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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돈은 시간이며 곧 공간이다. 지금, 여기가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돈이 없는 자는 근로자가 되어 자기 자신이 아닌 사업주를 위해 일해야 하며, 식당 그리고 카페 이 모든 공간으로부터 추방 명령을 당한다.
"퀴즈쇼"의 주인공 이민수는 어느날 갑자기 돌아가신 할머니가 남겨 놓은 빚으로 인해 집에서 쫓겨난다. 많은 추억을 간직했던 책들을 헌책방에 넘거야 했으며, 구경 한 번 못했던 고시원이 그의 새로운 생존을 위한 기지가 되었다.
고시원, 도시의 삭막함을 그보다 잘 보여주는 건물이 있을까? 조그만 방들이 다닥다닥 들어서 있는 그곳은 가정이라는 공간이 주는 따뜻함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뒷골목과 같다. 서로가 서로를 알 수도, 아니 알 필요도 없는 그런 공간.
민수는 그곳에서 살고 있지만 그곳은 그의 공간이 아니었다. 매달 내야 하는 돈을 지불하지 못하는 한, 그곳은 그를 반겨주지 않았고 결국 그는 쫓겨나야만 했다.
"이십대 혹은 이십대적 삶에 대한 내 연민이 이 소설을 시작하게 된 최초의 동기라면 동기였다."라는 김영하의 말을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민수의 모습은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많은 20대의 모습이 아닐까?
많은 이들이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벗어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갈 수 있는 공간의 부재로 인해 억지로 대학이라는 공간에 편입되어 살아가는 것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다. 공간의 부재가 주는 불안을 탈피해보려 노력하지만 그런 노력이 만족할 성과가 되기에는 그저 노력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김영하는 인생은 퀴즈라고 이야기한다. 퀴즈의 특징이 뭘까? 누군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다면 나는 퀴즈란 알면서도 모르고, 모르면서도 아는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이라 해서 그 퀴즈를 맞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만이며, 내가 모르는 퀴즈라 하더라도 주어진 힌트를 통해 얼마든지 풀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어느 정도의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겠지만 퀴즈는 많은 경우 운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도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겠지만 삶은 많은 경우 운이다.
우리가 점유하고 있는 공간은 언제든지 우리를 토해낼 기세를 보이고 있으며, 아직 우리가 가지 못한 공간은 점점 더 우리의 곁에서 멀어져만 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불안에 떨고 있으며 또 분노를 가슴 한 가운데 새기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종부세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사는 아주 평범한 이 땅의 20대이기에,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나에게 주문을 건다.
나는 재수가 좋아.
마음 한 구석에는 '정말? 네가 재수가 좋긴 하니?'라는 질문이 솟구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모든 의문을 무시하고 다시 한 번 주문을 건다.
나는 재수가 좋아. 그러니깐 이 세상에 내 작은 몸뚱이 하나 눕힐 작은 공간이 있을 거야. 나는 그런 공간을 가질 수 있을 거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