부분이 사회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다는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을 주저리주저리 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정책특보를 지낸 이정우 교수가 이야기하듯이 한미 FTA는 안 할 수 있는 카드이며, 안 해야만 한다.


한국사회의 모든 권위주의정권들은 시민사회의 직접적인 저항을 통해 붕괴하거나 혹은 그 저항의 여파로 붕괴해왔다. 이승만은 4.19혁명으로, 박정희는 부마항쟁의 여파로, 전두환은 6월 항쟁으로 말이다. 그러나 붕괴 이후에 시민사회의 역할은 없었다. 예컨대 6월 항쟁 이후에 시민사회의 열기가 급속도로 식음으로써 결국 87년체제는 권위주의세력과 정치사회에 포함되었던 한 줌의 민주화 보수세력들 간의 타협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진보세력은 구체제를 무너뜨리기는 했었지만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공백기를 자신들의 색으로 채우지 못했다. 한미 FTA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은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FTA가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이야기했듯이 21세기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패러다임이 결정되는 중대한 시기이다. 진보세력은 앞으로의 한국사회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는 진보적 패러다임을 만들어내야만 할 것이다. 시민사회 각 진영에서 희망제작소, 새사회연대 등등 진보진영의 싱크탱크가 생겨나고 있다. 냉전적 보수세력과 개혁적 보수세력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진보세력의 새로운 패러다임 창출은 필수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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