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박상우의 신작 소설집 '인형의 마을'은 감각적인 언어로 낭만주의적 특성이 강한 작품 세계를 보여 온 작가의 '샤갈의 마을', '사탄의 마을', '사람의 마을'에 이은 네 번째 마을 시리즈 입니다. 박상우 작가는 그동안 마을 시리즈를 통해 폭력적이고 제도적인 권력에 의해 파멸되는 개인의 실존과 인간 소외 등을 다뤄 왔습니다.


'인형의 마을'은 대가 없이는 획득이 불가능한 인생의 아이러니를 다루고 있습니다. 작품 전반에 걸쳐 세상 모든 것은 허구이며 세상은 일종의 감옥이고 인간은 하나의 아바타에 불과하다는 허무 의식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의 무대일 뿐이며 인간은 그 위의 인형, 즉 아바타일 뿐이며 인간이 추구하는 완전한 삶은 가짜일 뿐이므로 이 세상에서 진짜 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불가능한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 인생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집을 통해 그는 자신의 소설 미학의 절정을 보여 줍니다.


질서, 도덕, 윤리 등의 금기에 대한 반감은 소설집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그는 이것들을 '허구'라고 말하기도 하고 '아바타 놀이'로 규정짓기도 하며 '인형 놀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옳지 않은 일임을 알면서도 욕망에 빠져듭니다. 금기는 열락의 감도를 높여 줄 뿐입니다. 그러나 열락이 깊을수록 그 대가인 고통도 깊어집니다. 작가는 육체의 감각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지만 그 감각과 고통을 통해서만 존재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를 보여 줍니다. 결국 박상우 작가는 아무리 멀리 도망가도 그리고 설혹 가짜일지라도 그것이 인생이며 중요한 것은 이 '가짜'의 세상에서 '진짜'를 찾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실의 언어로 쓰인 최초의 책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진실의 언어를 전파하는 전사들까지 모두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 소중한 존재들은 어둠과 그늘에 숨어서 끊임없이 언어를 갈고 닦으며 하나의 단어에 가짜 체제의 실체를 아로새기고, 한 줄의 문장에 삼천 년의 비밀을 담고, 한 단락에 우주의 운행 법칙을 함축하는 비법을 연마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전면에 나서지 않고 제2, 제3의 직업 종사자로 자신을 은폐하고 평생을 살아 나간다. 진실의 언어를 전파하기 위해 요리사로 살아가기도 하고, 노동자로 살아가기도 하고, 빵을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경험 속에 녹여서 전달하는 진실의 언어, 그리고 그것들이 조성해 내는 성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얻게 되면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덧없는 환영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인간은 허상이요, 시간은 망상이라는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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