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아름다운 집'은 2006년 황순원문학상 수상작 '명두'를 비롯하여 1인칭 여성 화자를 통해 구효서의 독보적인 다감함과 유연함, 순도 높은 산문과 깊이 있는 세계관이 유감없이 드러난 2007년 허균문학작가상 수상작 '조율-피아노 월인천강지곡', '화사-스며라, 배암!', '사자월-When the love falls.', '전별-자전거로 남은 사내', '막내고모'에서도 조율사의 숨은 노동과 정성이 빚은 절실하고 간절한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수록작들은 다름 아닌 인간 진실의 만화경에서 하나같이 놓치기 아까운 세밀하고 소중한 삽화들이며 '죽음 앞에 선' 혹은 '죽음과 함께하는' 삶의 풍경이 여기저기, 때로는 안타까운 애도와 함께 때로는 조용한 수락과 함께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죽음과 삶의 그늘에 대한 작가의 속깊은 응시가 역설적으로 되비추는 삶의 환한 자리들이 새롭게 구효서 소설의 진경을 이루고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표제작 '저녁이 아름다운 집'은 죽음의 자리에 대한 작가의 사유가 잔잔하게 녹아 있는 작품입니다. 사정은 작중 그의 아내가 시골 집터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이웃 주민의 산소 이장을 고집하다 마음을 바꾸며 내놓는 "죽음이야 늘 도처에 있는 건데 마당 곁에 좀 있은들 어때요" 하는 말 속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각별한 울림을 갖는 것은 이 순간 아내는 자신의 남편에게 임박해 있는 죽음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도처에 있다는 인식을 마음 한편에 품을 수는 있겠지만 그 죽음이 자신 혹은 가까운 이에게 닥쳤을 때, 그런 인식은 무력해지게 마련이다. '저녁이 아름다운 집'은 그 메우기 힘든 낙차 사이에 인간의 애정과 배려로 가능한 무언가는 없는지 안타깝게 물어보는 작품이랄 수 있습니다.

 

일찍이 소설적 모범답안을 거부하며 누구보다도 치열한 작가정신과 전위적인 형식실험을 보이며 자신만의 이력을 쌓아온 구효서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소설의 관습적 장벽을 열심히 흔든 면모가 역력합니다. 장편소설 '나가사키 파파'에서 도전한 바 있는 대화 위주의 가볍고 톡톡 튀는 화법을 구사하는가 하면 대사와 지문을 구분하려는 문장부호를 과감히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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