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무엇일까? 정치학에 기초를 막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은 이런 질문에 대해 망설임 없이 답할 것이다.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말이다. 물론 나는 이런 이스턴의 정의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정치에 대한 정의를 내가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은 정치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은 "적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적대"는 사회적 관계의 모순 속에서 다양한 차원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적대에서 내가 속한 사회적 존재 또는 집단의 이익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그것이 정치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정치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렇게 논한 이유는 진보와 보수가 추구하는 정치이념이나 가치는 다르지만 행위로서의 정치는 서로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진보와 보수는 현 사회의 가장 근본 모순이라 할 수 있는 자본주의라는 사회경제체제에 대한 입장에 의해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모순 이외에 다른 사회 모순에 대한 입장에 따라 진보와 보수도 그 내부에서 다양한 세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민주노동당은 바로 진보세력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이었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런 진보세력 내부에는 근본 모순에 대한 입장은 비슷하지만 그 외의 다른 사회모순 특히 분단모순에 있어서 그 입장의 차이가 다양하게 존재 했었고, 분단모순에 대해서 강력한 입장을 고수하던 자주파가 진보세력의 다수를 점했던 것이 여태까지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번 평등파의 창당 시도가 자주파로부터 진보세력의 대표 자리를 찬탈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사회 운동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살펴 본 사람은 알겠지만 학생 운동을 중심으로 사회 운동이 점차 확산된 한국의 역사에서 자주파는 언제나 평등파에 비해 다수를 점했다. 80년대부터 한국 사회 운동이 표면화 되었다고 할 경우 약 30년의 세월 동안 평등파 소위 구PD세력은 사회 운동에서 소수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전위당 중심의 민중운동 또는 변혁운동이 중심이 되었던 지난 시기 동안 평등파는 진보세력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이 될 수 없었다.

 자주파가 다수였던 진보진영 내에서 평등파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크게 두 개였다. 자주파에게 운영권을 내준 채 함께 하든지 사회적 발언권은 적어지더라도 독립된 조직을 갖든지 말이다.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자주파와 평등파는 초기에는 함께 하다 자주파의 패권주의에 평등파가 새로운 조직을 꾸리는 형식이었다.

 이번 평등파의 신당창당도 그런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과거 한총련에서 탈퇴해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와 학생운동의 혁신을 위한 전국학생연대회의"를 건설했던 것처럼 이번의 신당창당도 그런 수순을 밟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때와 차이가 있다면 현재 진보진영이 처한 상황이 변했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평등파가 이 상황을 이용해 여태껏 차지하지 못한 진보진영의 대표세력이 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와 가장 크게 변한 상황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한국의 진보진영이 의회주의적 대중정치를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과거의 진보진영이 가진 기본적인 생각은 전위당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변혁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전략 속에서는 한 마디로 활동가의 수가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의회 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이 곧 한국의 진보진영을 대표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운동이 아닌 의회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있다. 즉 과거에는 활동가의 수가 그 정치세력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현재의 상황에서는 '국민적 지지'라는 보이지 않는 실체가 바로 그 힘이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조승수 전 진보정치연구소장이 권영길 후보가 들고 나왔던 "코리아 연방 공화국"에 대해서 이걸로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했을 때 나 역시 그것에 동의했으며, 선거 패배에 있어 그런 잘못된 주장이 분명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기에서 '종북주의' 논쟁이 튀어 나왔어야만 하는 필연적 이유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등파가 의도적으로 민주노동당 내에서 강력한 힘을 차지하려는 정치적 공격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나의 생각을 계속 전개하자면 초기의 '종북주의' 논쟁이 민주노동당 내에서 평등파가 운영권을 지려는 시도로서 나온 논의였다면, 조선일보, 동아일보로 대표되는 수구언론들이 그것을 부각시키면서 자주파를 공격하면서 '종북주의'의 성격이 크게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즉 초기의 '종북주의'는 단순히 민주노동당 내에서 평등파가 운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제기한 것이었다면 조중동에 의해 증폭되고 사회화 된 이후의 '종북주의'는 진보진영 내에서 자주파를 말살하고 평등파가 완전한 패권세력으로 등극하기 위한 것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조승수가 조선일보에 인터뷰를 한 것이 좋은 근거라고 생각하는데 마치 신라가 자력으로 고구려를 이길 수 없기에 당나라를 끌어들여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처럼 민주노동당 내에서 평등파가 자주파에 수적으로 밀리니 기존의 빨갱이 담론에 기대어 조선일보와 함께 자주파를 공격한 것으로 생각된다.

 내가 좀 오바하는 건가? 어쨌든 난 그렇게 생각한다. 보수진영이야 그 지지율이 높기 때문에 여러 정당이 존재할 수 있겠지만 진보진영은 그야 말로 없는 지지율을 나눠 먹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 어떤 정당이 더 많은 지지율을 얻느냐에 따라 그 명운이 크게 갈릴 것이다. 의회주의가 중심이 되고 있는 현재의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활동가의 수가 아니라 바로 국민적 지지도다. 바로 그 점에서 평등파는 조중동과 연합해 분단체제라는 그리고 그에 기생하는 반공이데올로기의 힘을 얻어 이번 기회에 자주파를 '압살!' 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게 내가 이번 평등파의 신당창당 운동에 대한 생각이다. 그렇다고 평등파의 이번 행동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손석춘이 말하는 것처럼 평등파의 신당창당운동이 민주노동당 죽이기가 아니라 진보의 외연을 넓히는 것이 된다면 그래서 진보의 영역이 넓어진다면 가장 이상적인 것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지 않은가?

 다가오는 총선이 한국 진보진영의 대표세력을 결정 짓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을 때, 지금의 상황으로는 평등파의 신당이 진보진영의 대표세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비록 민주노동당이 지역위를 포함해 전국정당으로서 그 면모를 갖추고 있는 것에 반해 신당은 아직 그 실체조차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 사회를 60여년 동안 지배해 온 반공 이데올로기는 그런 차이를 뛰어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 된다.

 물론 나는 평등파의 이런 행동의 진보정치가 추구해야 할 '대의'를 저버리는 많이 치사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주사위는 던져 졌고, 나는 평등파이다. 적극적이지는 않아도 나 역시 소극적이나마 그네들의 등에 비수를 꽂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주파 사람들에게는 미안할 따름이다.

 

- 참고로 나는 임시 당대회가 열린 2월 3일이 되기 전인 2월 1일 탈당했다. 그 이유는 심상정 비대위가 내놓은 안이 사실상 자주파로서는 수용할 수 없는 안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결국 평등파의 신당창당은 당연한 사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민주노동당 분열의 책임을 자주파에게 돌리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이런 개인적인 생각에 그리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이왕 이렇게 된 것 평등파의 신당이 좋은 성과를 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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